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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 확대:
저임금·장시간 노동 고무하는 문재인 정부

오는 7월 300인 이상 기업, 공공기관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는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 현장안착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노동시간 단축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고 인건비 부담을 줄이도록 코치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집권당은 지난 2월 보수 야당과 손잡고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주 52시간제를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 시행하고, 중복할증을 폐지하고, 특례업종을 유지(21개에서 5개 축소)하는 내용이다. 탄력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논의를 명문화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일과 생활을 모두 힘들게 하려 한다 ⓒ조승진

문재인 정부가 후보 시절부터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공약한 데 비하면, 그 내용은 매우 불충분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번에 또다시 개정법의 제한적인 노동시간 단축 효과마저 더 반감시키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일부 노동자들의 조건은 현재보다 더 악화될 위험도 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그동안 특례업종으로 지정돼 노동시간 상한의 적용을 받지 못하다가 그 대상에서 제외된 업종에 관한 것이다. 정부는 이 곳들에서 탄력근로시간제를 적극 활용해 사용자 편의를 봐 주고, 전체 노동시장에 변형근로를 확대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번 대책에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신규채용과 추가 인력 확보, 임금 보전 등에 관한 지원 방안이 명목상 포함되기는 했다. 그러나 사용자들을 강제할 어떤 조처도 없이, 그저 정부 지원금을 찔끔 주고 직업 훈련을 보강한다는 것 정도로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1일 노동시간 연장 꼼수

문제의 핵심인 탄력근로시간제는 사용자가 필요할 때 특정 기간의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현행법에 따르면, 2주 혹은 3개월 단위 기간의 평균 노동시간을 법적 상한선에 맞추되 그 내에서 주당 노동시간, 하루 노동시간의 길이를 조정할 수 있다.

가령 3개월 단위의 경우, 1.5개월은 일주일에 최대 80시간(주 52시간제의 경우 64시간), 1일 12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나머지 1.5개월은 평균치보다 적게 근무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총량이 늘지는 않지만,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특정 기간 동안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또,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한다. 특정 기간 지속되는 연장근무는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를 높이고, 산업재해를 늘릴 우려도 있다.

정부는 탄력근로시간제가 노동자들의 자율성과 노동시간 선택권을 늘린다고 홍보하지만, 영국·독일·미국 등의 경험을 보면 그 선택권이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다.

2015년 〈파이낸셜타임스〉는 유연근무제를 전면 확대한 미국 월마트에서 ‘노동자들이 근무가 임박해서야 자신의 근무 스케줄을 통보 받아 안정적 생활을 꾸리기가 어렵다’고 보도했다. 2016년에는 중국의 월마트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더해 유연근무제까지 도입된 데 반발해 전국 400여 개 매장에서 파업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탄력근로시간제의 일차적 적용 대상으로 삼은 것은 노선버스다. 시내·시외·고속버스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씩 일하다 과로로 쓰러지고 대형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등 혹독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왔다. 근래 서울·인천 등 버스 준공영제가 도입된 곳에서는 1일 2교대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경기 등 나머지 지역들에서는 문제가 여전하다.

이 노동자들은 이제서야 간신히 특례업종에서 벗어나 노동시간 상한의 적용을 받게 됐다. 그런데 정부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이 업종의 주 52시간제 적용 시기를 내년 7월로 늦췄다. 이에 더해 탄력근로시간제 도입을 제시했다. 사용자들의 인건비 부담을 이해한다며, 인력 충원을 최소화하고 기존 인력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총 노동시간은 줄더라도 특정 기간 동안은 추가 수당 없이 일주일에 무려 80시간 장시간 노동을 감당해 내야 한다. “과로버스”를 없애 노동자 삶의 질을 높이고 안전사고를 예방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사용자를 위한 탄력근로 도입은 인력 충원(인건비 증가)을 회피할 의도로 도입되는 것이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계속될 것이다 ⓒ이미진

인천공항 보안검색 분야에서는 하루 노동시간을 최대한 연장하려고 12조8교대라는 ‘미친 교대제’까지 등장했다. 이 경우에도 노동시간 총량은 줄어들지만,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12시간씩 일해야 하고 출퇴근 시간도 들쭉날쭉 해진다. 한 개 조당 줄어든 인력 때문에 노동강도도 강화될 수 있다.

이 같은 교대제 개악은 철도공사 등 공공기관들에서 시도되고 있다. 이곳에서 사용자 측은 좀더 복잡한 교대제 체계를 만들고 연속 근무 사이에 생기는 대기시간을 무급 휴게 시간으로 돌리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짜 휴게시간

이번에 특례업종에서 벗어난 또 다른 대표적인 업종은 사회서비스 분야다. 정부는 이 노동자들에게 휴게시간을 만들어 주겠다는 그럴듯해 보이는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휴게시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육 교사들은 그동안 원래 제공돼야 마땅했을 휴게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사용자들은 점심시간,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 등을 휴게시간으로 둔갑시켜 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 시간에도 아이들을 지도하고 돌본다.

문재인 정부는 보육 교사들의 진짜 휴게시간 보장 요구를 수용하는 듯 말했지만, 노조는 그 내용이 “엉터리 계획”이라고 지적한다. “보육교사의 휴게시간 보장은커녕, 노동강도는 더 높아지고 보육환경 저해와 공백까지 우려되는 대책이다.”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의 경우,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운용의 책임을 ‘이용자’나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사회서비스분야에 시간제 보조 인력을 늘리는 방안도 내놨다.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대폭 충원해야 할 판에, 부족 인력을 비정규직 ‘나쁜 일자리’로 메우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 공공부문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누더기로 만들자, 민간부문 노동현장 곳곳에서도 온갖 꼼수가 난무하고 있다.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일은 다반사다. 신세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은 ‘근무시간 관리’라는 미명하에 화장실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대화하는 시간도 줄이라며 현장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LG전자나 현대차는 사무직의 업무용 컴퓨터에 ‘근무외 시간’들을 체크하도록 강제하는 근태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인력을 늘리는 데서는 매우 불충분한 반면, 기업의 수익성·경쟁력 제고를 위해 단위 노동비용을 최소화하는 데는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즉, 사용자가 필요할 때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더 유연한 작업 패턴으로 노동자들을 몰아넣고, 노동자들을 쉴 틈도 없이 쥐어짜며 감시·통제하고,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의 목표로 내세웠던 ‘일·생활의 균형’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낳는다.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가족·대인 관계를 해치는 데 이바지할 뿐이다.

변형근로로 하루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심야근무까지 하게 되면, 노동자들은 쉬는 날에도 가족을 돌보거나 여가생활을 누리기 어렵다. 출퇴근 시간까지 들쭉날쭉해지면 안정적인 삶을 계획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임금이 깎여 생계의 불안정성도 커진다. 현장 통제와 노동강도 강화로 작업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제대로 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변형근무 확대 방안 폐기, 인력의 대폭 확충, 임금 보전과 노동강도 강화 반대 등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