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IT 대기업인 오라클의 한국 법인 노동자들이 16일부터 사흘간 파업에 돌입했다(투표율 82.5퍼센트, 찬성 96퍼센트). 한국오라클노동조합(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소속)은 지난해 9월 결성해 노조 가입 대상 1000여 명 중 600여 명이 가입했다. 이번이 첫 파업이다.

파업 첫날 오전 강남 아셈타워 앞에는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빨간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이 모여 앉았다. “파업하려면 이 노래는 꼭 알아야 한다”는 진행자의 말에 노동자들은 집단 채팅방에 올라온 가사를 보며 ‘임을 위한 행진곡’과 ‘파업가’를 불렀다. 밤부터 내린 비에도 노조가 준비한 조끼 400벌이 모두 소진됐다. 20년을 근무했다는 노동자는 “내가 파업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하면서도 표정이 밝았다.

5월 16일부터 사흘간 파업에 돌입한 한국오라클 노동자들 ⓒ이미진

집회엔 정의당 이정미 대표, 김종민 서울시장 후보, 민중당 박화자 비례후보(1번) 등도 참석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오라클은 〈포브스〉가 꼽은 세계 최대 상장 기업 목록의 소프트웨어 분야 2위를 차지했다. 이 기업의 매출은 약 40조 원, 시장가치는 195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오라클 노동자들의 처지는 충격적이다. 노동자들은 IT업계의 고질적 문제인 장시간 노동과 무급 초과 노동은 물론이고, 상시적 고용 불안과 성과연봉제로 고통받아 왔다. 임금도 10년간 대부분 동결됐다. 노조는 이 문제들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오라클은 결정 권한이 본사에 있다며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고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돌잔치에 마우스 올려 놓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러지 않아요.” 한 노동자의 말이다.

10년간 거의 동결된 임금

기술직 노동자들의 주된 업무는 고객사에 대한 기술지원이다. 고객사는 삼성, 농협 같은 대기업들이다. 고객사는 ‘고급 고객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기술자를 하루 8시간 사용하는 데 100만 원 넘게 지불한다. 장기간 파견 나가는 경우 월 2000만 원 이상 지불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임금이 오른 노동자는 거의 없다. 10년 넘게 일한 노동자 세전 월급이 283만 원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엄청난 착취율이다.

발언에 나선 한 노동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5년 5개월 동안 임금이 1원도 오르지 않았다. 영업 목표의 3배 이상을 달성한 적도 있다. 연봉이 오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그때도 전혀 오르지 않았다.”

일부 노동자들만 임금을 20~30퍼센트씩 올려 주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승현 오라클노조 정책부장은 “본사 지침은 전년 실적, 업무 평가, 시장 현실, 시장 전망에 따라 복합적으로 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기준이 없는 것이다” 하고 지적한다.

영업직은 성과급 비중이 50퍼센트나 된다. 기술직조차 성과급 비중이 20~30퍼센트다.

더 황당한 것은 매년 체결하는 성과급 계약서에 사측이 개별 성과 목표치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한 노동자의 영업 실적이 목표치를 초과하자 성과급 지급 결정을 50여 일 앞두고 목표치를 2.4배나 올려 버렸다. 이에 대해 검찰과 노동부는 임금 체불이라고 봤지만 한국오라클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한국오라클이 임금에 대한 결정 권한이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주 110시간 노동

IT산업은 신기술 도입에 따른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따라 특정 부서를 대상으로 한 권고 사직과 퇴사 압박이 상시적이라고 한다. “저성과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내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여기 집어 넣는다고 협박한다. 본래 목적과 다르게 괴롭히는 용도로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과도한 지시와 감찰로 노동자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이를 통해 퇴사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저성과자의 기준은 매니저(중간 관리자)가 정한다.

오라클은 고용유연성을 매우 강조하며 팀별로 인원을 관리하면서 매니저의 권한을 강력하게 둔다. 이런 구조에서 심지어 회의 시간에까지 “야 임마”, “○○새끼” 같은 폭언이 오간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신규 채용을 계속해, 노조 조사에 따르면 1년간 전체 인원의 20퍼센트가 물갈이 됐다. 안종철 오라클노조 쟁의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방문 기술자를 정리하고 간접비용 부담이 적은 내근직을 많이 뽑고 있다. 그에 따라 기술자 수는 줄었는데 기존 제품에 대한 지원 수요는 그대로라 기술자들의 노동 강도가 늘었다.”

김철수 오라클노조 위원장은 “오픈채팅방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고객사에 파견 나간 기술자가 [어떤 주에는] 110시간을 일했다고 했다” 하고 말했다.

이승현 정책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고급 고객 서비스’ 부서 기술직 노동자는 주당 노동시간이 80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한다. 영업팀 소속 기술자도 초과 노동이 많다. 그런데 영업팀이라는 이유로 초과근로수당을 신청할 수 없다.”

오라클노조는 사측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17일 대의원 회의를 통해 2차 파업이나 무기한 파업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촛불에서 얻은 용기

오라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파업에 나선 데는 지난해 박근혜 퇴진 운동의 영향이 크다. “촛불의 영향으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회가 바뀌어 가고 있으니 이제 우리도 우리 목소리를 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 노동자의 말이다.

지난해 촛불의 승리 이후 오라클뿐 아니라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에서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은 시사적이다. 다른 IT기업에서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오라클노조의 투쟁이 승리해 더 많은 IT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바란다.

ⓒ이미진
파업가를 배우고 있는 한국오라클 노동자들 ⓒ이미진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

📮 매일 아침 이메일로 〈노동자 연대〉를 구독하세요!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