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이래 한국인들은 한반도에서 긴장 고조와 유화 국면이 극적으로 뒤바뀌는 일을 자주 겪었다. 최근 상황도 훗날 그런 사례로 기록될지 모른다.

지난해는 내내 갈등이 높아졌는데, 올 3월에 잇달아 남·북/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돼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5월에는 혹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마주 앉아 햄버거와 콜라를 먹는 모습을 진짜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트럼프는 4월 17일 벌써 말을 바꿔, 상황에 따라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는 “화염과 분노”에 관한 말이 무성했던 해였다. 트럼프의 대북 전쟁 위협이 한반도 주변 정세의 불안정성을 한껏 높였던 것이다. 트럼프는 대북 대화는 부질 없는 일이라고 거듭 떠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 위기를 우려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북한과 미국은 물밑 접촉을 유지했던 듯하다. 지난해 9월, 지금은 해고된 당시 미국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2~3개 열어 두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도 북한의 의중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상황이 더욱 혼돈에 빠지면서, 미국이 북핵 문제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대화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상황을 파악하며 잠시 시간을 버는 것도 필요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도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아마 부시나 오바마 같은 지배계급 주류 출신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정상회담 제안을 덥석 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국내에서 여러 사건으로 공격받아 정상회담 같은 대형 이벤트가 필요하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트럼프가 기존의 미국 외교·안보 노선과 관습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 준다.

극적 변화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꽤 있는 듯하다. 지난 10년 내내 북한과 미국, 한국 등이 공식 외교 협상 한 번 제대로 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지금 정세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난 30년 가까운 시기를 되짚어 보면, 한반도 상황은 긴장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갔다가, 얼마 안 가 정반대로 휙 바뀌는 일이 잦았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항구적 평화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기에는 그 앞에 너무 많은 변수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우익의 위선

남북 정상회담을 (그리고 내심으론 북·미 정상회담도) 반대하는 우익의 행태는 실로 위선적이고 꼴사납다.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는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의 시간 벌기를 위한 “위장 평화쇼”라고 비난한 데 이어,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이적 행위’를 한다고도 말했다.

자유한국당 등 우익의 이런 망언은 남북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오래 지속된 대결과 긴장의 연속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환영하고, 남북 화해와 평화의 문이 열리길 바랄 것이다.

이런 바람은 단지 일시적인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의해 강제로 분단돼 전쟁까지 겪었다. 남북의 분단과 대결은 이산가족, 탈북민 등 희생자들을 만들어 왔고, 거듭 반복되는 긴장 고조나 전쟁 위기에 따른 인적·물적 부담을 평범한 한국인들이 짊어져야 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남북 화해와 평화 염원 정서를 냉전 시대에 기원을 둔 한국 우익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익은 문재인 정부가 “정략적으로”(즉,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남북 정상회담을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악화든 개선이든, 이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해 온 원조는 바로 우익 자신이다. 예컨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 인사들은 북한에 무력 시위를 요청했다(이른바 ‘총풍 사건’). 남북 간 긴장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였다. 이명박 정부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북한 측 인사에게 돈봉투까지 찔러넣으려 했다. 이런 자들이 정상회담을 비난하는 건 말 그대로 ‘내로남불’이다.


남북 두 정상의 만남은 영구 평화의 길을 열까?

4월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판문점 평화의집)으로 내려온다면, 이는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사실 자체와 함께 상당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 5월 말~6월 초로 예고된 북·미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한번 한반도 ‘운전자’론을 꺼내 들었다. 한국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적극적인 중재자 구실을 자임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4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 성공의 길잡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북핵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을 포괄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목표·계획을 큰 틀에서 확인하며 종전 선언 제안 등을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는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국제 관계의 한복판에 있다. 따라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 간 협상도 이 국제 관계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한반도 불안정을 둘러싼 제반 문제들을 풀어가는 데는 근본적 제약이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도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핵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도 남북 관계는 결국 북·미 관계의 진전 여부에 달려 있다고 인정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본다. 진보진영 일각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대화로 태세를 전환한 게 지금의 국면 전환을 낳았다는 설명이 있다. 일부 친민주당 이데올로그들도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 다르게 핵무기에 집착하지 않고 북한을 (친서방) 시장 개혁·개방으로 이끌 지도자라고 기대를 치켜세운다. 2013년 장성택이 처형됐을 때 자기들이 김정은을 향해 쏟아낸 비난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태도 변화는 항구적 긴장 해소의 주된 요인이 되지 못한다. 이 점은 3월 초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 특사단에게 한 말이 보여 주는데, 이런 약속이나 제안은 새로운 게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다.]” 대화가 지속된다면 핵·미사일 실험 등을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과 비핵화는 북핵 협상 테이블 위에 오랫동안 올려져 있었다.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면 비핵화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오래된(‘유훈통치’이기도 함) 약속이자 요구였다.

