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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지음, 홍기빈 옮김, 아르테):
마르크스 평가절하하기

이 글은 5월 5일 국역·출판 예정인 《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지음, 홍기빈 옮김, 아르테)에 대한 서평이다. 원래 격월간 잡지 《마르크스21》 17호(2016년 12월)에 실린 것을 《마르크스21》 편집부의 양해를 얻어 본지에 게재한다.

서평의 필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다.

베르너 블루멘베르크의 유용한 마르크스 평전 영문판이 1972년에 출판됐을 때, 당시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역사학자였던 개레스 스테드먼 존스가 그 책의 서문을 썼다. 그 서문에서 스테드먼 존스는 블루멘베르크가 마르크스를 “사회민주주의적으로 해석”한 것을 비판하며, 블루멘베르크가 “마르크스의 오늘날의 의의를 그가 세운 새 혁명 이론이 아니라, 저작 전반에 흩뿌려져 있는 그의 원대한 휴머니즘과 풍부한 식견”에서 찾는다고 불평했다.[1]

하지만 그로부터 거의 45년이 지난 지금, 스테드먼 존스는 스스로 쓴, 방대하며 이미 극찬을 받은 마르크스의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카를”(그는 다소 수줍어하며 줄곧 마르크스를 이렇게 부른다)의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컸을 때는 “1860년대 중반”으로, 제1인터내셔널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며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적 언어”를 구축하고, 혁명적 공산주의자였던 자신의 청년 시절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인 때이다.[2]

1972년의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가 1871년 파리 코뮌을 신화적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한 블루멘베르크를 비판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은 “부분적으로 상상이 투사된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또, 영국 진보 학자들은 코뮌을 옹호하려면 마르크스를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고립돼 있었음을 후회한다.[3]

스테드먼 존스의 이런 변심을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1972년의 그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뉴레프트 리뷰》 편집위원 중에서도 지적으로 두드러지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에 《뉴레프트 리뷰》와 결별하고 포스트구조주의를 받아들였다. 1983년 그는 《계급의 언어》라는 책을 내놓아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계급은 객관적 사회관계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정치적 운동에서 득세하는 담론이 만들어 낸 구조물이라고 주장했다.[4] 그는 자신의 마르크스 평전에서도 이런 계급 개념을 반복한다. 그런데 그는 계급이 그저 말에 불과하다는 이 관념이 새 세대에게는 얼마나 생경하게 들리는지 모르는 듯하다. 새 세대는 ‘1퍼센트 대 99퍼센트’라는 오큐파이 운동의 구호가 신자유주의 시기에 형성된 극명한 경제적 불평등을 포착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스테드먼 존스는 포스트구조조의자들이 모든 것을 담론으로 환원하며 사용하는 현란한 철학을 다뤄야 할 수고는 덜어 준다. 스테드먼 존스가 자신의 마르크스 평전에서 채택한 접근법은 정치사상사에서 ‘케임브리지 학파’라고 불리는 조류의 접근법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사상 조류는 틴 스키너와 존 던 같은 학자들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키너와 던은 이론적 문헌을 (스테드먼 존스의 말을 빌리면) “역사가가 신중하게 재구성해야 하는 특정한 철학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그 저자가 하는 개입”으로 다룬다.[5] 스테드먼 존스는 지적으로 발군의 역사학자이고, 그만큼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이 싹튼 맥락, 즉 마르크스가 비교적 자유주의적이던 라인란트 지역에서 태어나, 1830년대와 1840년대의 반동적 프로이센 체제를 겪고, 헤겔 철학과 결별한 것 등의 맥락을 상세하고 능숙하게 보여 준다. 우리는 [그의 책에서] 1848년을 앞둔 파리 상황, 1848년 혁명, 영국 노동계급의 발전, 제1인터내셔널의 결성을 가능케 한 유럽 급진 정치의 발전 등에 대한 유익하고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맥 빠지는 내용도 있다. 아마도 스테드먼 존스가 자신의 과거 때문에 마르크스에 대해 모순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마르크스를 ‘카를’이라 부르며 계속 친숙함을 내비치지만 말이다.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가 가정적이지 않았던 것에 불만을 느낀 주변 인물들의 말을 부지런히 인용한다. 또한 증거 제시도 없이 1845년 마르크스가 프랑스에서 추방된 것은 “거만하거나 무능한” 탓이었다고 주장한다.[6] 어떤 곳에서는 1850년대 후반 마르크스가 “통제 불가능한 편집증으로 말미암아 극단의 희열과 상상 속의 복수를 넘나드는 감정 기복”에 시달렸다고 넌지시 말한다.[7] 더 심각한 문제는 스테드먼 존스가 마르크스의 1844년 논설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를 “사회주의적 반유대주의”의 사례로 인용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 글을 두고 핼 드레이퍼와 데이비드 리어포울드가 벌인 폭넓은(또한 결코 무비판적이지 않은) 논의들을 못 본 체하면서 말이다.[8]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가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에서 주되게 비판한 헤겔주의 좌파 철학자 브루노 바우어에게 상당한 일체감을 표하지만, 어쩐 일인지 바우어가 훗날 맹렬한 반 유대주의자로 변신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최근에 나온 학술적 마르크스 평전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필자는 스테드먼 존스의 책 대신 2013년에 출판된 조너선 스퍼버의 책을 추천하겠다. 비록 스퍼버는 스테드먼 존스보다 이론적으로는 취약하지만, 스테드먼 존스와 달리 마르크스에 대한 뒤섞인 감정으로 혼란을 겪지는 않는다. 게다가 스퍼버는 19세기 독일의 급진 사상을 연구한 역사학자로서 마르크스 생전의 독일 상황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마르크스를 한 인간으로서 있는 그대로 다루는 데서도 스테드먼 존스보다 훨씬 낫다.[9]

