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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 푸드’ 반대는 ‘동물 복지’를 위한 것인가?

나는 무슬림 친구가 여럿 있다. 그러다보니, 함께 밥을 먹을 때 ‘할랄 푸드’인가 아닌가를 신경 쓰게 된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이라는 뜻이며, 이슬람 율법에 따라 먹는 게 허용된 음식을 가리킨다. 반대말은 ‘허용되지 않은’이라는 뜻인 ‘하람’이다. 돼지고기가 대표적인 ‘하람 푸드’이다.

소·양·닭 같은 고기는 이슬람식 도축법인 ‘다비하’에 따라 도살해야 할랄로 인정된다. 다비하에 따르면 도축을 할 때는 가축의 머리를 메카 방향으로 놓고 기도를 한 후,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날카로운 칼로 목을 한 번에 긋고, 피가 완전히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할랄 푸드가 이슬람 혐오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마치 히잡처럼 말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기독교 우익들이 동성애 차별과 함께 이슬람 혐오를 자주 써먹는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이 “할랄 단지를 조성하면 무슬림 30만 명이 거주하게 돼 대한민국이 테러 위험국이 된다”는 허위 주장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기독교 우익들은 유럽에서의 이슬람 혐오 논리를 여러모로 차용하고 있기에, 유럽의 할랄 푸드 관련 논쟁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전선의 지도자 마린 르펜이 “파리의 모든 육류는 할랄”이라고 주장하며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고자 했다. 파시스트가 아닌 주류 정치인들도 이를 거들며 파시스트의 성장을 도와주고 있다. 사르코지도 르펜과 비슷한 식의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영국에서도 보수당 정치인들이 사람들이 할랄 육류를 피해서 먹을 권리가 있다며 할랄 의무 표시를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곤 한다.

유럽 사정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육류가 할랄’이라는 주장이 왜 이슬람 혐오와 연결돼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육류가 할랄이든 아니든 간에 비무슬림에게는 겉보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슬림은 할랄 마크가 표시돼 있지 않은 육류는 먹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표시가 안 돼 있는 육류에 의무 표시를 하라니?

특히, 유럽에서는 주로 ‘동물 복지’ 문제로 할랄이 다뤄지기 때문에 진정한 맥락을 알아차리기 더 힘들다. 아마 다비하에는 가축이 고통을 덜 느끼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현대적 도축은 훨씬 더 단번에 가축의 목숨을 끊는다. 그래서 다비하에 따르면 가축의 고통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할랄 푸드나 (비슷한 방식으로 도축을 규정한) 유대교의 코셔 푸드에는 ‘동물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많은 도축장들이 (겉으로 내세우지는 않아도) 이슬람식 도축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유럽의 ‘모든 육류가 할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첫째, 도축장들이 비용이 적게 드는 도축법을 따르는 것은 무슬림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이윤 논리 때문이다. 둘째, 비용 절감이 최우선이므로 현실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많다. 도축장 크기를 줄여 비용을 줄이려다 보니, 도축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가축이 도축 장면을 보게 되거나,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는 가축을 발로 차는 등의 행동을 하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어긋나며 할랄이 아니다.

모든 종교는 다른 모든 사상과 마찬가지로 역사·사회적 산물이다. 종교의 율법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돼왔고, 계속 해석이 변화한다. 오늘날 유럽의 할랄 도축장들은 ‘동물 복지’를 위해 칼로 목을 긋기 전에 미리 가축을 기절시키는 경우가 많다. 2013년 영국 식품표준청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내 할랄 도축장에서 도축된 가축의 88퍼센트가 기절 상태에서 도축됐다.

따라서 할랄 푸드와 동물 복지 논쟁은 이슬람 혐오를 정당화하려는 가림막인 경우가 대다수다.

프랑스 등지에서는 파시스트 깡패들이 할랄 푸드 상점을 습격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여기에는 인종에 대한 증오범죄로 처벌 받는 걸 피하려고 ‘동물 복지를 위한 정당한 항의’라는 식으로 포장하는 경우까지 있다!

물론 동물 학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다비하는 동물 학대와는 거리가 멀다. 또, 무슬림 ‘인간’보다 ‘동물’의 권리를 앞세우려 하면 의도치 않을지라도 한국 사회의 소수자인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긴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2016년 초 박근혜 정부가 할랄 도축장 건설 계획을 내놓은 데 항의해 기자회견을 하며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리고 온라인 SNS로도 할랄 푸드에 대한 비판적인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에 달린 댓글만 보더라도, 마치 이슬람 혐오자들의 축제장같이 돼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할랄 도축장 건설 계획을 내놓은 건 ‘13억 무슬림 시장’을 위한 이윤 논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종교가 사회적 산물이라는 말은 한편으로 종교 내부의 계급적 분단을 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정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그 신자들의 처지와 생각이 모두 단일하지 않다. 자본가 계급과 노동 계급이라는 자본주의의 양대 계급 분단선은 종교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런데 무슬림에 대한 지배자와 우익들의 비열한 공격에 맞서지 않는다면, 위축된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경제·사회적 조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 보다는 자신들의 종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더 집착하게 되고, 그 결과 종교 안에서 보수적인 흐름이 더 득세하기 쉬워질 것이다. 할랄이 동물 복지의 적(敵)인 양 지배자들이 부추기다 보니, 오히려 그 반편향으로 도축 전에 미리 기절시키면 할랄이 아니지 않느냐를 두고 유럽 무슬림 커뮤니티 내에서 논쟁이 있기도 하다는 것이 그 한 예일 것이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사회주의자들이 “민중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 말과 더불어 레닌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다. “종교에 맞선 투쟁은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적 설교에 한정될 수 없으며, 그러한 설교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종교에 맞선 투쟁은 종교의 사회적 뿌리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계급 운동의 구체적 실천과 연결돼야 한다.”

이 둘은 연결돼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억압받는 무슬림의 호민관이 돼야 하고, 동시에 노동 계급 무슬림이 자신의 종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계급 운동이라는 구체적 실천과 연관 맺을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