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출신 김기식 민주당 전 의원이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된 지 2주 만에 사임했다.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국회의 국정감사 대상 국가기관)의 돈으로 해외 ‘연수’를 다녀온 의혹이 결정타였다. 전형적인 의원 특권이었다.

김기식은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가 온건 개혁주의 엔지오 참여연대에 들어갔다. 그는 참여연대를 이끌던 시절부터 좌파와 확실히 거리를 두는 한편, 주류 정치의 명망성을 중시했다.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을 기피하고, 심지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꺼렸다. 덕분에 마침내 주류 정치 체제로 편입되고 민주당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모든 의원들의 관행이라는 변명은 그가 주류 정치 체제에 얼마나 적응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 변명은 엔지오 출신 개혁파 관료가 되길 기대한 개혁 염원 대중 다수의 실망만 자아냈다. 교체 여론이 과반이었으니,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수가 사퇴 입장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위법성 판단을 의뢰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작 의원 특권이 아니라 정치자금법 위반을 문제 삼았다. 김기식 씨가 의원직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 후원금을 특정 연구소에 기부한 액수가 과다했다는 것이다.

이는 선관위가 의원들의 특권 관행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음을 보여 준다. 선관위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판·검사 출신자들로 이뤄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쨌든 국가기관이 김기식을 낙마케 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줬다.

금융감독원이 채용 비리 등을 명분으로 하나KEB금융지주 회장 김정태를 겨냥했지만, 웃기게도 김정태는 대주주들의 지지로 연임에 성공하고, 금융감독원장만 두 명이 잇따라 낙마하게 됐다.

김기식의 낙마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권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지는 단정할 수 없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부산, 경남에서도 민주당 후보들이 여전히 앞서고 있다. 게다가 정권의 호재인 남북 정상회담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이 개헌안을 호기롭게 발의하면서 의도한 것은 개헌으로 정국을 주도하고 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뜻대로 안 되고 있다. 청와대 주도 개헌 논의는 김이 빠졌고, 김기식 낙마는 문재인 식 ‘개혁’ 가면 뒤에 숨은 위선과 타락을 언뜻 보여 줬다.

여기에 드루킹 파문까지 겹쳐 정권 실세인 조국, 김경수 등이 곤경에 처했다.


왼쪽의 실망은 우파의 기회

문재인의 지지율 위기는 지난해 가을에도 있었다. 노동 적폐 청산과 세월호 해결에서 진전이 없고 오히려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등 우파와 타협할 기미가 보이자 지지율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다가 올 초에는 평창 올림픽과 남북 화해 행보, 그리고 남북·북미 정상회담 합의 등으로 다시금 지지율이 올랐다.

그러나 노동계급 일각에서는 불만과 실망이 커지고 있다. 중도 자유주의 정부에 불과하지만 촛불로 우파 정권이 밀려난 후 들어선 정부라 당장은 대안이 마땅치 않다고 보고 소극적으로 기대하거나 비판을 자제해 왔는데, 실망스런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올 2월 말 문재인 정부는 노동계가 반대했는데도 근로기준법을 개악했다. ‘일자리 정부’라더니 구조조정으로 취업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은 거의 ‘만족 제로’ 수준으로 귀결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렸다고 생색을 내더니 인상 효과를 상쇄하는 최저임금법 개악을 하려 한다. 

열성 지지자들이 “이니[지지자들이 부르는 문재‘인’의 애칭]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며 ‘묻지마’ 지지를 보냈지만, 문재인은 노동적폐 청산과 친노동 개혁을 멀리해 왔다. 문재인에게 이 일들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임이 명백해지고 있다. 세월호 해결도 말은 풍성하지만, 취임 1년 동안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자유한국당 등 우파들은 이때다 싶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패를 말할 자격이 없는 자들의 위선은 메스껍다. 그럼에도 정권 교체의 진정한 동력이었던 진보 염원 대중이 정부에 서서히 실망하고 있는 틈을 우파가 포착한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드루킹 수사 파문도 그런 공세의 하나다.