스테드먼 존스의 마르크스 평전은 그 부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스퍼버의 책보다 야심만만하다. 스테드먼 존스는 진정한 마르크스는 역사과학의 창시자라는 신화적 인물, 즉 1883년 사망 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제2인터내셔널이 창조한 가공의 인물에 가려 실종됐다고 주장한다.(스테드먼 존스는 엥겔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아무런 증거 제시도 없이 재정적 의존 때문에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이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이의 불화를 감췄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런 생각이 스테드먼 존스의 고유한 것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마르크스주의·비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주장한 것이다. 마르크스 사후에 날조된 공식 ‘마르크스주의’와[10]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은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이냐는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에서 무엇을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다.

스테드먼 존스는 자신의 마르크스 평전이 갖는 독특함이 바로 마르크스 사후에 “부풀려진 그의 명성”을 바로 잡은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11] 진정한 마르크스가 일생을 바쳐 연구한 정치경제학 비판은 세 권짜리 《자본론》이라는 결실을 맺었지만 이 결실은 마르크스 생전에는 제1권만 발표된, 미완성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가 말년에 지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연구를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스테드먼 존스는 엥겔스가 죽기 직전인 1895년에 출간한 《자본론》 제3권은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저작이지만 막상 출판 뒤에는 모두 실망했다고 주장한다. 그 책이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붕괴하고야 말 것이라는 증거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가 말년에 주로 관심을 둔 것은 공동체적 사회 형태, 즉 차르 시대 러시아의 농촌 공동체 미르처럼 계속 존속한다면 자본주의를 우회해 사회주의로 가는 토대가 될지도 모르는 공동체에 대한 인류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조차 이런 전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테드먼 존스의 책은 계속 이런 식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오늘날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는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보기에 환상에 불과한 마르크스의 정치적 희망과 마르크스 연구의 지적 실패 사이의 간극을 강조하고 싶은 듯하다.

스테드먼 존스는 지적으로 독창적인 마르크스 평전을 내놓고 싶었겠지만 그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다루는 수준은 오늘날의 학술 연구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 몇십 년 동안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발전했다. 방대한 분량의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이 출판된 덕분에 마르크스의 메모와 원고들을 훨씬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테드먼 존스는 대체로 이런 연구 성과들을 외면한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처음에는 정치경제학을 집중 연구하는 시기를 거쳤다. 마르크스는 1840년대 중반에는 파리와 브뤼셀에, 1850년 초에는 런던에 머물렀다. 그 뒤 주로 1857년과 1867년 사이(전적으로 이때만은 아니지만)에, 손으로 쓴 원고를 잇달아 내놓았다. 스테드먼 존스는 이 시기의 원고들 중 첫 번째 것인 《그룬트리세》(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1857~58)에 초점을 맞추고 그 뒤에 나온 원고 두 개에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다. 그 두 원고는, 방대하면서도 여러 면에서 매우 중요한 《1861~63년 원고》와 엥겔스가 《자본론》 제3권으로 묶어 출판한 《1864~65년 원고》이다. 이 두 원고를 경시한 것은 치명적 실수다. 왜냐하면 마르크스가 《그룬트리세》 이후 원고들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개념을 다듬고 재정의하고 발전시킨 집약적 과정을 간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2]

