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김기식이 금융감독원장 자리에서 낙마하고 실세 김경수가 여론 조작 연루 의혹을 받으면서 문재인 정부는 위기를 맞았다. 둘 다 부패 문제이고, 마침 노동계 일각에서도 불만이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큰 지지를 받으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해 “말폭탄”이 오가며 전쟁 분위기가 고조됐던 일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우파는 레드 컴플렉스 효과가 약화되는 것이 짜증스럽고, 코앞의 지방선거도 걱정이 돼 신경질을 부리지만 당장은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문재인은 정상회담 결과를 국회에서 비준 동의 받겠다며 우파 야당들을 압박했다.

그런데 정상회담 나흘 전 정부는 사드 기지 시설 공사를 위해 성주 주민들을 폭력 진압했다. 사드는 박근혜의 대표 적폐로 여겨져 왔고, 정부는 사드가 북한 미사일 방어용이라고 밝혀 왔다. 전쟁이 끝났다는 정상회담 합의와 사드 배치는 배치된다.

사실 이런 식의 모순과 뒤집기가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본 문재인의 진정한 모습이다.

김정은과 민족 화합의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같은 민족의 노동자 구성원들에게는 냉정했다. 3월 말 한국GM, 금호타이어, STX조선소 등에서 노동자 구조조정이 줄줄이 문제가 됐을 때, “정부는 절대 정치적 논리로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경련 대변지인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이 발언을 극찬했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며 취임 후 첫 업무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있는 일자리 수만 개가 날아가는 것을 외면한 것이다.


개혁 조처는 굼벵이, 개혁 성과 기만은 “만리마”

지난해 5월 10일 취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약속했다. “구 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 촛불 운동의 적폐 청산 염원에 부응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도 말했다. “[오늘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 …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이다.]” 

ⓒ출처 청와대

“적폐”는 정치적 용어로 바꿔 말하면 반노동·친기업·친제국주의 정책들과 특권층 우대 관행들이다. 그러므로 “적폐 청산”은 노동자·민중을 억압한 우파 통치자들을 응징해 그런 짓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다. 진정한 정의 실현인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요구할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 스스로 우파 정권을 끝내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 봄 더 나은 현실적 대안이 공식 정치에 없었기 때문에, 촛불을 지지한다고 말한(말뿐인데도) 새 정부에 적폐 청산의 기대가 투영된 것이다.

그런데 우파는 위에 언급된 악행을 포기할 리 없다. 그러므로,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 한국 갤럽의 조사 결과를 봐도, 60퍼센트가 넘는 지지(긍정 평가)층에서 지난해 지지 이유 1순위는 줄곧 ‘적폐 청산’이었다. 반대로 부정 평가층에서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는 “과거사 들춤/보복 정치”가 많이 꼽혔다.

이를 뒤집어 보면, 문재인 정부가 계속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 적폐 세력과 타협하거나 스스로 적폐를 쌓으면 우파가 되살아나고 지지층이 급속하게 이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위기라고 할 지난해 9월이 바로 그런 상황을 미리 힐끗 보여 줬다. 그 시기에 문재인은 경북 성주에서 사드 배치를 완료하려 주민들을 폭력 진압했다. 국방장관이 나서서 김정은 참수 부대 창설 운운했다.

또, 여당은 헌법재판소 내 유일한 개혁파 김이수 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임명하는 데에 실패했다. 개혁 인사라고 헌법재판관에 추천된 이유정은 “비상장 주식 대박” 특혜가 드러나 사퇴했다. 국무총리·경제부총리 등이 나서서 이명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규제 완화와 민영화 법안들을 통과시키려고 바람을 잡았다.

반면,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석방과 이영주 전 사무총장 수배 해제, 쉬운 해고 등 노동부 2대 지침 폐기, 전교조·공무원노조 인정, 백남기 농민 살인 진압 처벌,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등 대통령 권한으로 즉시 시행될 수 있는 일들이 취임 반년이 되도록 진척이 없는 상태였다.

적폐 청산이 지지부진해 노동자·민중의 염원에 역행한 것이 위기를 부른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면 또 그럴 것이다.


정국 주도를 위한 줄타기

과거 김대중·노무현 민주당 정부는 친제국주의·친시장 정책을 폈다. 지배계급 내에서 헤게모니를 쥐지는 못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당시 전신들과 마찬가지로 기업주들과 국가 관료 등 지배계급의 지지를 받는 차선책 정당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다.

현 여당이 야당이었을 때는 다음 선거를 의식해 우파 정책들에 반대하곤 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 시점에 가면 기업주들(과 그들의 언론)의 압력에 은근슬쩍 꼬리를 내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사실 수천 번도 더 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우파의 엄살과 달리) 지나쳐서가 아니라 촛불의 염원에 크게 못 미쳐 문제다.

