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 대선 때 이명박을 찍었다. 정치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관심은 없었지만 광우병 집회 등을 경험하며 이명박을 나쁘게 보기 시작했다. 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나쁘게 봤었다. 시간이 흘러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그때는 민주당이 집권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회사가 영업이익을 8000억 원이나 내도 임금을 동결하는 것에 동의했다. 비정규직보다는 나으니 동결해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어용 집행부 12년을 끝내고 민주노조가 들어섰다. 그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파업은 안 하겠지?’ 라고 걱정하면서 민주노조에 투표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어떻게 하면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투쟁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토론하며 실천하고 있다.

나는 사회주의자다. 아무 생각 없는 학생에서 민주노조를 만나 개혁주의자가 됐고 지금은 사회주의자가 된 나의 의식과 실천의 변화 과정을 적어 보려 한다.

개혁주의자가 된 이유

현대중공업에 민주노조가 들어서고 그해 파업으로 나아갈 때 민주노조라는 대안에 환호했다. 민주노조만 잘 만들면 나의 삶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노조만 바라보게 됐다.

노조가 하는 말에 항상 동의했고 노조를 방어하는 논리를 펼치며 지냈다.

중앙파 계열의 집행부는 나에게 개혁주의를 보여 줬다. 대안은 스웨덴 사회였다. 노조가 70퍼센트나 조직된 나라를 보며 우리 나라도 저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쯤 만들어 낼까?’ 노동자들의 70퍼센트나 노조로 조직되면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그때 나는 노조 지침에는 모두 따랐지만 회사에도 협조적이었다. 온건했었다. 노조 지침만 잘 따르면 따로 안 나서도 노조가 잘할 거라 믿었다.

그런데 노조가 회사에 밀리는 모습을 보면서 혼란이 생겼다. 민주노조가 들어오고 파업까지 했는데 왜 우리는 밀릴까? 의문이 생겼다. 노동조합의 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노동조합 운동을 넘어서는 강력한 대안은 없었다.

사회주의자와의 만남

노동조합 투쟁이 잘 안 될 때 울산의 노동자연대 활동가를 만났다. 대화를 나누는 중 그는 노조 지도부의 아쉬움에 대해 비판하는 얘기를 살짝 했다. 발끈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는 중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하청 집회에 참여하는 게 시작!’ 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이 너무 좋았다. 하청과의 공동 투쟁에 목말라 있던 나는 다음 날 있는 집회에 바로 참여했다.

그때 그곳에서 신문을 파는 노동자연대 활동가를 다시 만났다. 반가웠다. 바로 신문 정기구독 신청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파업 집회 후 밥을 같이 먹었다. 몇 시간에 걸쳐 토론을 했는데 그분의 주장이 반박할 틈 없이 좋았지만 기존의 시각과 다르게 접근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돌아보면 기존의 교육과 언론에서 알 수 없었던 사회주의적 세계관에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색다르게 느껴졌던 것이다.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지만 그 동지가 살짝 맛보기 식으로 말했기 때문에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활동가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하지만 나의 사상과 반대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장차 대화를 진행해 가며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개혁주의자인 나와 사회주의자인 노동자연대 활동가와의 대결이 시작됐다.

본격적인 토론과 변화하는 나

현대중공업의 사업부 분할 저지 투쟁이 패배로 끝나고 많은 현대중공업 노조 활동가들은 크게 실망했다. 노동조합만 바라보며 활동했는데 노동조합이 패배했으니 사기저하는 심각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질 줄 알았지만 그래도 너무 처참했다. 자본은 자신들의 경비와 용역깡패 그리고 국가의 경찰까지 이용하며 우리를 저지했다.

그때 너무 화가 났다. 왜 경찰까지 회사 편을 들지? 회사는 저렇게 용역깡패까지 데리고 와서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데! 심각한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때쯤 노동자연대 공개 토론회에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곳에서 물어봤을 때 ‘국가와 자본은 상호의존적인 존재라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도 달라지는 것을 크게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민주당 정부 때 일어난 노동자 탄압의 역사도 들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동의했다. 그리고 가벼운 대안을 제시했다. 너무 좋았다. 다음에 열리는 토론회에 거의 다 참여했다. 참여할 때마다 길게 토론했다.

나는 개혁주의자였기에 개혁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조금씩 개혁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내용에 비중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지? 스웨덴 사회를 능가하는 사회가 있다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러시아 혁명까지 토론이 진전됐다. 러시아 혁명! 혁명! 혁명 ...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서웠다. 단체 가입 권유를 받았지만 싫었다. 혁명이 무서웠기 때문에 좋은 핑계를 대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궁금했다. 사회주의라는 대안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다. 만날 때면 기본적으로 5시간은 넘기며 토론했다.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대화가 진전되니 개혁주의가 가진 약점에 대해 거침없이 말을 하는데 나의 시야가 협소했다는 것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개혁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노동자연대 활동가가 말해 준 대안 사회를 꿈꾸게 됐다.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자가 됐다. 그리고 사회주의 정치가 생기니 회사에서 행동하는 것이 달라졌다. 지도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부적절한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선동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개혁주의가 널리 퍼진 사회다. 나도 개혁주의자였다. 하지만 위축될 필요는 없다. 내가 노동조합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개혁주의를 지지한다고 해서 노동자연대 활동가가 노동조합과 개혁주의에 대해 도전하지 않았다면 나는 사회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  나도 당당하게 활동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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