3월 민주당 의뢰로 경찰이 수사를 시작해 드루킹을 구속한 것은 친노·친문계 핵심 김경수를 드루킹의 협박에서 보호하려던 의도로 보인다. 김경수의 경남도지사 출마는 현 정부가 꽤 공을 들이는 선거다. 갈등이 일어나기 전인 지난해에는 검찰이 드루킹을 수사했으나, 불기소 처분하고 종결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수사 상황을 파악한 〈조선일보〉과 〈동아일보〉 등 우파 언론이 드루킹의 여론 조작에 김경수가 연루됐다고 폭로해 버렸다. 결국 김경수는 드루킹과 직접 만났고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한 모 변호사를 청와대에 천거했다고 인정했다. 청와대 민정비서관 백원우(역시 친노친문 핵심)도 그 변호사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우파 야당은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과 민정수석 조국 등 좌파 출신 인사들을 교체하라는 공세를 펴고 있다. 금융감독원장 인사도 난관이다. 안철수는 여론 조작이 개입된 대선 부정이라고까지 한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미국의 외교·국방 라인은 오히려 강경파로 교체됐고, 미국은 러시아를 떠보며 시리아를 폭격했다. 정상회담의 성패가 미국에 달려 있다는 걸 아는 문재인 정부는 모순된 행보를 보인다. 평화 정착 기대감을 높이면서도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 한다. 트럼프도 그런 처지를 이용해 주한미군 주둔비용 부담을 늘리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요컨대, 우파가 메스꺼운 위선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과 평범한 사람들이 염원하는 진정한 개혁에 문재인 정부가 미흡하거나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물론 문재인의 지지율은 아직 높다고 할 수 있다. 순전히 우파의 득세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앞으로도 문재인 정부가 우파와 타협을 한다면, 진보·개혁 염원 대중의 환멸이 커질 것이고, 우파가 덕분에 되살아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따라서 우파 부활을 염려해 문재인 정부 비판을 삼갈수록 곤란해지는 건 노동운동과 진보·좌파다. 특히, 좌파 노동단체들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한계와 배신을 들춰 내고 지배계급의 분열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분발케 하려 애써야 한다.


민주당의 사설 여론 공작

구속된 드루킹은 오랜 친노·친문 성향의 유명 블로거로 주로 안철수, 정동영 같은 비노반문 정치인들이나 비노친문인 추미애, 비노비문 성향의 이재명 등을 비판하는 글을 써 온 인물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고 거기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 명성을 얻고, 다시 이를 활용하는 여론 ‘브로커’ 구실을 해 온 듯하다.

드루킹이 청탁한 인사를 김경수가 청와대에 추천한 것을 보면, 그들 사이에 끈끈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청탁 거래의 존재와 실패, 실제 선거운동 양상을 보면, 여러 친노 성향 팀들이 인터넷 여론 ‘공작’을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정황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주로 ‘자발적 지지자’들이 벌인 일이기에 우파 정권이 국가기관을 동원해 벌인 사악한 관권 선거 범죄와는 다르다는 항변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은 대선 때 경쟁자에게 가해진 문자 폭탄과 악성 댓글을 “경선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일로 취급했다.

그러나 드루킹은 댓글 추천수와 조회수 등을 조작했다. 드루킹의 전력을 볼 때 이런 방법들이 문재인 지지에 활용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인사 청탁 거래가 드러나 이 행위들에 대가가 제공됐다는 의혹마저 불거졌다.

더 중요한 점은 다른 데 있다. 그동안 좌파의 문재인 정부 비판을 막으려고 가짜 뉴스 등을 유포하며 좌파를 음해한 일들도 진짜 기층 여론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격에 위축돼 할 말 못한 일부 좌파는 ‘허깨비’에게 겁먹은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런 공작들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 국정원·국방부 댓글부대의 맹렬한 활약도 박근혜 정권 퇴진과 두 우익 전직 대통령의 구속을 막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온라인 공간이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공정한 공간(플랫폼)처럼 보는 것도 착각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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