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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1년 평가:
노동자들의 삶도, 사회적 지위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한반도 주변 정세 문제에서 비롯하는 듯했다. 사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그런 사례였다. 당시에만 해도 노동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판단을 내놓기 조심스러워했다. 촛불로 등장한 정부이므로 지난 민주당 정부들과는 다를 거라는 기대가 노동조합 운동 안에 상당했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체 규율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몇 달 만에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돼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음에도, 노동 문제 관련해서는 실망이 커지고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문재인 정부 1년을 평가하는 민주노총 논평의 제목은 이렇다.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발걸음은 더뎠고 전진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노동개혁이 가시적 행정조치에 멈췄고, ‘노동존중’이라는 기치에 걸맞은 개혁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점증하는 노동자들의 불만

물론 노동운동 내에는 문재인 정부 1년 평가를 둘러싸고 온도 차이가 있다. 최근 몇몇 노동운동 단체들이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평가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서도 이 점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1년의 “종합 평점”을 후하게도 A를 줬다. 특히, “1년 동안 일자리(노동) 공약의 성실한 이행을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사실상의 정의당 씽크탱크 구실을 하는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혁이 “급진적”이라고 높이 사면서 노동운동 측의 변화를 촉구했다. “노동조건 개선” 같은 “단기적 경제적 이해”를 앞세우지 말고 “정치적 과제”들을 전략적 의제로 삼으라거나, “사회적 대화 참여 자체에 시비를 거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는 등의 조언이 그런 것이었다.

말뿐인 노동존중 문재인 정부 하에서 지속적으로 투쟁에 나선 사회 집단은 노동자들이 유일했다 5월 12일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 ⓒ조승진

그러나 이런 토론회에 참석했던 노동조합 측 패널들의 뉘앙스는 조금 달랐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노동 현실에 “근본 변화(가) 없”고,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노동존중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래 노동운동 노선에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과 가까운 입장이지만, 문재인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훨씬 비판적인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안재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은 금속 노동자들이 맞고 있는 현실은 노중기 교수의 인식과 전혀 다르다고 비판하면서, 금속노조는 ‘문재인 규탄 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박근혜 정권과 똑같이 ‘노동자 자르기’” 식이라고 규탄했다.

이같은 온도 차이는 개혁주의 정치인, 학자, 전문가보다 노동조합 상근간부들이 현장 노동자들의 압력을 더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노동조합 상근간부들은 때로 실천에서는 결국 개혁주의 정치인, 학자, 전문가들과 같은 입장을 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노동자들이 불만을 드러내고자 투쟁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은 문재인 정부 초기에 가장 높이 평가받은 노동정책이었다. 그러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믿고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투쟁에 나섬으로써, 정규직 전환 제외 문제와 해고 위험 등을 들춰 냈다. 또, 청소 노동자와 마트 노동자들도 항의에 나서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상쇄하려는 사용자들의 꼼수와 이를 뒷받침하는 문재인 정부의 제도(산입범위) 개악 의중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내 의견 분포나 지도부의 입장도 일부 바뀌었다. 최근 민주노총 집행부가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기간제 교사 등이 제외된 것은 문제라며 “기준 재검토”를 주장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공공운수노조 내에서 자회사 방안에 관한 비판이 증가한 것도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러워하며 좀 더 지켜보자고 했던 노동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 비판이 두드러지게 된 것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섬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불빛을 비춰 줬기 때문이다.

고용도, 임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1년 동안 지속적으로 투쟁에 나선 사회집단은 노동자들이 거의 유일했다.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불러 낸 것은 진정한 변화에 대한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촛불 투쟁과 정권 교체라는 여파 속에서 더 나은 삶을 기대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 중심”, “노동존중” 같은 그럴 듯한 기치와는 달리 실제 정부 정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적잖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다. 이제 세 가지 대표적인 분야를 살펴보자.

첫째, 문재인은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했는데, 이 분야 성적표는 형편없다.

대표적인 일자리 정책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처음에는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큰 불만과 저항에 부딪혔다. 무엇보다 전환 제외 대상이 많았고, 전환된 노동자들의 조건도 ‘정규직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개선되지 않았다. 자회사 방식이 널리 이용됐고, 차별이 온존했고, 전환자들을 저임금에 고착시키는 임금체계가 부과됐다.

일자리 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주요 쟁점은 제조업 구조조정이다. 한국GM과 조선업 구조조정은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일자리 창출은커녕 이윤 논리에 따른 구조조정 정책으로 노동자들을 괜찮은 일자리에서 몰아낸 것이다. STX 같은 중형 조선소 노동자들은 임금이 깎이는 것은 물론이고, 일감이 빤히 있는데도 무급휴직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이 대체했다. 사용자들은 악화된 노동조건을 조선업 빅3 사업장에도 적용하려 한다.