북한은 냉전 종식 이후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 회복에 필요한 자금과 자원을 확보하려고 서방 국가들과 관계 개선의 길을 모색해 왔다. 그래서 이미 1992년 김일성은 김용순 조선로동당 국제비서를 미국에 보내어, 북한에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정은 집권 후에도 북한은 수소폭탄·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하면서도 비핵화 가능성을 닫아 두지 않았다. 최근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사를 언급했다(물론 조건부로).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북핵 문제는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을 둘러싼 숱한 합의와 합의 파탄, 긴장 악화를 도돌이표마냥 반복했다. 북한이 대화에 적극 나서고 합의를 성실히 이행한다고 풀리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왜 북핵 협상은 늘 어그러져 왔는가

북핵 협상이 오랫동안 실패를 반복한 주된 책임은 미국에 있다. 미국에게 북핵 문제는 단순히 비확산 문제, 즉 북한 핵을 제거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미국은 제국주의 세계 체제에서 자국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문제, 즉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들과의 경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북핵 문제를 다뤄 왔다. 그래서 북한 ‘위협’론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동맹을 규합하고 중국을 겨냥한 군사력 전진 배치를 합리화하는 데, 즉 미국의 패권을 다지는 데 이용됐다.

미국은 북한과 합의를 해도 합의 이행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새 꼬투리를 잡아 합의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왔다. 그 대표 사례가 바로 2005년 9·19 공동성명이다. 2005년 6자회담 참가국들(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은 9·19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이 합의는 지금도 일각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정착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합의로 거론된다. 그러나 합의 직후에 열린 한 토론회에서 고(故) 리영희 교수는 “50년 동안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미국이 조약을 지킨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북경회담의 종이조각[9·19 합의] 몇 마디에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 이후 상황은 리영희 교수의 예측대로 전개됐다.

이처럼 비핵화,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국가 간 합의가 없었던 게 아니다. 9·19 합의 외에도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 등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얼마 안 가 휴지조각 신세가 돼 버렸다. 제국주의적 경쟁과 관여 속에 합의들이 유지되지 못한 것이다.

표) 냉전 종식 이후의 주요 평화 합의들
합의 내용 결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선언

  • 남북이 상호 체제 인정하고, 무력 침략하지 않겠다고 약속.
  • 남북 모두 핵에너지를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하고 핵무기 관련 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약속.

미국이 북핵 의혹을 제기하며 대북 군사 위협을 가하면서 1994년 한반도에 전쟁 위기 고조.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 북한은 기존의 흑연감속로를 포기하고 관련 핵시설을 동결하기로 약속.
  • 대신에 미국은 경수로를 제공하고, 대북 군사 위협 중단과 관계 정상화까지 약속함.
  • 북한은 이 합의에 기대를 걸었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합의를 이행할 의향이 없었음.
  • 미국은 금세 새 의혹을 제기하며 대북 압박을 지속함.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 남북 각각의 통일 방안의 공통점에 근거해 통일을 지향하고, 경제 등에서 남북 협력을 활성화하기로 함.
  • 2001년 집권한 미국 부시 정부가 대북 압박을 강화하며 새로운 북핵 의혹을 제기하자 긴장 고조.
  • 이 맥락에서 2002년 6월 서해에서 남북 간 해상 교전 발생.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

미국과 북한은 정전협정을 평화보장체제로 바꾸고, 관계를 개선하기로 약속.

  • 2002년 부시 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하며 휴지조각이 됨.
  • 미국의 위협에 반발해 2003년 북한은 핵동결을 해제하고 핵무기 개발로 나아감.

2005년 9·19 6자회담 공동성명

  • 비핵화와 반대급부의 단계적 이행을 약속.
  •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기로 합의.
  • 미국이 새로운 대북 금융 제재를 단행하면서, 바로 합의가 위기에 빠짐.
  • 결국 2006년 10월 북한이 처음으로 핵실험 감행.

