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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론으로 보는 미중 무역 갈등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이달 초 중국산 수입품에 총 500억 달러(약 53조 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 정부도 미국산 수입품에 마찬가지로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며 대응에 나섰다.

이후 미국과 중국 모두 어조를 누그러뜨리며 협상으로 해결할 의사를 밝힌 상태다. 특히 11일 보아오포럼에서 시진핑은 미국을 의식한 듯 중국 시장 개방을 거듭 약속했고 트럼프가 이를 환영하는 트윗을 올렸다.

그러나 미중 무역 갈등은 두고두고 반복될 소지가 크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경쟁이 격화하는 시대에 화해 제스처는 (그것이 군사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일시적이기 십상이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 조짐을 보였던 것은 세계가 더 위험해지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고 이를 간과해선 안 된다. 장기화하는 위기 속에서 벌어진 갈등이고,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고, 두 국가가 군사적 경쟁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남중국해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항공모함이 대치하는 일이 있었다. 양국 모두 기록적으로 국방비를 책정하고 있다. 중국은 증대한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려 하고, 제2차세계대전 이래로 세계 패권을 놓친 적이 없는 미국은 중국의 이런 행보를 억제하려 들면서 서로 대립하고 있다.

'무역' 전쟁의 뒤에는 지정학적 충돌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출처 미 해군

트럼프는 몇 달 전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면서 노골적으로 중국을 적이라고 규정했고 중국이 경제와 외교 면에서 여러 악의적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가 이번에 서명한 문서의 이름도 ‘중국의 경제 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이다.

중국은 증대하는 경제력을 내세우며 상업적으로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를 확보하려고 세계 각국과 관계를 맺고 있다. 예컨대, 중국 정부가 역점을 두는 ‘일대일로’ 사업은 위기 시 미국의 해상 봉쇄를 우회할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 조짐은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맞물리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핵심 동역학을 보여 줬다.

영속적 평화가 가능하지 않은 체제

많은 사람들은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핵 공포라는 야만을 경험했으니만큼 적어도 주요 강대국 간 전면전은 피할 정도로 각국 지배계급이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군사적 경쟁과 전쟁은 체제의 핵심 동역학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자들의 ‘학습효과’가 전쟁을 막아 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경쟁이 핵심적 특징이다. 경쟁 때문에 기업들은 끊임없이 이윤을 재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패배한 기업들이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되기를 반복하면서 개별 기업의 규모는 커지고 기업의 수는 준다. 이를 집적과 집중이라고 한다.

집적과 집중이 반복된 결과 소수 기업이 일국 경제를 좌우하는 수준으로 부상하는 동시에, 국경을 넘어 사업을 확장하면서(세계화) 자본 간 경쟁은 국가 간 경쟁과 맞물린다.

자본가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국가 관리자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착취해야 하는 노동인구와 인프라, 또한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외국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단을 국가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가 관리자들도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앞서려면 자국 자본가들이 제공하는 상품, 기술력, 세금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미국·독일·일본·중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곳에서 자본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세계 무대에 진출했다. 세계적 경쟁에서 선두주자를 따라잡으려면 국가가 갖고 있는 조직과 인력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은 언제나 지리적으로 불균등하다. 원료, 투자, 시장, 숙련 노동인구의 지리적 거점이 균일하게 발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 거점들을 기초로 한 국가들 사이에 서열이 생기고 그 서열은 계속 변한다.

대표적 사례는 20세기로 접어들 무렵이다. 후발주자인 독일과 미국이 신흥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영국이 해양을 지배하는 상황이었다. 근본적으로 양차 세계대전은 이처럼 경제적 서열과 지정학적 질서의 불일치를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자본주의의 경쟁은 끊임없는 생산의 혁신과 그로 인한 서열 변화를 낳기 때문에 이런 불일치는 사라질 수 없다. 자본주의 하에서 영속적 평화가 불가능한 이유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국가간 경제력 변화가 현존하는 국제 질서와 점차 불일치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한 가운데 중국이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런 불일치가 얼마나 커질지, 또 어떻게 해소될지는 결정돼 있지 않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으로 치달았던 과정은 이런 상황이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세계 경제가 만성적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주요 경제국이 보호 무역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파시즘 대 민주주의 전쟁’이라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제2체세계대전은 세계적 대불황에 대한 제국주의 열강의 대응이 부딪히며 일어난 전쟁이었다. 당시 각국은 앞다퉈 보호주의를 채택했고, 최대한 자국 안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자족 경제를 추구했다. 그러나 어느 국가도 외국의 부품과 원료에 대한 의존을 완전히 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몇몇 국가들이 연합한 블록경제 차원의 자족 경제로 나타났다. 제국을 거의 또는 아예 갖지 못한 일본과 독일은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영국·프랑스와 충돌하면서 전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트럼프도 기업들을 압박해 최대한 미국 안에서 생산토록 한다. 또한 동맹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철강 관세 폭탄’을 유예하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줄서기’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도 블록 경제를 지향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를 역사적 경험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과 무역전쟁 조짐은 더 큰 대결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들에게 미중 무역전쟁은 어차피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미중 간 무역전쟁 조짐을 두고 “부자들의 대립”일 뿐이라며 제쳐 두고 사회적 양극화, 공공부문 약화, 인종차별에 신경 쓰자는 《워커스》의 주장은 옳지 않다.

그런 쟁점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늘날 세계를 점점 더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 “부자들의 대립”이 노동계급의 삶에 훨씬 더 큰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그보다 긴 시야로 보면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한반도에서 평화 운동 건설이 필요한 까닭이다.

“부자들의 대립”은 노동계급에 별일 아니라는 시각은 노동자주의(발생기인 20세기 초의 혁명성을 잃어 개혁주의적이 됐다)이다.

그 주장의 밑바탕에는 경제적 관계의 긴밀성 탓에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 세계화와 채권-채무 관계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한 몸과 다름없는 적대적-경쟁적 공생관계”이므로 “미국이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중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 전에 독일과 영국의 경제적 관계는 긴밀했고, 제2차세계대전 전에 미국과 일본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경제적 긴밀성이 정치적·군사적 긴장을 낳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세계 각국이 터무니없는 돈을 군비에 쏟아 붓는 엄중한 현실에 대해 일부 지배자나 일부 자본가(예컨대 군산복합체) 탓으로 설명하려는 견해에 부딪혀 논거가 취약해질 것이다.

이 관점은 지배자와 자본가를 설득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관점과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이는 노동계급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을 건설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온라인 판에서는 트럼프가 시진핑의 보아오포럼 발언을 환영한 내용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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