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하부영 집행부가 “대공장 노동운동이 변해야 한다”며 정규직의 임금 양보(연대임금),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사 협조 강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 등 포퓰리즘 언론은 하부영 지부장을 추켜세우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물론 현대차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선 그만한 호응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 지부장은 조합원들에게 만연한 ‘실리주의’에 경종을 울리겠다며 조합원들의 “반대와 부결을 각오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돈키호테에 비유했다. 17세기 초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동명 소설의 주인공 돈키호테가 추구한 가치들, 즉 명예·기사도 정신·고결함·용감한 행위를 오늘날에 구현한다면 하 지부장과 정반대로 매우 투쟁적이고 급진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하 지부장의 연대임금론: 임금 투쟁 회피하는 노조 지도자의 변명

하부영 집행부는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내세우며 금속노조와 함께 올해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했다. 내용인즉, 현대차지부의 임금 요구를 낮추는 대신 현대차 사측에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임금 지원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하후상박을 위한 연대 자체는 노동운동의 훌륭한 전통이다. 하지만 하 지부장에겐 미안하게도 상향평준화를 위한 강력한 투쟁을 통해서만 그 진정한 정신이 실현될 수 있다. 하부영 지부장이 제안하는 행동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우선, 그의 “연대임금” 제안은 현대자동차 노동자 투쟁 전통에 대한 폄훼에서 시작된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30년 투쟁이 사회 양극화(혹은 임금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그러나 이 말은 참말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른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효과가 사라졌다는 것도 참이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조건을 개선하면 중소기업·하청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조건도 동반 상승한다.

ⓒ노동자 연대

현대차나 주요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은 여전히 일종의 기준 설정자 구실을 한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매년 현대차의 임금 인상률이 결정되고 난 다음에 그것을 가이드라인 삼아 나머지 부품사·하청업체의 임금 수준도 결정된다.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싸워서 성과를 내면, 그것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싸울 자신감을 준다. 한 부문의 임금 인상 투쟁이 나머지 노동자들의 임금을 먹어 들어가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투쟁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하부영 지부장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실리주의’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것은 임금 투쟁을 회피하려는 노조 지도자의 자기 정당화일 뿐이다. 또, 그동안 대기업 노조 지도자들의 핵심 문제는 그들이 자기 조합원을 위해서든 중소·하청 노동자를 위해서든 실질적으로 싸우지 않은 것인데, 마치 임금 투쟁이 문제였던 것처럼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지난 3년의 경험을 봐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지도부가 불필요한 타협을 해 현대차 임금 인상률이 억제되자, 자동차 부품사·하청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도 더 어려워졌다. 금속노조와 완성차지부 지도자들이 부품사의 노조 탄압에 맞선 투쟁,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 투쟁 등에 연대하기를 회피한 것도 격차의 유지·확대에 일조했다.

이런 사실은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요구를 자제하자는 연대임금론(양보론)이 나머지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역효과를 낼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하부영 집행부는 사측에 부품사·비정규직을 위한 “특별 요구”를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장기 불황 속에서 “임금 인상 투쟁은 생명을 다 했다”며 자기 조합원들을 자제시키는 하 지부장이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 몫을 따내기 위해 단호하게 싸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대의 명분을 앞세워 협상의 묘를 살려 보겠다는 것일 텐데, 사측은 지난해 금속노조와 현대·기아차지부 지도부가 내세운 일자리연대기금 제안도 단칼에 일축해 버렸다.

이런 점들을 볼 때, 하부영 집행부의 연대임금은 “하후상박”이 아니라 노동자들 모두의 임금 수준을 끌어내리는 ‘하박상박’이 될 공산이 크다. 그것은 투쟁으로 사용자를 강제할 힘을 가진 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단결을 저해하는 반면, 사용자만 이롭게 할 것이다.

 기업 경쟁력 협조 정책은 “혁신”이 아니라 (불행한) 추세

한편, 하부영 집행부가 제안한 또 다른 “혁신”은 고용을 지키기 위해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협조한다는 것이다. 하 지부장은 신차 적시 생산, 품질 향상 등 사측의 요구에 적극 응하겠다고 밝혔고, 자동차 판촉 활동에도 나섰다. 

사실 대기업 노조들은 점점 이런 방향으로 기울어 왔다. 경쟁력 협조도, 자동차 판촉 활동도 전혀 새롭지 않다. 노사 협조는 “혁신”이 아니라 지속돼 온 문제일 뿐이다. 

