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국 엑서터에서 교환학생으로 거주 중이다. 얼마전 엑서터 프라이드가 주관한 니콜라 필드와의 만남에 다녀왔다. 작가이자 사회주의 활동가인 니콜라 필드는 2014년에 개봉한 영화 ‘프라이드’(한국에서는 ‘런던 프라이드’로 개봉했다)에 등장하는 ‘광원을 지지하는 레즈비언 게이 연대’(LGSM)의 초기 멤버다.

광원 파업 현장에 있었던 LGSM 활동가가 말하는 광원 파업 당시의 상황과 오늘날 성소수자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듣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날 니콜라 필드는 오늘날 잘 드러나지 않는 성소수자 차별을 폭로하고 성소수자 운동이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연대해야 함을 역설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과 차별이 극심하던 마가렛 대처 정부 시절,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성적 행위로 공격받았다. 오늘날 무슬림이 존재만으로도 박해받듯이, 당시엔 공공장소에서 동성애자의 애정 표현이 금지됐다.

때마침 확산된 에이즈는 성소수자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해 언론에서도 성소수자 혐오적 기사들을 마구 뿌려댔다. 1988년엔 동성애를 홍보하거나 이를 위한 자료를 게시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법률 제28조도 제정됐다. (이 법률은 2000년에야 폐지됐다.) 필드는 당시의 성소수자 차별은 오늘날 무슬림으로 대상만 바뀌어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니콜라 필드 ⓒ한가은

대처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침없이 시행하려고 조직력이 탄탄한 영국 광원 노조와 전쟁을 선포했다. 요크셔의 광원들은 곧바로 파업에 들어갔지만 노조 지도부의 배신으로 고립됐다.

성소수자를 포함해 대처 정부에게 공격받고 억압받던 이들은 이를 지켜보며 이 파업에 연대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LGSM 외에도 많은 지원 조직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필드는 광원과 성소수자를 분열시키던 선입견이 공동의 적에 맞서 싸우며 자연스럽게 녹아 내렸다고 돌아봤다. 그는 차별은 자본가들이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더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쓰는 도구임을 지적했다.

그 후 성소수자 권리는 대처 정부 때에 비하면 일부 진전됐다. 하지만 차별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는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필드는 성소수자 운동 내 큰 쟁점인 핑크머니와 라이프스타일 정치를 비판하며 완전한 성소수자 해방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게이 비즈니스 가시화와 보수당 정치인의 커밍아웃은 일부 성소수자들에겐 어느 정도 해방을 가져다 줄 순 있어도 성소수자 노동계급을 아우르는 해방은 절대 가져다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랜스젠더는 지금도 혐오범죄로 가장 고통받는 집단 중 하나이며 많은 이들이 건강보험 삭감 등 긴축재정에 시달리며 근근히 살아간다.

필드는 오늘날 영국의 인종차별은 유색인 성소수자 차별로도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생존을 위해 ‘성소수자 친화적’ 국가인 영국에 온 많은 성소수자 망명자들이 망명 신청을 거부당한다. 레즈비언인데 머리가 길다고, LGBT의 T를 트랜스젠더(Transgender)가 아닌 트랜스(Trans)로 적었다는 온갖 황당한 이유들로 말이다.

또 지배자들은 대처 정부 시절 성소수자 혐오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정당화했던 것처럼 이제는 인종차별을 조장해 긴축재정, 예산삭감, 주거문제 등 노동계급의 삶을 공격하는 정책들을 펼친다.

이처럼 성소수자 해방은 다른 차별과 절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모든 차별은 연결돼 있고 각각의 차별이 일부 완화된다고 해서 이것이 곧 노동계급 전체를 아우르는 해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필드는 광원파업 때 계급적 힘으로 선입견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공동의 적에 힘차게 맞서 싸웠던 경험을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성소수자 운동이 인종차별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한다며 강연 시작부터 끝까지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권’이 어지간히 보장되는 나라로 여겨지는 영국에서도 다양한 차별이 자행되고 있고 지배자들은 이를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데 이용하고 있다. 이날 강연을 들으며 개혁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차별받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완전한 해방을 쟁취할 수는 없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