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7월 4일 〈노동자 연대〉 215호에 실린 기사를 개정 증보한 것이다.


드루킹 사건은 현 집권 여당도 이명박근혜처럼 여론 공작 행위를 해 왔음을 똑똑히 보여 줬다. 여기에 네이버, 다음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들도 뉴스 배치 조작을 통해 이런 여론 공작에 동원된 사실이 알려지며 ‘가짜뉴스’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3월 8일에는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 언론에 소개돼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연구에 따르면 가짜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나 더 빨리 퍼졌다. 정치 관련 가짜뉴스는 다른 가짜뉴스보다도 세 곱절 더 빨리 퍼졌다.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여야 가릴 것 없이 가짜뉴스에 대한 대중의 불안과 혼란을 악용하기도 한다. 비방, 왜곡보도, 오보는 물론이고 심지어 신뢰할 만한 언론 보도까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는 모조리 ‘가짜뉴스’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어차피 진실은 선거 뒤에나 밝혀질 테니 일단 선관위와 경찰 검찰에 고발해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다. 중앙선관위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가짜뉴스’일까? 가짜뉴스와 왜곡보도는 얼마나 다른 걸까? 오보는 단순히 언론사나 기자의 실수 때문에 나오는 걸까? 누가 왜 가짜뉴스를 만들까? 가짜뉴스는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까?

‘가짜뉴스’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2016년 대선 전후에 세계적 이슈로 떠올랐다. 실제 가짜뉴스가 판을 쳤을 뿐 아니라 트럼프는 자신에 비판적인 주류 언론들마저 ‘가짜뉴스’라고 비난했다. 

여기에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초대형 인터넷 기업들이 수많은 개인정보를 기업과 정치인들에게 유출한 것으로 알려지며 대중의 경각심이 커졌다. 일상적 시기에 늘 인기가 있는 음모론은‘도대체 뭘 믿을 수 있지?’ 하는 혼란을 가중시킨다.

문재인도 첫 한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를 만나 자기도 대선에서 ‘가짜뉴스’ 때문에 고생했다며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 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모조리 가짜뉴스 취급하는 트럼프를 편든 것이다.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을 모욕한 셈이다.

오늘날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언론학자 등 전문가들은 단순 오보나 편향된 보도, 언론사가 아닌 개인과 단체의 주장 등을 싸잡아 가짜뉴스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뉴스가 ‘팩트 체크’의 대상이 되면 언론의 비판 기능이 마비돼고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또 정보 전달이나 주장에 ‘남을 속이고자 하는 명백한 의도’가 없는 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이는 어느 정도 합당한 지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의 지적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주류 언론이 권력자들과 유착해 ‘의도적인 왜곡, 허위 보도’를 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은 물론이고 삼성 같은 재벌 기업이 언론에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은 새로운 뉴스거리도 안 된다. 이에 비하면 인터넷 댓글 조작 등은 한심해 보일 지경이다.

이런 ‘진짜 뉴스’의 문제로까지 시야를 넓혀 보면 오히려 오늘날 가짜뉴스가 늘어난 핵심 원인 중 하나가 주류 언론의 신뢰도 추락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경제 위기와 정치적 양극화 때문에 권력자들의 이전투구가 극심해진 점을 고려하면 가짜뉴스의 범람은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다. 특히, 예전과 달리 누구나 쉽게 매체를 만들어 정보를 퍼뜨릴 수 있는 인터넷이 오늘날 가짜뉴스의 핵심 수단이 됐다.

사실 서로 경쟁하는 지배계급 파벌들이 언론을 이용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 자체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각종 흑색선전과 비방, ‘아님 말고’ 식 추측 보도, 왜곡 보도 등. 여기에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활용한 가짜뉴스가 새로 추가된 것이다. 

지배계급 분파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지배자들과 주류 언론이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의 저항과 투쟁을 왜곡하고 매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문재인이 트럼프를 만나 가짜뉴스 운운하는 동안, 민주당의 전 부대변인은 민주노총이 청와대 앞길에 천막을 쳤다는 가짜뉴스를 페이스북에 퍼나르며 “불법에는 엄정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고 썼다.