일부 노동자들은 기업이 살아야 고용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냉엄한 진실은 사측이 노조의 협조를 얻으려는 목적이 이윤 증대에 있고, 특히 지금 같은 장기 불황기에는 노동자들에게 조건 하락을 양보 받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노동자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착취하느냐와 직결돼 있다.  

사실 하부영 집행부가 사측의 경영 고민을 함께 나눠지려는 출발점 자체가 노동조건 지키기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첩경이다. 참 안 어울릴 것 같은 그의 연대임금론(사실은 임금 투쟁 회피)과 노골적인 노사 협조주의가 실제로는 한짝인 이유다.

현대차지부가 올해 초 사측과 체결한 ‘창립 50주년, 노사관계 30주년 특별합의’는 경쟁력 협조 정책의 위험성을 잘 보여 준다. 하부영 집행부는 신차를 적기에 뽑을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며 기층 대의원들이 갖고 있던 협상 권한을 약화시키는 데 합의했다.

현대차에서는 라인에 신차가 투입될 때마다 크고 작은 투쟁이 벌어져 왔다. 사측은 어떻게든 노동강도를 높이고, 외주화를 확대하길 바라고, 노동자들은 이에 반발하며 단협에 명시된 대의원의 협상 권한을 이용해 투쟁했다.

하부영 집행부의 ‘특별합의’는 노동자들의 현장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사측이 현장 통제력을 강화할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사측은 언제나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현장 통제력 강화를 바라 왔다. 

민투위의 우경화와 일부 집행 간부들의 도덕적 퇴행

노사 협조주의는 민주노조운동이 지켜 온 노동계급의 규율과 투쟁 정신을 흐트러뜨릴 위험도 크다.

최근 알려진 하부영 집행부의 도덕적 퇴행이 이를 보여 준다. 현대차지부 여성실장과 조직부장이 집행 간부를 사퇴하며 폭로한 바에 따르면, 하부영 집행부는 임단협 협상을 앞두고 무원칙하게 사측과 술자리를 가지며 “화합”을 다졌다.

이 자리에 수석부지부장, 조직실장 등이 참석했다. 하부영 지부장이 이를 알고도 용인한 점을 보면 단순히 일부 개인들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하부영 집행부가 노사 협조주의로 나아가며 사용자에 대한 경계심이 풀려져 빚어진 일이다.

하부영 지부장은 노조 규율위원회에서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측과 술자리를 가진 핵심 간부를 임단협 교섭위원으로 선임해 또다시 우려를 사고 있다. ‘이전 집행부들도 해 온 관례적인 상견례 아니냐’는 식의 태도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물론 이전 집행부 성원들도 다수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현대차 공동행동’이 주도하는 1공장의 좌파 집행부·대의원들도 신차 협상을 앞두고 사측과 회식을 해 조합원들의 실망을 자아낸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은 관행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흔히 회식, 술자리는 사용자들이 노조 간부들을 회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그것이 관례처럼 되면, 노조 간부들은 관리자들과 어울려 고급 식당에 드나들고 대우를 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기층 조합원들로부터 점차 멀어져 타협의 압력을 받기가 쉬워진다.

하부영 집행부가 한때 좌파였던 현대차 민투위가 배출한 집행부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주는 씁쓸함은 더 크다. 사측과 술자리를 함께 한 당사자도 민투위 소속 활동가들로 알려졌다.

민투위는 2015년 현대차 1공장의 안전 사고 대응 투쟁을 패배로 이끈 이후 분열하면서 온건파가 주도권을 쥐었다. 지난해에는 비슷한 온건파인 하부영 씨와 통합해 노조 집행권을 잡았다. 그리고는 민투위가 전에 비판했던 정규직 양보론과 노사 협조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민투위의 우경화는 노조 집행권 장악을 목표로 활동한 노조 좌파들이 겪어 온 결정적 문제점을 잘 보여 준다.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투쟁과 연대를 건설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집행권 장악에 매달리면서 기회주의적 타협에 젖어들고 좌파적 원칙을 하나둘씩 저버리며 온건화한 것이다. 그들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역할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알아야만 한다.

전투적 활동가들은 맹목적인 좌파 집행부 세우기가 아니라 현장 조합원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단지 유권자나 선거구가 아니라 투쟁의 동력으로서 말이다. 그런 역학이 가능하려면 소수이지만 원칙있는 혁명가들의 조직을 기층에서부터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