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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소재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건설하다

석회 제품 생산업체 백광소재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백광소재는 석회 제품 업계 1위 회사로, 시장점유율이 30퍼센트에 이른다.

생산하는 석회 제품은 생석회, 소석회, 경질탄산칼슘 등 산업기초재로, 이름은 낯설고 생소하지만, 그 쓰임새는 광범하다.

철을 만들 때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쓰고, 페인트, 종이, 비료, 설탕 등을 만들 때도 꼭 필요하다. 구제역 발생 지역에서 방제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백광소재는 석회석이 다량 매장돼 있는 충북 단양과 정선에 광산과 공장이 있고, 이곳보다 작은 규모지만 울산과 서천군 장항에도 공장이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상·하행 휴게소와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에 단양과 정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원이 됐다.

지난 4월 6일 창립총회가 열렸다. 이제 막 첫발을 뗀 노동조합에 거는 기대와 희망의 열기로 가득했다.

4월 6일 노동조합 창립총회 노동자들의 기대와 희망의 열기가 가득했다 ⓒ사진 제공 민주노총제천단양지부

총회가 열린 민주노총 제천단양지부 대강당은 조합원과 연대 단체 활동가들로 가득 찼다.

조합원들 참가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전체 조합원 123명 가운데 92명이 참가했는데 교대 근무자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조합원이 온 것이다. 멀리 정선 화암광산에서도 참가했다.

이제 막 노동조합원이 된 노동자들은 처음 해보는 팔뚝질이 어색해 보였지만, 의지와 열정만큼은 컸다.

연대 단체들 배너 32개가 총회장과 그 주변에 내걸려 조합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이날 선출된 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 백광소재 김장열 지회장은 “사람답게 대우받고, 일한 만큼 월급 받으며, 갑과 을로 사원들을 쪼개 차별하지 않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하며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회사를 만들때까지 절대 회사와 타협하지 않고 싸우겠다” 하고 의지를 밝혔다.

창립총회가 끝난 뒤에도 조합원이 느는 추세다.

회사가 올해 1월 1일 상여금 700퍼센트를 없앤 것이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과도한 업무와 적은 월급에도 상여금 때문에 참고 일해 왔어요. 그런데 회사는 상여금을 없애 기본급과 각종 수당에 끼워 넣었습니다.”

상여금을 기본급에 산입시키는 방식은 자본가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기 위해 두루 사용해 온 수법이다.

게다가 사측은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시간 단축 시행에 대비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지난해 회사는 어차피 연봉은 같지 않냐고 말하면서 상여금 기본급 산입을 밀어붙였어요. 하지만, 7월 1일부터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실제 받는 연봉은 많이 줄어요. 많게는 1000만 원 가까이 줄어드는 직원도 생겨요”

노동자들은 지난해 상여금을 없애려는 사측의 진정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집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이제 노조로 단결해 싸워 악화된 임금체계를 다시 되돌리고 싶어 한다.

백광소재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도 개선되기를 바란다.

“24시간 풀 가동되는 현장은 3조 3교대 근무를 합니다. 맞교대 해야 하는 경우, 12시에 퇴근해 아침 8시에 다시 출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어요”

“지급되는 목장갑과 고무장갑, 마스크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자기 돈 주고 사서 쓰는 사람들도 많아요”

“제천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은 통근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자가용을 이용해야 합니다. 기름값 빼면 남는 것도 없어요”

“물도 부서별로 바깥에서 떠다 먹습니다. 생수를 구입해 먹기를 원합니다.”

노동자들은 어처구니없는 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백광소재는 송원그룹 계열사인데, 단양 1공장에 송원그룹 초대 회장 묘소가 있어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묘소 잔디 밟기와 풀 뽑기에 직원들이 동원됩니다. 노조가 생기면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일입니다”

송원그룹이 계열사를 늘리고 백광소재가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모두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쥐어짠 결과다.

백광소재 노동자들은 이전에도 몇 차례 민주노조 결성 시도를 한 바 있다. 하지만, 번번이 사측의 공격으로 무산되곤 했다.

이번에도 사측은 노조 결성 시도를 눈치채고 회유를 비롯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송원그룹 부회장이자 백광소재 대표가 직접 단양공장에 내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조합원 가입서를 돌린 지 3일 만에 80명, 1주일 만에 100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더 악화된 임금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고, 더는 당하고 살 수 없다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분노가 컸기 때문이다.

박근혜를 쫓아낸 퇴진운동도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한 노동자는 “촛불의 큰 힘으로 대통령도 끌어 내리듯 우리 모든 조합원 동지들의 소중한 힘 하나하나가 뭉친다면 다 이겨내고 승리의 깃발 꽂고 즐겁고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조합원 커뮤니티에 썼다.

삼성의 노조 와해 시도가 폭로돼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주로 제품 관리 부서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야간 근무를 하기도 하고, 작업장이 추워 동상에 걸리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회사 족구대회에서 회사 임원이 경품을 나눠주며 여성 노동자에게 엉덩이를 흔들라고 한 적도 있었다.

얼마 전 한 여성 노동자가 성추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피해 여성 노동자는 이 사실을 용기 있게 폭로했다. 사측은 피해 여성 노동자의 강한 항의와 노동자들의 집단 탄원을 받고서야 가해자에게 권고사직을 요구했다.

노동조합은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는데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노동조합이 더욱 건강해지고 단결에 이롭다.

백광소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건설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대감이 높아졌다.

예상되는 사측의 이간질과 노조 와해 시도를 이겨내고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 연대를 강화한다면 소중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