결국 문제는 제국주의적 경쟁에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동아시아 상황은 과거보다 훨씬 더 악화돼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관세 부과로 “무역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와중에, 처음으로 군함 40척을 대동한 중국 항공모함과 미국 항공모함이 남중국해에 나란히 진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미국, 중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 간에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이 줄곧 점증해 왔다. 트럼프 하에서 미국 정부는 중국, 러시아를 전략적 경쟁자라고까지 지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관세 폭탄을 주고받다가, 지금 시진핑이 시장 개방 확대를 약속하며 양측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경쟁은 유화 국면을 잠시 오가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한 쪽이 굴복할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한다고 하니 일부 여권 인사들은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해 주자고 벌써부터 호들갑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우익 포퓰리즘의 국제적 부상이라는 맥락 속에서 대선에서 승리한 매우 반동적인 자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와 인종차별 등을 버무려, 경제 위기로 좌절한 중간계급과 후진적인 일부 백인 노동계급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됐다. 때에 따라 그는 지배계급 주류가 감히 하기 어렵고 위험한 도박을 선택할 수 있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경쟁에 관세 같은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며 국제 생산 사슬을 미국 국내로 옮기길 바란다. 즉, 그가 좀 변덕스런 기질이 있으나, 그에게 전략이 없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전략이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견해를 정부 정책으로 구현하는 그의 측근 중에는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피터 나바로가 있다. 피터 나바로가 그동안 쓴 책의 제목만 훑어 봐도 그들이 얼마나 중국을 제압하는 데 골몰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100년 마라톤: 미국을 제치고 글로벌 슈퍼파워가 되려는 중국의 비밀 계획》, 《웅크린 호랑이: 중국의 군사주의는 세계에 어떤 의미인가》, 《중국에 의한 죽음: 용에 맞서기 - 세계적 행동 호소》, 《다가오는 중국과의 전쟁들: 그들과 어디서 싸우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도 국가주석 시진핑이 주석 임기 제한을 없애면서(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을 열면서) 대외 정책을 더 강경하게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경제적 촉수를 뻗어 지정학적 요충지와 동맹국을 확보하려고 애써 왔다.

이런 사태 전개는 앞으로 둘의 갈등이 더 위험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리킨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정학적·경제적 경쟁이 교차하면서 남중국해, 대만, 무역, 군사 정책 등 동아시아에서 강대국 간 갈등이 터질 잠재적 폭탄이 너무 많아졌다. 이 모든 문제가 한반도에, 그리고 북핵 문제를 둘러싼 외교 협상에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최근 트럼프가 내각 인사를 단행하면서, 매우 호전적이면서 자신의 생각을 충실히 지지해 줄 만한 인물들을 외교·안보 책임자 자리에 앉혔다.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는 공화당 우익 분파인 티파티의 지지를 받았던 자로,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하고 중국뿐 아니라 북한과 이란에도 매우 적대적인 정책을 선호해 왔다. 새 백악관 안보보좌관 존 볼턴은 더 심한 자다.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그를 가리켜, “두 번째로 가장 위험한 미국인”이라고 했다(첫 번째는 트럼프). 볼턴은 북한과 이란의 정권 교체를 주장하며, 최근까지도 이란과 북한을 선제 공격해야 한다고 설파해 왔다.

트럼프에게 이른바 북한 문제는 중국을 제압하고 패권을 유지하는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가 중국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면서 북한을 위협하는 이유다.

물론 워싱턴이든 평양이든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 비핵화와 평화협정 등을 큰 틀에서 합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그 이후부터 시작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북·미 간 협상이 “탑 다운 방식”, 즉 정상들이 포괄적으로 합의를 도출하고 실무 라인이 단계적으로 이를 이행할 것이어서 과거처럼 “디테일에 숨은 악마”에 걸려 넘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처럼 미국의 적성국이면서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를 상대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에 합의하고 이를 끝까지 이행하는 과정은 어떤 방식이든 험난하고 중도에 좌초될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폐기될 위험에 처한 이란 핵합의는 시사적이다. 이란은 핵무기도 보유하지 않았고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 보유량도 북한에 비교가 안 될 만큼 소량이지만, 트럼프는 이조차 불만족스럽다면서 합의를 폐기하겠다고 협박한다. 트럼프 정부로서는 이란이 중동에서 갈수록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 큰 불만일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이란과 이미 맺은 약속조차 뒤집겠다고 달려드는 판국에 북한과의 협상은 오죽하겠는가.

존 볼턴은 북한이 핵무장 완성의 시간을 벌게 놔두지는 않겠다며,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한다. 북한이 먼저 핵 포기를 하면 그때 가서 관계 정상화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이 정말로 받기 힘든 요구다. 북한 지배 관료의 처지에서는 리비아는 반면교사일 뿐이다. 체제 안전 보장 없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독재 정권이 서방의 군사 개입으로 망할 수 있음을, 그리고 독재자가 죽을 수도 있음을 보여 준 게 바로 리비아의 사례다. 그래서 북한은 언제나 ‘리비아’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말한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는 바로 볼턴의 주장에 대한 우회적 거부 표시다.

