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부족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4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 사회 간호노동의 현실, 그리고 개선 방향’ 토론회도 그런 자리였다. 이 토론회는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박선욱 공동대책위)가 주최했다.

공동대책위는 지난 2월 극심한 노동강도와 ‘태움’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고, 병원 측의 공식 사과와 산업재해 인정, 정부와 병원 당국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결성됐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지난 3월 서둘러 수사를 종결하려다가 유가족과 여론의 반발이 일자 수사 종결 방침을 거둬들였다.

토론회에는 다양한 경력의 간호사들이 나와 오늘날 간호사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생생히 폭로했다.

“저는 졸업 후 병원 입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기약 없는 ‘대기발령’을 받은 채 요양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요양병원은 법에서 정한 인력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 환자 안전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야간 근무 때마다 제발 불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불이 나면 환자 112명이 모두 사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박정수 간호사, 1년차)

“저도 박선욱 간호사처럼 처음 발령받은 곳이 내과 중환자실이었습니다. 당시의 육체적 심리적 압박은 엄청났어요. 1년 미만 신규 간호사의 사직률이 35퍼센트에 이르는 현실을 간과하지 말아 주세요.”(최원영 간호사, 8년차)

“아이가 다쳤다고 연락이 와도 가 볼 수 없고, 동료 중 누군가 상이라도 당하면 휴일에도 불려 나가야 합니다.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문을 꼭 닫고 있으라고 할 수밖에 없는 불안한 마음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습니다.”(김경희 간호사, 25년차)

이날 토론회에는 강민철 전공의도 함께했다. 그는 간호사들의 고통에 동병상련을 느낀다며 병원 전체의 인력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2부 토론에 나선 강경화 한림대학교 간호학부 교수는 간호사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신규 간호사 교육 과정을 크게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동희 노무사는 박선욱 간호사가 겪은 정신적 고통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정부가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김동근 의료연대본부 정책위원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대책’의 약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인력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이토록 조건이 악화됐을까?

발표가 끝난 뒤 이뤄진 질문과 토론에서 유문숙 아주대학교 간호대학 학장은 오늘날 간호 인력 문제가 심각해진 원인으로 병원들의 ‘경영 합리화’ 정책을 지적했다.

“10여 년 전부터 대형 병원들이 앞장서서 경영 합리화라는 걸 추진했어요. 핵심은 입원 환자들의 입원일수를 줄이는 건데요. 입원일수가 늘어날수록 수익률이 낮아진다며 어떻게든 환자들을 일찍 퇴원시키는 게 목표가 된 거죠. 그런데 필요한 검사와 치료는 해야 하니까 환자들을 24시간 뺑뺑이를 돌려요. 그럼 환자들만 움직이나요? 간호사들과 병원 전체가 훨씬 바쁘게 움직이게 되는 거예요. 요즘은 새벽 2시, 4시에도 검사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실제로 지난 10여 년 동안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재원일수는 빠르게 줄었다.(그림1) 병원의 이윤을 위해 환자들과 병원 노동자들을 혹사시킨 것이다.

그림 1 병원 규모별(병상 수) 평균 재원일 수 ⓒ‘병원경영분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환자 수도 늘었고 이에 따라 병원들도 대형화하고 병상 수도 급격히 늘었다. 정부는 ‘외국인 환자 유치’, ‘의료 서비스 수출’ 등 의료 상업화 정책을 추진하며 국제적 안전 규제를 일부 도입했지만, 국제 기준을 따라잡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투자 때문에 노동강도만 크게 높아졌다.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고는 이런 형식적인 안전 규제가 거의 효과 없음을 비극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다.(관련 기사 :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사망 사고 — 이윤을 좇는 병원들과 이를 방치한 정부가 낳은 참사’)

“게다가 전공의 수는 지난 몇 해 동안 줄었어요. 그러니 의사들이 하던 일까지 간호사들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의사를 대신하는 PA간호사(전담간호사)가 수천 명이나 돼요.” 유문숙 학장의 말이다.(그림2)

그림 2 인구 10만 명당 퇴원 환자 수와 의대 졸업생 수 ⓒOECD

의사가 부족해 간호사들이 업무를 대신하는 일은 PA간호사 외에도 광범하게 벌어지고 있다. 각종 처치와 약물 투여는 물론, 심전도 검사까지 간호사들이 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전공의 노동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는 특별법이 시행되자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요컨대, 환자의 안전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민간병원들과 이런 민간병원들에 의료를 내맡겨 온 정부가 문제를 키운 장본인이다. 공공병원들도 민간병원의 ‘경영 합리화’를 따라가고, 서구 복지국가들에서도 공공의료가 침식되는 현실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인간의 안전을 근본에서 위협하고 있는지 잘 보여 준다.

정부가 직접 재정을 투자해 공공병원을 늘리고,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갖추도록 민간병원들을 강제하는 것만이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이전 정부들이 내놓았다가 실패한 것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대책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기층에서 확산되는 저항

2017년 벌어진 성심병원 사건을 전후로 간호사들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든 바꾸려 행동에 나서고 있다.(관련 기사 : ‘분노한 간호사들, 거리로 나서다’(240호))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고,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 사건까지 연이어 벌어진 사고들은 ‘나도 언제든 똑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간호사들 사이에 확산시켰다.

민주노총 산하의 병원 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의 경우 가입이 크게 늘었고 기존 조합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도부의 지침 없이도 현장 간호사들이 연장근무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이런 움직임은 더 확산돼야 한다.

노동조합 바깥에서도 간호사연대 같은 단체들이 만들어져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공의들도 10년 동안 요구해서 특별법을 얻어냈잖아요. 우리도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서면 그럴 수 있고, 어쩌면 더 빨리 성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임주현 간호사연대 대표)

5월 12일 세계 간호사의 날을 맞아 박선욱 공동대책위는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할 것이다.

노동조건 개선과 환자 안전을 위한 간호사들의 투쟁에 지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