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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 강상구 교육국장은 지난해 말 이후 지금까지 당의 활동에 대해 이라크전쟁의 비중 문제를 제외하면 그 동안의 〈다함께〉 신문과 대동소이한 좌파적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의회 진출 1년을 맞아 그 동안의 당 활동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하겠다.

첫째,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제대로 했는가? 둘째, 의회 활동은 어땠는가? 셋째, 대중운동과 당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첫째로, 현재 지도부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핵심 과제로 이해하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개혁세력이 공조하여 수구를 몰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이른바 4대 개혁법안과 관련해 개혁공조를 한 것이 그 예다.

작년 중앙당 간부회의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비정규직 투쟁은 민주노총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 당은 국가보안법 투쟁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정규직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됐을 때도 당 지도부는 국보법 철폐 투쟁에 몰두하면서 사실상 비정규직 투쟁과 국가보안법 투쟁을 대립시켰다.

지도부의 관점의 한계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제대로 못한 사례는 또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쌀개방 반대 투쟁이다.

2004년 안으로 쌀개방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정부의 고집에 맞서 농민들이 힘겹게 상경 투쟁할 시기에도 당은 국보법 철폐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민중생존권 투쟁이 중요하다는 비판에 당은 국보법이 철폐돼야 민중생존권 문제도 더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농민들의 생존권을 결정적으로 짓밟는 쌀개방 문제가 끝나가고 있었고, 당 주력 대오는 국보법 철폐를 위해 국회 앞에 있었다.

총선 이후 당 기사가 신문에 꾸준히 실리고 당 지지율이 20퍼센트대로 오르기도 했을 때 당은 당의 정책들을 가지고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핵심 정책을 가지고 진행된 것은 ‘로드맵‘을 그리는 것 정도였다.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투쟁 계획이 있어야 했다. 민주노동당이 집권당도 아닌데 로드맵만 작성한다고 그대로 되나?

올해 만들어진 ‘무상의료 무상교육 운동본부’가 대중적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제대로 나아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밖에도 반세계화 투쟁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이 문제다. 민족주의적 사고의 한계이다. 전 세계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 관심이 없고,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죽으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가 주된 주장이었다. 국제연대는 어느덧 사라지고 ‘외교’만 남았으며, 기껏해야 운동사에서 악평을 받는 유럽 사민당 만나는 게 다다.

둘째로, 의회 활동에 대한 평가를 해보자면, 한나라당이나 열우당은 이슈를 만들고 끌고 가는 능력이 탁월했는 데 반해 민주노동당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제3당이 됐으니까 보수진영이 제기하는 모든 주제에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잘못된 강박에 시달렸다. 또한, 그 과정에서 당 중심성을 지키려 했지만 현실적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

최고위원들에 비해 국회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여건이 돼 있었고 보좌관 등 인적·물적 자원이 충분했다.

또한 언론의 집중을 항상 받기 때문에 쉽게 부각됐다. 이런 여건에서 최고위원들의 판단이 국회의원 쪽보다 뒤처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중앙당이 무기력한 상황에서 의원들의 활동이 당을 과잉 대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의원들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의회내 정치에 깊이 빠져 들어갔고, 의회 외부는 의회 내부보다도 더 크고, 강력하며 영향력 있는 정치를 하지 못했다. 이는 의원단이 중앙당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외부에 비쳐졌다.

이 과정에서 당 의원단은 이런저런 사안들에 개입해야 한다는 압력에 휩쓸렸다. 민주노동당은 모든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에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하지만 당이 주도할 수 있는 핵심 문제에만 대응하면 된다.

큰 쟁점으로 장시간 투쟁 계획이 필요하다. 그리고 특히 개혁공조는 해서는 안 된다.

의원단의 원외 활동도 노동자 투쟁을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외부 단체와의 광범한 네트워크 형성 노력이 있긴 했지만, 사전에 공동으로 기획된 강력한 투쟁은 없었다.

물론 이 역시 중앙당이 제대로 역할을 했어야 하는 문제이지, 의원단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보건파업 때 무상의료와 보건파업을 연결한 주장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것은 여론전에도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국정감사 때 극명하게 중앙당의 구실이 드러났다. 중앙당은 국정감사 때 가장 한가했다. 한나라당이나 열우당은 국정감사를 어떻게 활용하여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지에 대한 계획이 확실히 있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WTO·FTA처럼 중앙당이 중심을 잡고 의원실 전체가 함께 움직인 좋은 사례도 있었지만, 이러한 예는 일부분이었다.

셋째로, 대중운동과 당의 관계다. 당직·공직 분리의 경우 대중투쟁과 당이 중요하다는 취지를 지켜내는 좋은 제도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제도를 계속 온존시키느냐 폐지하느냐가 아니라 이 제도의 정신을 어떻게 하면 더욱 잘 살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운동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다른 한 가지는 직장분회이다. 직장분회를 활성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규직 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배신했을 때 현대중공업에는 2백 명쯤의 당원들이 있었다. 당이 주도해서 노조의 배신에 맞서야 했다. 하지만 직장분회의 경우 기존 노조의 한계를 뛰어넘는 활동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지방의원의 경우 국회의원과 비슷하게 지원받고 통제되어야 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를 장악하고 있는 경우 그 자치단체는 당의 정신을 현실화시켜 보는 새로운 실험의 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민주노동당이 제3당이 됐다는 의식이 당을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 뭔가 ‘공식적’이어야 하고 ‘전문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투쟁의 한 주체로서의 당’이 아니라 ‘폼 나는 대변자로서의 당’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조장하고 있다.

민중생존권이라는 말보다 보수정당들이나 쓰던 ‘민생’이란 말을 즐겨 쓴다. 실현 가능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현재의 계급역관계를 인정하는 걸 전제로 한 정책이 올바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계급 관계에서 불가능한 정책을 운동을 통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법을 만드는 것도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