민주당이 지배계급 내에서 헤게모니를 쥐려면,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을 지배계급에 보여 줘야 한다. 문재인은 구 여권을 공격하는 데에는 촛불의 염원을 활용하지만, 행여나 적폐 청산이 실질적이 돼 노동계급의 자신감과 행동을 자극할까 봐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임금 개악 등 적폐로 지목된 정책들을 맵시있게 다시 추진해야 하는 문재인에게는 사회적 대화가 반발을 최소화할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개혁 약속을 파기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외양을 갖추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반복될수록 약발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평화와 번영 ― 누구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문재인의 친미 행보가 재평가되는 분위기이지만, 그는 취임사에서 평화와 안보에 대해서도 모순된 약속을 했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 자주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반도 위기의 배경이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경쟁에 있고, 한미(일)동맹은 군사동맹이기도 하므로,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은 미국이 호전적일 땐 양립할 수 없다.

평화와 한미동맹의 결합은 군사주의, 즉 전쟁용 무기의 증강으로 나타난다. 한국 지배자들이 “평화”와 “번영”을 한미동맹의 공고화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청와대에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부터 이런 국가전략에 이견이 없었다.

지난해, 유사시 파병을 약속했다는 이명박의 UAE 원전 외교 의혹을 덮어 버리고 UAE 왕정과 협력을 강화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UAE는 친미 국가이고, 이런 군사 외교를 통해 한국도 중동에서 미국을 도우며 자체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게 노무현―문재인의 기본 접근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의 미사일 탄두 중량 해제에도 트럼프와 합의했다.


문재인 정부와도 독립적으로 운동해야 한다

집권 1년이 된 시점에서 개혁 수행 평가를 해 보면 이런 모순들이 잘 드러난다.

처음부터 다 할 수는 없다며 작은 개혁을 제공하지만, 이내 그것을 상쇄할 개악에 손을 댄다. 저항이 거세면 개악을 미루지만, 그렇지 않으면 개악이 바로 집행된다. 

2월 말 근로기준법 개악이 그런 경우다. 노동계 지도자들이 말로 반대는 하지만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할 의사는 없어 보이자, 개악이 강행됐다.

공공부문 현장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지난해부터 정규직 제로 정책으로 비꼬아 부른다.

문재인 취임 후 반년이 훌쩍 지나서야 노동부는 공식 사과를 하고 노동개악 행정지침과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을 철회했다. 그러나 비슷한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으로 할 수 있던 전교조·공무원노조 인정을 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더니, 뒤에서는 공무원노조에 (박근혜 정부처럼) 해고자 배제 규약 개악을 강요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워 최저임금을 평균보다 많이 올렸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기업주들이 요구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반감케 하거나 상쇄시킬 개악에 나섰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다고 했다(문재인 케어). 하지만 시행 반 년도 안 돼 후퇴하고 있다(관련 기사 : ‘시행한 지 반 년도 안 돼 후퇴하는 문재인 케어’). 보험료를 올려 노동계급에 대해서는 그 효과를 반감시켰다. 정부 예산을 소득과 복지 확대에 대폭 투입하는 것도 아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결국 이간질일 뿐인 듯하다. 대기업 노동자가 임금을 억제하고 고용 유연화를 받아들여야 영세 소득자에게도 일자리와 소득이 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정 역사 교과서는 전광석화처럼 폐기했다. 또한 4·3을 명예회복시키겠다고 했다. 내년에는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으로 기념하겠다고 한다. 우파 야당이자 구 여권과 차별화함과 동시에, 진보적·중도적 민족주의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제스처일 것이다.

개혁과 반동의 이런 배합이 치열한 권력 투쟁과 모순을 거치지 않고 이뤄질 수는 없다. 촛불의 여파가 지속되는 한, 문재인은 권력 투쟁 과정에서 촛불 정부라는 언사를 계속 활용할 것이다. 그러나 촛불의 진정한 주역을 주역 대접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폐 청산하랬더니 적폐 세력과 타협과 대화로 해결하자는 게 딱 그런 식이다. 믿고 기다려서는 얻을 것이 없다.

문재인이 촛불 염원을 대변하는 듯 말하는 것을 운동이 활용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스스로 쟁취하려고 투쟁을 해 온 때만 가능하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나 재벌 개혁 분위기를 이용해 공공부문이나 삼성에서 새롭게 노조 조직화가 진전되는 것이 이런 사례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보수 세력 견제를 이유로 독자적인 행동을 자제한다면 운동은 기회를 놓치고 대중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우파가 다시 득세하는 일을 막겠다며 운동이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에 매달릴수록 위험해질 것이다. 문재인은 지지자들을 결국 실망시킬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보수 우파도 반사이익을 일시 얻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진보·좌파 세력이 문재인과는 다른 대안으로 비쳐지도록 독립적인 세력과 저항을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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