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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누드 모델 몰카 범죄로 돌아본:
워마드 식 페미니즘의 논리적 귀결

남성 일반을 여성의 적으로 여기는 근본적 페미니즘은 여성 해방은커녕 퇴행적 궤변과 피업악자들의 분열만 낳을 수 있다 ⓒ출처 워마드 웹페이지

최근 홍대 회화과 누드 모델로 일한 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찍어 워마드 게시판에 게시한 워마드 회원이 구속됐다. 경찰 수사 결과, 동료 누드 모델 여성이 최초 유포자로 밝혀졌고 증거 인멸 시도가 발견돼 구속됐다. 피해자를 조롱한 댓글을 단 워마드 회원들과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 대상 성범죄에 굼떴던 경찰에 대한 불만이 크게 나타나고도 있다.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국민청원에 사흘 만에 32만 명이 동의했다. 많은 여성들이 그 동안의 경찰 대응과 견줘 허탈감이 들었다고 얘기했다.

이런 정서는 이해가 간다. 한해 5천 건이 넘는 몰카 범죄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피해를 호소해도 경찰이 수사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이 청원이 폭발적 관심을 끌자 문재인은 지난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몰카 범죄, 데이트폭력 등은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성 범죄”라며 “수사기관들이 조금 더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범죄에 고통받는 여성의 피해호소에 수사기관들이 당연히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은 페미니즘 언사만 남발할 뿐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실질적 개혁은 별로 내놓고 있지 않다.

집권 1년이 지나도록 노동계급 여성들의 절실한 요구인 성별임금격차 해소, 양질의 일자리, 복지 확충은 별로 진전된 게 없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 무력화로 알량한 개혁마저 후퇴하고 있다. 심지어 구조조정 등으로 많은 노동계급 여성들의 삶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노동계급 여성의 삶을 실제로 개선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생색내기에 환상을 품으며 국가기구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워마드가 온갖 욕설을 사용하며 남성을 비하해 온 것은 악명 높다. 그뿐 아니라 장애인, 어린이, 노인 등 비하를 하지 않는 대상이 없을 정도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조롱, 멸시도 눈에 띈다. 심지어 자신들 성에 차지 않는 여성들에게도 거침 없이 욕설을 퍼붓는 글을 게시한다. 워마드 회원들이 남성 나체를 몰래 찍은 영상을 게시판에 올리거나 공유해 본 일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최근 고려대 총학생회가 워마드에 고려대 남자 화장실 몰카 사진이 올라 왔다고 밝혀 경찰 수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온라인상 이런 비하 글을 쓰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 몰카 촬영·유출은 그 피해가 훨씬 더 심하다. 따라서 이런 것을 ‘미러링’이라며 미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워마드는 이번 워마드 회원 구속을 “경찰의 편파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워마드가 개설한 것으로 보이는 한 다음 카페는 오는 19일 서울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열겠다고 한다. 경찰이 남성 몰카 피해자 수사에만 이례적 속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여성 대상 몰카 범죄에 무관심하게 대응해 왔다고 해서 워마드 회원들의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워마드의 역차별 논리는 궤변에 불과하다.

워마드 비판 꺼리기

이번 홍대 몰카 사태로 워마드가 페미니즘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사태 발생 이유가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일각에서는 워마드는 페미니즘과 무관하다고 단언한다.

페미니즘이 이번 몰카 사태의 원인이라는 얘기는 과도한 비약이다. 페미니즘이 하나가 아니고,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상대 몰카 범죄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근 〈한겨레〉와 인터뷰한 페미니스트 손희정 씨의 주장처럼 워마드가 “페미니즘이 아니다”는 얘기도 설득력이 없다. 올해 3월에 이프북스가 출판한 책 《근본없는 페미니즘》의 부제가 바로 “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이다. 한국여성재단의 재정 지원을 받은 이 책은 메갈리아를 거쳐 워마드 활동을 한 필자들이 워마드를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예찬하고 있다.

손희정 씨가 워마드를 거부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그도 불과 2년 전에는 워마드를 “페미니즘 운동”으로 봤다(당시에도 거리를 느꼈다지만). 한국여성재단 주최로 열린 ‘2016 여성 회의: 새로운 물결, 페미니즘 이어달리기’에도 워마드 회원이 참가했다. 이를 계기로 기존 페미니즘과 워마드와의 연대가 한동안 페미니즘 내 화두가 됐다.

워마드는 새 세대 페미니즘에서 득세한 페미니즘, 즉 모든 남성을 여성 차별의 원인으로 보는 근본적 페미니즘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냈다.

워마드 게시판에는 단지 남성 혐오만이 아니라 장애인 비하, 빈민 비하, 이슬람 혐오 등 온갖 반동적 사상들이 다 나타났다. 지난 박근혜 퇴진 운동 국면에서는 워마드 게시판에 박근혜 지지 글이 대거 올라오기도 했다. 이것은 근본적 페미니즘이 가장 진보적이기는커녕 사회의 가장 반동적인 우파 정치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문제는 진보 성향 페미니스트들이 워마드와 연대를 추구하며 공개 비판을 꺼리는 경우가 흔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진보 성향 페미니스트들은 워마드 회원들이 박근혜를 지지했을 때조차 “워마드가 보수적이어도 페미니즘의 일종”이라며 워마드를 비판하지 않았다. 그들도 모든 남성이 여성 차별의 근원이라는 근본적 페미니즘의 주장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계급을 무시한 모호한 ‘남성 권력’ 개념,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강간범 취급하는 주장을 주류 페미니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주류 페미니스트들도 워마드처럼 모든 여성이 계급을 초월해 단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기구와 기업의 요직으로 진출하려는 중간계급 페미니스트들은 워마드 같은 극단적 방식을 지지하지는 않아도 흔히 분리주의적 주장을 이용해 기성 체제 내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려 한다.

미러링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여성 차별에 항의하려는 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반발에는 그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모든 남성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러링이 기존 여성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차별을 없앨 수 있는 ‘전략’이라는 것도 환상에 불과하다. 여성 차별은 남성의 본성이 아니라 계급사회에 기원을 두고 있고, 자본주의의 착취적 계급구조와 핵가족 제도에 물질적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구조에 도전하지 않은 채 모든 남성을 적대시하며 분리주의적 저항을 하면 잘 해야 약간의 개혁 성취에 머물고 흔히 퇴행적이기 쉽다.

여성은 하나의 이해관계를 지닌 동질적 집단이기는커녕 한진그룹 총수 일가인 조현아·조현민 자매와 그 모친 이명희의 갑질에서 보듯 여성 내부에도 엄청난 계급적 격차가 있다. 모든 남성을 적대시하는 근본적 페미니즘의 주장과 실천은 운동의 전진이 아니라 곳곳에서 불필요한 분열을 야기해 왔다.

워마드 몰카 사태를 통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여성운동에도 역효과를 낳을 근본적 페미니즘이 지닌 위험성을 진지하게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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