그래서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가 1840년대 중반에야 데이비드 리카도의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초판(1817년)의 프랑스어판을 읽었고, 그래서 리카도가 1821년 출판된 자신의 책 제3판에서 노동가치론에 의구심을 표한 것을 파리에 머물던 마르크스가 다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요란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사실 노동가치론과 평균이윤율 존재 사이의 명백한 모순이라는 문제는 이미 리카도의 초판에 등장한 것이다.[13] 하지만 리카도가 노동가치론에 의구심을 표한 것이 초판이든 제3판이든, 리카도의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의 마르크스에게는 관심을 끄는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파리 체류 당시의 마르크스가 쓴 글들을 보면, 그가 아직은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리케 뒤셀이 뛰어난 논평을 통해 보여 줬듯이, 마르크스는 《1861~63년 원고》에서는 이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다.[14] 바로 이 원고에서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지대 이론을 뛰어넘으려 애쓰며, 어떻게 상품의 (노동)가치가 시장 가격의 변동을 좌우하는 생산가격으로 전형되는지를 설명해 노동가치론과 평균이윤율의 모순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내려 했다.(더 자세한 설명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이번 호에 실린 마이클 로버츠의 논문을 참조하시오.) 하지만 스테드먼 존스는 이 원고도 《자본론》과 그 초고들에 대한 엔리케 뒤셀의 연구도 모두 없는 셈 치며 그저 경전을 외듯이 《자본론》 제1권과 제3권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가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버렸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자본이 아주 오래전 미미한 상태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지배하기까지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급격히 성장하다가 결국 전 세계적으로 붕괴에 이를 것으로 묘사했는데, 이런 자신의 분석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5] 그러나 마르크스는 1857~67년이라는 결정적 시기에 쓴 글 어디에서도 자본주의가 경제적 붕괴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처음에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6권짜리 책으로 계획했지만 결국 ‘세계시장과 위기’를 다룬 한 권의 책만 출판됐다. 여기서 위기는 붕괴와 같은 말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실제로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영원히 지속되는 위기는 없다.”[16]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에서 소용돌이 같은 자본의 운동,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 금융 붕괴나 경기 불황과 상호작용하는 것, 금융 붕괴와 경기 불황 덕분에 축적 엔진이 다시 가동될 만큼 충분히 자본이 파괴되고 착취가 증대하는 현상을 상세히 설명한다.(스테드먼 존스는 이를 한 문장으로 일축한다.) 마르크스는 원래 원고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 논의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는데, 엥겔스가 짧게 다듬었다. “따라서 위기들이다.” 호황과 불황의 “악순환”은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17]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권이 출판된 1867년 뒤로는 경제학 연구를 그만뒀을 것이라고 오랫동안 얘기했다. 자본주의가 세계 체제로서 발전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을 보면, (당연히 스테드먼 존스는 무시하겠지만) 마르크스는 1840년대부터 줄곧 부르주아 사회를 초국가적 관계망으로서 분석했다.[18] 1870년대에 마르크스가 주로 몰입한 일의 하나는 《자본론》이 단지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 대한 연구로 한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1권의 프랑스어판에 식민주의와 세계시장에 대한 자료를 추가했다. 마르크스는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새 중심지로 떠오르는 것을 재빨리 간파했으며, 미국의 발전을 다루고자 위기 분석과 금융시장 분석을 확장하려 애썼다.