둘째, 문재인은 ‘노동존중’을 얘기했지만, 민주노총은 노동 배제가 여전하고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약속 불이행의 대표 사례 하나는 노동기본권 문제다. 전교조는 여전히 노동조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노조가 설립신고증을 받았지만, 해고자를 조합원에서 제외하도록 규약을 고친 대가였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공무원노조에 규약 시정을 요구했는데, 혁명적 좌파를 비롯한 극소수 활동가들만이 이에 반대했다. 이런 반대가 없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야비하고 수치스런 규약 개정 압박이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약속 불이행 규탄 결의대회”를 개최한 핵심 이유다.

또, 민주노총은 ‘노동존중’ 약속과 관련해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곳이 여전히 많다. 예를 들어, 세종호텔 측은 노조의 핵심 요구인 김상진 세종호텔노조 전 위원장의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셋째,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삶이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문재인은 소득주도 성장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가능하도록 저임금과 고용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발표를 보면, 최저임금 인상 이후 “임금 상승 효과가 크지 않았다.” 사용자들이 임금을 올려 주기보다 노동시간을 축소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상승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상쇄하는 제도 개악(산입범위 확대)을 추진 중이다. 또,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묶어 두는 임금체계도 제시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을 끌어올릴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또, 고용 상황을 보면, 고용 증가가 둔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졌다. 3월 실업률이 4.5퍼센트로 나타났는데, 17년 만의 최고치라고 한다. 청년 실업률은 11.6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정부 출범 직후 발표된 ‘일자리 100일 계획’은 성과가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민주노총도 참여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일자리위원회에 대해서도 무용론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장기 불황과 노동자 투쟁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노동계를 향해 성급하게 요구하지 말고 1년만 참아 달라고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고 문제점이 해결되기는커녕 불만과 갈등이 누적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제도 개악,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여전한 쟁점인 한편, 구조조정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또,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임금체계 개편도 점점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왜 실망스런 수준인가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개혁주의자들은 한국 사회 노동문제가 누적된 게 많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한꺼번에 개선하려고 정부를 압박하기보다 정부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지 않고 ‘투쟁 일변도’로 나아가면 소탐대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지금은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이고, 문재인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를 효율화하고 저성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지금 사용자들은 양보를 꺼리고, 줬던 것도 빼앗아 가려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아무리 그럴 듯한 말로 포장돼 있을지라도 그 친자본주의적 성격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조합 운동이 사용해 온 용어를 차용하면서 본질을 가리려 하지만, 장기 불황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을 억제하고, 일부 부문에게는 조건 악화마저 강요하려 한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표방하며 직무급제를 도입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차별적 저임금에 반대하고 임금 수준을 공정하게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호봉 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공공부문 표준임금 모델안’을 보면 그 목적은 무기계약직 전환자의 임금이 인상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혁명적 좌파가 문재인 노동정책의 친자본주의적 본질을 들춰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같은 장기 불황기에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거나 조금이라고 개선하려면 대규모 투쟁이 필요하고, 연대가 관건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을 추구하면서, ‘지켜보고 기다리기’를 선택해 시간을 까먹고 스스로 불리한 상황에 내몰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을 해서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에 걸림돌이 되거나 심지어 조건 악화를 불러온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국GM과 중형 조선소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양보 교섭이 그런 사례다. 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자회사 방안 합의도 또 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노동조합 내의 좌파들 상당수가 여기에 타협하기도 했다. 이 점에서도 혁명적 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즉, 연대의 중요성을 알고 헌신하면서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혁명적 좌파가 기층에서 조직돼 있어야 한다.

단호한 투쟁으로 승리를 거머쥔 탠디 노동자들 5월 11일 제화노동자 결의대회 ⓒ조승진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정부와의 협조 강화 때문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최근 민주노총은 조합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촛불 투쟁 전후로 노동운동이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노동자 부문이 투쟁에 나서는 것도 이를 입증한다.

예를 들어, 한국오라클 노동자들의 파업은 IT업계 노동자들이 새로 조직되고 투쟁에 나설 조짐을 보여 준다. 얼마 전에는 특수고용 노동자인 탠디 노동자들도 단호하게 투쟁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앞서 다룬 주요 쟁점들에서도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그중 일부는 투쟁에 나설 공산이 크다. 혁명적 좌파는 이런 투쟁들을 지지하고 연대를 확대하고자 애쓰면서 세력을 구축해 나아가야 한다.

5월 10일 노동자연대 서울지역 공개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을 수정·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