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여전히 지정학적 갈등과 전쟁은 전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중동을 살펴보자. 최근 미국이 시리아에 폭격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조만간 ‘이란 핵합의’가 파기될지 모른다. ‘이란 핵합의’가 파기되면 중동의 상황은 더한층 악화될 것이다.

도대체 미국은 왜 중동에 끼어들고 있는 것일까? 미국은 세계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 사태 해결을 위해 UN과 ‘국제 사회’가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닐까?

3월에 출간된 《파멸 전야》에서 노엄 촘스키는 이런 질문들에 답변하며 “‘세상을 끝장내려는’ 범죄자” 미국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촘스키는 국내에서도 《불량 국가》, 《숙명의 트라이앵글》 등의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 비판적 지식인이다. 미국인이지만 미국 저격수인 그답게 이번 책에서도 세계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미국 지배자들의 침략 역사를 세세하게 폭로한다.

《파멸 전야》 노엄 촘스키 지음 | 한유선 엮음| 세종서적 | 2018년 | 18000원| 420쪽

촘스키는 미국과 “국제 사회”야말로 진정한 깡패라고 말한다. 촘스키는 “일반적인 영미 담론에서 ‘세계’라는 용어는 정확히 워싱턴과 런던의 정치 계층(그리고 특정 문제에서 그들과 동의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그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고등법원이 가자지구에 전기를 끊어 수도, 하수 처리 등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설비를 가동할 수 없게 만들어 팔레스타인 시민 모두를 처참한 곤경에 빠뜨리는 가혹한 제재안을 승인하”는 것은 “민주주의”이지, “의도적으로 살해한 것”은 아닌 게 된다.

미국이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명목으로 저질러 온 충격적 만행들을 폭로한 부분을 읽으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예컨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을 “길을 걷다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 취급하며 민간인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폭격을 했다. 1998년에는 수단의 한 제약 공장을 폭파해 “인도주의적 대참사”를 일으켰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중동에서 벌여 온 일은 오히려 중동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다.

최근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으로 다시 한번 뜨거워진 팔레스타인 문제도 많이 다룬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의 일부 형태에는 동의하겠지만 그것은 ‘포로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음식을 요리하고 문화 행사를 여는 정도의 자치권만 인정되는 포로 수용소식 자치’가 될 것”이라고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촘스키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개입이 최근의 난민 문제와 중동 불안정의 진정한 원인이라고도 지적한다. “도대체 진정한 범죄자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게다가 미국이야말로 세계를 수차례 핵전쟁의 위기로 빠뜨릴 뻔한 장본인이다. 촘스키는 “핵전쟁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돌아 보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군사적 경쟁에 몰두하는 미국의 민낯을 보여 준다. 군사적 경쟁이 더욱 첨예해지는 지금,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버락 오바마는 2009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외치며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향후 30년 동안 미국 핵무기 비축을 위해 1조 달러를 지출하기로 결정했다고 촘스키는 폭로한다. 

왜 미국은 이렇게 세계를 위기로 빠뜨리는가? 그는 “미국의 힘은 역사적으로 전례 없던 정점에 도달한 1945년 이래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제국주의적 지배 원칙은 거의 변한 것이 없지만 다각화하는 세계에서 힘이 광범위하게 분산되며 통제 욕구를 실행할 수 있는 미국의 역량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미국은 동아시아·동유럽·중동(“가장 중요한 세 지역”)에서 경쟁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경제적·지정학적 권모술수를 총동원하고 그 과정에서 앞서 말한 악행을 저지른다.

“국제 사회”를 이끄는 미국이 세계를 무대 삼아 자신들의 패권을 위해 온갖 악랄한 행위를 일삼아 온 역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교과서나 주류 언론은 이를 말하지 않는다. 한평생 그 진실을 들춰 온 촘스키의 최신작인 이 책을 추천한다. 420쪽의 두꺼운 책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촘스키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만약 직접 행동에 나서려는 대중을 제대로 조직하고 잘 이끈다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다만, 분명하고 뚜렷한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자신도 한계를 지적한) 유럽연합이나 국가 간 협정에 기대를 내비치기도 하는데, 이는 분명 후퇴다. 이처럼 촘스키는 종종 부적절한 대안으로 이끌리기도 하는데, 최근에 '시리아 내 쿠르드인 보호'를 명분으로 미국의 개입을 촉구하는 연서명에 올린 것도 그런 사례다.

촘스키가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이 책의 원제) 질문에 천착했다면, 우리는 더 나아가 ‘이런 세상을 바꿀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질문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촘스키와 달리,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그에 기초한 제국주의 분석은 두번째 질문의 답도 제공해 준다. 

또한 촘스키가 라틴 아메리카나 중동에 비해,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수준으로만 다룬 것도 아쉽다. 촘스키 책에 흥미를 느낀다면,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으로 한반도 문제를 다룬 책  《제국주의로 본 트럼프 시대의 제국주의와 한반도》(김영익·김하영 외 지음, 책갈피)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