물론 포괄적 합의 이후에 단계적으로 비핵화 절차를 밟아도 각 단계마다 우여곡절이 많을 것이다. 대북 제재 완화 등 북한이 원하는 반대급부를 미국이 제공할 의지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정상회담 이후의 협상은 살얼음을 걷는 듯한 불안정한 과정이거나, 오랫동안 뚜렷한 성과가 없는 지루한 절차가 될 수 있다.

핵무기 문제가 아니더라도 미국이 북한을 압박할 카드는 더 있다. 4월 10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 인권 문제도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북한과 시리아의 화학무기 커넥션 의혹도 미국이 쥐고 있는 패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에 들이밀 패는 계속 나올 것이다.

지금 미국은 시리아 문제를 의식하며 북한과의 협상에 임하겠지만, 그런 상황이 영구히 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특히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쟁 속에서 자국의 필요에 따라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시킬 수 있다. 남북 관계도 이 과정에 연동될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영구 평화란 없다. 특히, 1930년대 대불황 이후 가장 큰 경제 침체의 여파와 미국 제국주의의 상대적 지위 하락 속에 불안정이 점증하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한다면 지난해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공산이 있다. 그리 되면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더 공세적인 조처를 취하면서, 볼턴 같은 전쟁광들이 바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본주의 지배자들 간의 협상과 타협으로는 제국주의가 낳는 불안정이 항구적으로 해소될 수 없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의 경쟁 체제이고, 이 세계 체제와 경쟁은 자본주의 지배자들도 근본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실체이고 경향이다. 이미 100여 년 전부터 레닌과 부하린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적해 온 이 통찰은 지금도 유의미하고 적절하다.

제국주의적 경쟁, 그리고 이것이 한반도에 주는 압력은 근본적으로 남북 두 정상들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다. 한반도 평화 실현 또는 이를 위한 안정적 조건 마련조차 남북 대화로, 심지어 북·미 정상회담으로도 이루기 어렵다.

따라서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우익처럼 반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정상회담을 지지할 수도 없다. (지지냐 반대냐가 아니라 분석하고 들춰 내고 그 여백을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 간 대화에 기대를 걸고 그 성공을 바라게 된다면, 기층 운동의 구실은 “남·북·미 당국이 이 길을 끝까지 가도록 뒷받침하고 감시하는 것”에 국한될 것이다. 실제로, 기층 운동이 협상 당사국들에게 “합의를 확고하고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데 주력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 되면 기층 운동은 협상 주체인 정부의 위력을 인정한 채 그저 구경꾼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저 협상 과정에 제시될 만한 의제(가령 쌍중단 같은)를 정부에 조언하고 응원하는 구실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은 정부 당국 간 대화의 향방에 따라 사기가 올랐다 내렸다 할 것이다.

미국이 언제 변심할지 모르니, 우리 민족 대 미국과의 대결을 위한 민족대단결을 촉진해 이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민족 단결을 촉진하는 게 아니라, 계급 분단을 더 선명하게 하는 동인이다. 당장, 단결을 촉구하는 대상일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섰으나 한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충실하며 한·미·일 공조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에서도 일관성을 보이지 못하고 오락가락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는 데 진짜 필요한 조처를 단행할 생각이 없다. 비록 규모를 “축소”했다고 발표했으나 대북 침략 연습인 한미연합훈련을 지속했다. 사실 지난 7~8년 동안 한미연합훈련의 규모가 나날이 확대돼 온 것을 감안한다면, 이게 진정한 “축소”인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사드 배치를 용인한 데 이어 정부는 사드의 영구 배치를 위한 기지 시설 공사를 강행할 태세다.

또한 대대적인 군비 증강에 나섰다. 이미 한국은 매년 지속적으로 군비를 늘려 육중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국가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국방비 증가율을 대폭 높이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런 점들은 모두 불안정의 요인이 되고 북한을 자극할 테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런 데서 양보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종전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진정한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정부 당국 간 대화를 지켜보고 이를 뒷받침하는 데 주력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평화운동의 기초를 놓으려고 애써야 한다. 미국의 패권 정책과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력 문제에 항의하는 독립적인 운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군비 증강, 인공지능을 이용한 무기 개발 등 노동자와 서민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는 위험에도 반대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의 구실이 중요하다. 레닌이 지적했듯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이고, 이를 쓰러뜨리는 데서 노동계급의 힘만한 것은 없다.

제국주의를 위협할 만한 노동계급의 잠재력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지키려고 싸우는 과정에서 발현될 수 있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을 추구해서는 이런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오히려 정부와 기업의 구조조정에 맞서 자신의 일자리와 임금을 방어하고, 최저임금 인상 효과 상쇄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하는 과정에서 그런 잠재력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바란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노동계급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혁명적 좌파의 건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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