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트랜스젠더 차별의 현실을 생생히 다룬 반가운 책이 나왔다. 《오롯한 당신 —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역학 연구실의 김승섭 교수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주영, 이혜민, 이호림, 최보경의 글을 묶은 책이다.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쓴 책이라고 하면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롯한 당신-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 김승섭 외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18년| 15000원 | 224쪽

무엇보다 이 책에는 우리 옆에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담겨 있다. 트랜스젠더가 가족, 학교, 직장, 군대, 공중화장실, 투표소 등 일상을 살아 가는 데서 겪는 차별과 어려움을 본인들의 목소리로 드러낸다. 각 장의 뒷부분에는 트랜스젠더 15명의 심층 인터뷰가 실려 있다. 성별 정체성을 인지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트랜스젠더의 괴로움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겪는 고통이 심각하다. 학교 생활은 말 그대로 “트랜스젠더로 살아남기”다. 

“수학여행 정말 힘들었어요, 저. 얘네랑 몇 박 며칠 이렇게 붙어 있는 게, 그게 되게 힘들죠. 합숙, 씻는 것도 힘들고요.”(트랜스여성 B)

“중학교 때 조용히 지냈던 편인데, 그때 상담 선생님과 말을 해 본 적이 있어요. ‘제가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에요.’ 그렇게 얘기했어요. 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나중에 어떻게 할거다라고 설명을 드리면서 제 입장에서는 잘 설명을 드린 거죠. 근데, 선생님이 딱 한마디 했어요. ‘이 개새끼.’”(트랜스여성 E)

성별 이분법적 화장실 역시 트랜스젠더를 고통스럽게 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다.

“한국에서 가장 힘든 건 화장실 사용이죠. 일단 여자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어어, 어어’ 이러고, 남자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뭔가 제가 좀 불안하고요. 그냥 눈 딱 감고 가면 상관이 없는데, 안에 있다가 밖에 사람 소리가 나면 문을 열고 다시 나갈 용기가 안 나요.”(20대 트랜스 남성 N)

이런 현실은 성중립 화장실 설치 등 트랜스젠더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개혁이 한시라도 빨리 시행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남자냐? 여자냐?‘고 지나가듯 묻는 말부터 시작해 군대, 직장, 병원 등 일상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는 차별 때문에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놓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없는 존재’로 여겨져 “한국에서 국가 단위의 설문조사를 통해 트랜스젠더 인구 규모를 파악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책에는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도표가 많이 등장한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278명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다고 한다.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 중 40퍼센트가 넘는 이들이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고 답했다.” 또한 성별 정체성을 언제 인지했는지, 직장 내에서 커밍아웃을 했는지 등 말로만 듣던 차별의 현실을 도표와 수치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트랜스젠더 의료 이용과 건강을 다룬 3장은 트랜스젠더 관련 의료 서비스와 의료진 교육이 전무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통렬히 꼬집는다. 트랜스젠더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순간부터 ‘제정신이냐’ 모욕을 당하고, “국가 의료보험으로 보장되지 않아 스스로 호르몬을 처방하거나 거세하는” 등 자가 시술로 내몰리기도 한다.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신과 진단, 호르몬 요법 및 성전환 수술을 건강보험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의료 현장에서 겪은 차별의 경험을 읽고 있자면 정말 분노가 치민다.

“병원에서 우리를 환자로 보는 게 아니라 돈으로 보더라도, 서비스를 잘 하면 상관없는데, ‘너희는 우리 병원 아니면 갈 데 없잖아. 우리가 너희한테 해주는 거야’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뭔가 정말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거예요.”

이 책은 우리가 이전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던 한국 트랜스젠더 차별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젊었을 때는 호르몬 치료라는 것이 있는지 몰랐”고 “나중에 호르몬 치료가 있는지 알게 되었지만 이미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어 할 수 없었고” “이제는 아이들도 시집 장가 다 보냈고 아내와는 이혼했다”며 “죽을 때 죽더라도 여자 몸으로 죽고 싶다”며 찾아온 60대 트랜스 여성의 이야기는 우리가 왜 트랜스젠더 해방을 위해, 차별을 없애기 위해 싸워야 하는지 명백히 보여 준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