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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반기업 정서가 이건희를 물러서게 하다

지난 5월 2일에 있은 고려대 학생들의 이건희 명예박사 학위 수여 항의 시위는 전 사회적으로 첨예한 양극화를 촉진했다.

학생들이 ‘초일류 기업’ 삼성 총수 이건희의 자존심을 구겨 놓자, 청와대, 장관, 보수 언론 등 기업 친화적인 권력집단들이 시위 학생들을 마녀사냥하는 데에 총동원됐다.

반면 평범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초일류 권력’을 휘두르던 이건희가 학생들의 항의에 쫓겨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서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 삼성 계열사인 신세계 이마트 노동자들은 삼성의 ‘무노조경영’에 대해 말하기만 해도 1회당 50만원의 벌금을 내야 했는데, 학생들이 자신들의 대변인이 되어준 셈이었다.

이번 항의 시위와 그 후의 논란은 근본에서 사회의 지배자들과 피억압 대중 사이의 갈등과 투쟁을 함축하고 있었다.

문제를 고려대 시위 학생과 이건희의 갈등으로 협소하게 이해하면 안 된다. 이건희가 맞닥뜨린 것은 1백50명의 시위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이건희는 시위 학생들이 대변하려 했던 광범한 반기업 정서에 부딪혔다. 이건희가 이틀 만에 꼬리를 내린 것은, 문제를 키우면 키울수록 이건희와 삼성의 치부가 회자될 것 같은 분위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코리아 타임스〉도 “광범한 반기업 정서”가 삼성측 성명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고려대 시위 학생들이 삼성의 노동탄압과 부정축재를 폭로하자 사람들은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 놓은 기업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은 4백억 원 이상의 돈을 기부했다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희의 자존심이 상처받은 것 때문에 고려대 부총장 이하 보직교수 9명이 사퇴서를 제출하자, 대다수 사람들이 “오바”라며 조소했다.

이렇듯 대중의 광범한 반기업 정서가 이건희를 물러서게 만든 주된 동력이었다. 실제 시위 며칠 후부터는 시위를 지지하는 성명과 시위 참가자를 격려하는 글이 쇄도했다.

이런 결과는 또한 고려대 학생들의 단호한 투쟁 덕분이었다. 시위에 참가한 고려대 학생들 자신이 마녀사냥에 굴복했다면, 대학 밖의 지지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위 다음 날부터 대학 당국과 보수 언론이 마녀사냥을 시작하면서 시위 참가자들은 다소 위축됐다.

그 틈을 타고, 우파 학생들도 이날 시위의 정당성을 공격하려 했다. 의도적으로 “폭력 시위” 운운하며 매도했고, 총학생회 탄핵 여론을 부추겼다.

그러나 실제 시위 당일 학생들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당연히 시위 참가 학생들은 언론과 우파 학생들의 마녀사냥에 맞서 정면으로 시위의 정당성을 방어해야 했다. 특히 당일 시위를 지지하는 광범한 세력들이 함께 시위 방어 캠페인을 건설했다면 효과적으로 우파 학생들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첨예한 정치적 양극화 분위기에서 반미청년회와 연대회의와 같은 기회주의적 경향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에 맞서는 데에 무능력을 드러냈다.

반미청년회 경향의 고려대 총학생회와 연대회의 경향의 문과대·정경대·경영대 학생회는 시위의 정당성을 공공연하게 방어하기를 회피했다. 오히려 총학생회는 당일의 우발적 충돌에 대해 유감 표명했다. 연대회의는 처음에는 이 유감 표명에 반대하다가 다음 날 입장을 바꿔 타협했다. 그리고 둘 모두는 이건희 항의 시위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삼성의 노동탄압 문제는 부각시키지 말자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연대회의 경향의 학생회들은 당일 시위에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했음에도, 사회적 압력이 거세지자 학생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과했다. 특히 문과대 학생회는 단과대 대의원대회에서 학위 수여 규탄 성명까지 채택해놓고도 “학우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깊이 사죄”하는 혼란을 드러냈다.

심지어 연대회의 경향의 학생회들은 이건희와 같은 지배자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행위도 “폭력”이므로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미청년회 경향과 연대회의 경향의 우유부단함은 5월 5일 100주년 기념식 시위 조직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들은 5월 5일 100주년 기념식에 노무현이 온다는 소문을 알고 있었는데도, 여론의 압력에 타협해 노무현에 항의하는 시위에 불참하기로 했다.(결과적으로 노무현은 오지 않았고,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평화 시위로 전환했음에도 불참했다.)

심지어 이들은 시위 조직자들을 말리려고도 했다. 이는 그 동안 연대회의가 ‘노무현 퇴진’을 강력히 주장해왔고, 반미청년회 경향이 노무현 정부의 파병에 대해 강력히 비판해 왔던 것과 사뭇 대조적인 태도였다.

사과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이들이 여론의 압력에 밀려 타협하자, 시위 참가자들을 방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우파 학생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졌고, 급기야 총학생회 탄핵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불가피하게 다함께와 노동해방학생연대만이라도 방어에 나서야 했다. 5월 4일 이들은 단호하게 시위를 방어하면서 학교 안팎에서 지지를 끌어 모으는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다함께 회원들은 신문, 대자보, 리플릿, 징계 반대 서명 운동 등의 헌신적이고 단호한 활동을 통해 고려대 내의 여론을 바꾸려는 데에 앞장섰다.

이와 같은 정치적 양극화 분위기에서는 누가 더 단호한가에 따라 세력 균형이 결정된다. 처음에는 우파들이 기세등등했지만, 다함께 회원들의 단호한 활동에 조금씩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연대회의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무대응을 정당화하기 위해, 연대회의 홈페이지에서 다함께 회원들의 홍보전이 “계몽주의적”이고 “폭력”이라고 종파적으로 비난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총학생회 탄핵을 추진하는 학생들과도 “우애롭게 소통하고 다가가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한가롭게 말하고 있다.

이건희가 꼬리를 내리긴 했지만, 학교가 아직 징계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이건희가 꼬리를 내린 마당에 학교가 대대적인 징계를 시도하긴 어렵겠지만, ‘주동자’들을 골라 은밀히 보복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좌파에게만 징계를 면제해줌으로써, 징계가 면제된 좌파들의 행동을 마비시키고 다른 좌파들을 고립시키는 비열한 술책을 부릴 수 있다.

게다가 우파 학생들이 총학 탄핵 운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학교측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우파 학생들의 총학 탄핵 운동을 이용하려 들 수도 있다.

그런데도 총학생회는 징계 반대 대책위를 구성해놓고, 사실상 아무런 징계 반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기자회견, 서명 운동 등을 제안해도 전부 거절하고 있다. 연대회의 또한 미온적이긴 마찬가지다.

좌파들은 단결하여 징계 반대 운동과 우파들에 의한 총학 탄핵 시도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좌파들이 단결하여 적극 나선다면 이 싸움에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반미청년회 경향의 총학생회와 연대회의 경향의 단과대 학생회들이 대체로는 미온적이었므로, 다함께 회원들과 〈다함께〉 지지자들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독립적으로도 싸울 태세를 갖춰야 한다. 결국에는 더 단호한 쪽이 승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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