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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란 핵합의 흔들기 생떼:
나는 때리지만 너는 맞는 게 아니다?

미국이 이란에 ‘나는 약속을 뒤집지만 너는 계속 지켜라’ 하고 우기고 나섰다.

미국 재무장관 스티브 므누신이 의회에 출석해, “이란에 대해 매우 강력한 제재를 단행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제재 유예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고 말한 것이다.

이란 핵합의의 골자는 서방이 이란에 가했던 경제 재제를 완화하는 대신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란 핵합의를 “역사상 최악의 합의”라고 비난해 왔고, 다음 달 12일 이란 제재를 도로 강화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미국 대통령은 주기적으로 이란 제재 유예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는데 그 날짜가 돌아오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이란에 강력한 제재를 부과한다면, 많은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철회할 공산이 크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이란에 투자하는 기업까지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제재 부활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이란 화폐 가치는 폭락하고 더 많은 기업들이 투자를 미뤘다. 그래서 이란 측은 ‘핵합의 파기 운운만으로도 핵합의로 약속받은 경제 제재 완화 조처가 이미 날아갔다’고 불평한다.

따라서 미국이 제재 부활을 확정하면 이란이 이를 핵합의 파기로 받아들이며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임은 뻔하다. 그런데도 트럼프 정부는 뻔뻔하게 ‘제재는 가하겠지만 핵합의 파기는 아니다’ 하고 우기는 것이다.

생떼 속에 묻어나는 미국의 난처함

현재 미국 지배자들은 세계 지배 전략에서 중국과의 경쟁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여기에 외교적·경제적·군사적 역량을 집중하고자 한다. 그래서 중동에서 개입을 일부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 왔고, 2015년 이란 핵합의는 그 결과로 나온 것이다.

트럼프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중국에 적대적이고, 다른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중동 개입을 줄이고 싶어 한다. 다만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본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핵합의가 이란의 경제 성장을 돕고 장기적으로 핵무기 개발도 막지 못해 중동에서 이란이 자신들에 도전할 힘을 키워 준다고 본다.

그래서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을 상대로 호전적으로 나서고 미국은 개입(적어도 직접적 군사 개입)은 줄이길 바라는 듯하다. 이런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안이 실현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갈수록 호전적으로 나서는 것을 거들며 그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라면서 5월에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한다는 발표가 대표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핵개발을 용인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반면, 지리적으로 중동에 좀더 가까운 유럽 지배자들은 이런 구상을 선뜻 지지하지 않고 이란 핵합의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한다. 그들이 미국보다 약속을 더 중시하거나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는 중동의 역사를 조금만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은 중동에서 미국만큼 군사력이나 동맹 관계가 강하지 못한 처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대 이란’ 갈등이 격화하면 자신들의 입지가 더 좁아지고 상대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질까 봐 우려한다. 지금도 유럽행 난민의 상당수가 중동 생지옥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인데, 난민이 더 많아지는 것도 싫고 이란 석유를 개발할 기회를 놓치는 것도 아깝다. 그래서 이란 핵합의 파기에 반대한다.

미국의 문제는 유럽 국가들의 지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3년 유럽 국가들 다수의 반대도 무릅쓰고 이라크를 침공한 때와 비교해 미국 경제의 상대적 지위 하락은 더 심해졌고 중동 개입에 대한 국내적 불만은 더 커졌다. 최근 시리아 공습에서 미국이 영국·프랑스와 함께한 데서 보듯, 미국은 중동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에도 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바란다.

지금 미국이 ‘약속을 깨더라도 약속을 깨는 건 아니다’라고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는 데는, 흔들리는 중동 패권을 다잡을 방안을 놓고 지배자들이 갈팡질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중동은 더 위험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