마르크스는 러시아 농촌 공동체에 관심을 뒀는데, 이는 그가 미국과 러시아의 농업을 연구함으로써 《자본론》 제3권에 실린 지대와 토지에 대한 분석을 심화시키려 한 것과 관계 있다. 마르크스의 연구는 끝이 없었다. 정치 상황과 건강 문제로 주의가 분산되는 와중에도 말이다. 거기에 마르크스의 완벽주의 성향까지 보태면 왜 그가 《자본론》을 완성하지 못했는지 설명이 된다. 마르크스는 1862년 4월 28일 페르디난트 라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성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쓰고 나서 한 달 동안 둔 글에서 결함을 찾아내 싹 다 바꿔야만 직성이 풀린다.”[19] 하지만 마르크스의 원고를 자세히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연구가 참으로 위대하고 오늘날 현실과도 부합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항상 옳았다는 말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는 타도될 것인데, 경제적 붕괴가 아니라, 경제적 위기와 계급 양극화의 누적된 효과에 자극받은 노동계급의 정치 행동으로 타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는 이런 운동이 “자연 현상처럼 거침없이” 발전할 것으로 본다.[20] 스테드먼 존스는 이 문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이 묘사한 마르크스, 즉 제2인터내셔널이 왜곡하고 부풀린 마르크스의 모습에 들어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은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적 인물인] 칼 카우츠키와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같은 이론가들이 열렬히 수용한 사상이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 사상은 러시아 혁명과 볼셰비키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훨씬 더 창의적인 인물들, 예컨대 죄르지 루카치와 안토니오 그람시 같은 혁명가들이 1920년대에 거부했던 바로 그 사상이다. 레닌은 이 세대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파리 코뮌에 대한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다시 보도록, 그래서 그 저작들이 담고 있는 전망, 즉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로 나아가는 능동적 자력 해방 과정이라는 전망과 만나도록 고무했다. 1972년의 스테드먼 존스는 이런 전망을 공유했다. 그러나 2016년의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를 깎아내리려 애쓴다. 하지만 그의 헛수고는 그가 과거의 자신과 싸우고 있을 뿐임을 드러내는 듯하다.


  1. Blumenberg, 1972, ppviii, x. [본문으로]
  2. Stedman Jones, 2016, p466. [본문으로]
  3. Stedman Jones, 2016, p502. [본문으로]
  4.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지적으로 후퇴했다며 엘런 메익신스 우드가 비판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 Wood, 1986. [본문으로]
  5. Stedman Jones, 2016, pxv. [본문으로]
  6. Stedman Jones, 2016, p165. [본문으로]
  7. Stedman Jones, 2016, p405. [본문으로]
  8. Stedman Jones, 2016, p626-627, note 74. [본문으로]
  9. Sperber, 2013. [본문으로]
  10. 또는 ‘마르크스주의들’ — 예를 들어, 독일 사회민주주의식 마르크스주의는 스탈린주의식 마르크스주의와 다르다. [본문으로]
  11. Stedman Jones, 2016, p3. [본문으로]
  12. Callinicos, 2014를 보시오. [본문으로]
  13. 특이하게 스테드먼 존스는 2차 문헌을 거의 인용하지 않는 편인데, 인용한 것들은 주로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가 발행한 그의 동료들의 저작이다. 하지만 그는 케임브리지 학파의 걸출한 학자 피에로 스라파가 편집한 《리카도 전집》(1951~52)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리카도 전집》은 리카도가 노동가치론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본문으로]
  14. Dussel, 2001. See also Callinicos, 2014, chapters 2 and 3. [본문으로]
  15. Stedman Jones, 2016, p430. [본문으로]
  16. Marx and Engels, 1975-2005, volume 32, p128n*. [본문으로]
  17. Marx, 2016, pp375, 364. 마르크스의 위기 이론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Callinicos, 2014, chapter 6을 보시오. [본문으로]
  18. Pradella, 2014. [본문으로]
  19. Marx and Engels, 1975-2005, volume 41, p357. [본문으로]
  20. Marx, 1976, p929. [본문으로]

참고문헌

  • Blumenberg, Werner, 1972 [1962], Karl Marx: An Illustrated Biography (NLB).
  • Callinicos, Alex, 2014, Deciphering Capital: Marx’s Capital and Its Destiny (Bookmarks).
  • Dussel, Enrique, 2001, Towards an Unknown Marx: A Commentary on The Manuscript of 1861-63 (Routledge).
  • Marx, Karl, 1976, Capital, Volume I (Penguin).
  • Marx, Karl, 2016, The Economic Manuscript of 1864-1865: Capital Book Three: Forms of the Process as a Whole (Brill).
  • Marx, Karl, and Frederick Engels, 1975-2005, Collected Works, 50 vols (Progress).
  • Pradella, Lucia, 2014, Globalisation and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New Insights from Marx’s Writings (Routledge).
  • Sperber, Jonathan, 2013, Karl Marx: A Nineteenth-Century Life (Liveright).
  • Stedman Jones, Gareth, 2016, Karl Marx: Greatness and Illusion (Penguin).
  • Wood, Ellen Meiksins, 1986, The Retreat from Class: The New “True” Socialism (Ver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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