인터넷 매체의 특성

인터넷 매체의 특성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문제도 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비용이 적게 들고, 무제한 복제될 수 있고, 한번 널리 퍼지면 완전히 삭제하기 어려운 인터넷 매체의 특성에 찬사를 보냈다. 차별받는 사람들이나 미조직 노동자들 일부는 운동을 건설하지 않고도 이런 특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정을 보면, 온라인 매체의 특성은 피지배자들에게만 유리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배자들도 인터넷 매체를 자신의 목적에 따라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으로 말해, 언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듯이 인터넷 가짜뉴스의 영향력도 과장해서는 안 된다. 특히, 소수 엘리트들이 대중의 의식을 조종한다는 음모론은 현실과 다르다. 지배자들은 인터넷 등장 전에도 학교 교육과 다양한 매체(TV, 라디오, 종이신문 등)를 이용해 피지배자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려 애썼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언론에 대한 박근혜의 강한 관여와 온갖 가짜뉴스도 광범한 대중이 박근혜 퇴진 운동에 나서 성공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또, 자본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자본들로 나뉘어 있고, 이들 각자와 연결된 다른 지배자들도 서로 경쟁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언론이 이런 분열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나라에서 정치 위기는 언론의 폭로와 연관돼 있다. 대기업과 주류 언론이 만든 jtbc가 박근혜 퇴진에서 한 구실도 이를 잘 보여 준다.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도 이와 관계 있다. 대중의 신뢰를 얻으려면 언론은 일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적어도 황당한 거짓을 꾸며 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짜뉴스는 한마디로 말해 이런 규칙을 무시하는 선전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인터넷을 이용한 가짜뉴스가 앞서 언급한 인터넷 매체의 특징 덕분에 다른 수단을 이용한 가짜뉴스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간단한 기술만 익히면 주요 언론사 웹사이트를 모방한 뉴스 사이트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이용한 가짜뉴스도 대개 시간이 흐르면 검증 과정을 거쳐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꽤 오랫동안 가짜뉴스를 믿고 심지어 갈수록 가짜뉴스에 의존하는 일이 적지 않다. 특히 “자아 중심적인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확증편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해서 가짜뉴스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가 많다.”(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신문과 방송〉 2017년 4월호) 앞서 언급한 MIT의 연구 결과도 SNS 공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다. 가짜뉴스의 홍수 속에서 ‘비용 때문에 일정 정도 책임성이 동반되는 인쇄 매체’인 종이 신문의 장점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생산물과 생산 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자신감도 잃게 된다고 지적하며 이를 ‘소외’라고 불렀다. 이런 자신감 상실은 노동계급이 총체적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데에 주된 어려움을 안겨 준다. 자신감과 총체적 세계관이 결여되면 수동성과 온갖 편견이 자리잡기 쉽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의식은 불균등하고 모순돼 있다. 일부는 음모론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확증편향 같은 잘못된 사고방식에 빠지기도 한다. 가짜뉴스가 끊임없이 소비되는 이유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며 스스로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소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운영할 자신감과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그 역이 아니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국가의 인터넷 규제를 강화해 가짜뉴스를 줄이려는 시도는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부나 시장 질서에 비판적인 언론들에 재갈을 물리는 부메랑이 되기 십상이다.

가짜뉴스는 물론이고 주류 언론의 ‘진짜’ 뉴스가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악영향도 극복하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면서 정치적 경험과 각성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투쟁 속에서 유통되고,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세계를 분석하고, 체제 변혁적 전망을 제시하는 사회주의 신문이 이런 의식 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좌파와 노동운동의 전통에 먹칠하는 운동 내 가짜뉴스

한편,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인터넷 활용이 늘어나면서 인터넷 진보 언론도 많이 생겼다. 〈매일노동뉴스〉, 〈레디앙〉, 〈민중의 소리〉, 〈노동자 연대〉 등은 주류 언론들이 외면하는 투쟁 소식을 전달하고 피억압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애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은 이런 기사를 널리 퍼뜨리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노동자 연대〉는 더 나아가 반자본주의적 전망과 분석, 사회주의적 전략과 전술 등을 제시하려 한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의 증가와 함께 가짜뉴스 같은 인터넷 악용 사례가 노동운동 내에도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상업적 목적으로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려 그 평판을 깎아내리고자 할 때 ‘비용이 적게 들고, 무제한 복제될 수 있고, 한번 널리 퍼지면 완전히 삭제하기 어려운’ 온라인 매체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가짜뉴스들처럼 세련된 형식을 갖추지는 않더라도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무책임하게 나 몰라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페이스북처럼 공개된 온라인 매체에 특정 단체나 개인에 대한 근거 없는 가십과 비방을 퍼뜨려 평판을 깎아내리는 일이 대표적이다. 악성 댓글을 달아 모욕을 주거나 따돌리기, 지엽말단적 쟁점을 제기해 진정한 쟁점 흐리기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요한 사회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 점에서 진보언론을 표방해 온  《워커스》, 〈참세상〉의 노동자연대 비방 보도(관련 기사: ‘책임 있는 보도 아닌 비방 택한 《워커스》에 유감’)는 황당한 온라인 가짜뉴스보다 더 큰 문제를 보여 준다. 가짜뉴스는 적어도 진실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려 하는데,  《워커스》, 〈참세상〉의 노동자연대 비방은 도무지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진짜든 가짜든 언론으로서의 기본 전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처럼 운동 내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은 그 대상 개인이나 단체가 부르주아적 가치관을 잣대로 한 도덕적 비난이나 마녀사냥 식 따돌리기에 시달릴 것을 염두에 두고 공개된 인터넷 공간에서 그런 짓을 벌인다는 점에서 사악하다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대의를 훼손하고 부르주아적 편견을 부추겨 노동자들의 단결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모욕 주기나 낙인찍기 등의 효과를 과소평가하거나, ‘집단지성’이 결국 오류를 바로잡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첫째, 인터넷에서 비방을 통해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 준다. 오죽하면 이 때문에 각종 소송이 빈발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까지 생길까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인터넷 상의 ‘집단지성’은 대개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드루킹이나 네이버 뉴스배치 조작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겠는가.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에 따르면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한 우익 사이트들은 구글 페이지랭크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검색 순위를 높여 줄 일종의 속임수를 찾아 공략했다. 그 결과... 구글에서 ‘유대인’(are jews)을 검색했을 때 최상위에 소개되는 글의 제목은 ‘사람들이 유대인을 싫어하는 10가지 이유’다. ‘여성은’(are women)을 입력하면 ‘여성은 사악한가’라는 자동완성 문장이 등장한다. ‘히틀러는 나쁜 사람이었나?’(Was Hitler bad?)라고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선 ‘히틀러가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었던 10가지 이유’가 뜬다.”(〈미디어오늘〉 2017년1월13일치) 

노동자 운동의 단결과 전진을 위해 애쓰는 좌파라면 이런 운동 내 이데올로기적 혼란에 진지하고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