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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정치가 유럽연합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다

이탈리아는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로 경제 규모가 유럽연합 4위이다.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내년 3월 29일에 유럽연합 탈퇴가 예정된 영국을 제외하면 이탈리아보다 경제가 큰 유럽연합 회원국은 독일과 프랑스뿐이다. 최근 유럽 지배자들은 이런 이탈리아도 유럽연합에서 이탈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인 오성운동이 3월 총선에서 최다 득표 정당으로 부상했고, 또 다른 극우정당 ‘동맹’과 함께 정부를 꾸린 것이다. 오성운동은 한때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선동했다. 유럽 지배자들은 오성운동이 만에 하나 그것을 실행할까 봐 특히 우려한다. 유럽 지배자들은 5월 말, 오성운동-동맹 정부가 경제 장관 후보자로 내세운 인물이 과거 유럽연합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그의 임명을 가로막으며 불쾌함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기회주의자들답게 오성운동과 동맹은 유럽연합 탈퇴 얘기를 쏙 집어넣었다. 사실 그들은 선거 때도 유럽연합 탈퇴보다는 기성 정치권에 대해 모호한 비판을 하면서, 최저소득 보장, 부자 감세, 난민 대거 추방을 주된 공약으로 앞세웠다.

당장은 이탈리아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가 가라앉은 듯 보일 수 있지만 핵심 문제는 그대로다. 새 이탈리아 정부는 일부 빈민에 최저소득을 지급하고 부자들을 위한 감세를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면 정부 지출이 크게 늘 텐데, 이는 유럽연합이 이탈리아에 요구하는 재정 긴축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긴축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새 정부의 핵심 지지대 둘 중 하나임을 감안하면(다른 하나는 난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적대감이다), 이탈리아 새 정부와 유럽연합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이탈리아의 인종차별적인 새 정부는 지중해에서 구출된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끝내 입항을 거부했다. 그러나 프랑스 등 다른 유럽 지배자들도 난민에 적대적이기는 오십보 백보라 제대로 제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이탈리아 경제는 현재 매우 취약하다. 이탈리아는 정부 부채 비율이 그리스 다음으로 클 뿐 아니라, 민간 경제도 유럽 전체의 악성부채 중 약 4분의 1을 떠안고 있다. 특히 프랑스 은행이 이들 부채에 많이 물려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11~2013년에 유럽 전체 경제가 수축할 때 이탈리아는 유럽연합에 더 많은 빚을 졌다. 그러나 이윤율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차입은 경기를 부양시키기는커녕 되레 이자 부담만 지웠다. 여기에 유럽연합 채권단이 강요한 각종 긴축 정책 등은 이탈리아 경제 후퇴를 부추기는 구실을 했다. 이번에 집권한 오성운동은 바로 2013년에 유럽연합에 순응하는 정당들을 비난하며 주요 정치세력으로 떠올랐다.

이후 오성운동은 전통적 우파 정당처럼 점차 변모해 왔지만, 유럽 전체 또는 이탈리아 경제가 휘청거리면 그 대응을 놓고 유럽연합과 충돌하면서 예상 밖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새 정부는 난민 50만 명 추방을 약속하는 등 전면적인 난민 적대 정책을 표방한다. 오성운동은 기성정치를 비판한다면서 이민자 공격에 가세해 왔다. 오성운동의 추천으로 총리에 취임한 주세페 콘테는 “짝퉁 연대의식을 허울 삼아 난민 지원 사업이 불비례하게 성장해 왔다”며 난민 지원과 관련 단체에 대한 강경 태도를 천명했다. 난민 정책을 담당할 내무장관을 맡은 ‘동맹’의 대표 마테오 살비니는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기 전부터 그와의 우애를 과시할 정도로 우익적인 인물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던 6월 2일, 한 백인이 난민촌에서 난민을 혐오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새 정부는 지중해에서 간신히 구조된 난민들을 태운 선박의 이탈리아 입항을 거부하며 이런 난민 혐오 정서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처럼 기회주의자들과 극우 세력이 날뛰게 된 데는 이탈리아 좌파의 무능도 한몫했다.

중도 좌파는 2008년 경제 위기 전에는 친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고, 경제 위기 이후에는 유럽연합의 긴축을 평범한 노동자·서민에 강요하는 구실에 충실했다. 그 결과 환멸을 샀다. 집권당이었던 중도 좌파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19퍼센트만을 득표하며 폭삭 주저앉았다.

이탈리아 주요 노총들의 지도자들은 이런 중도 좌파 정부를 지킨다며 긴축 정책에 타협하고 노동자 투쟁에 제동을 거는 구실을 해 왔다. 한때 강력했던 이탈리아의 극좌파도 중도 좌파 정부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시하다가 2008년에 동반 몰락한 이래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관련 기사로 본지 240호 ‘이탈리아 재건공산당 리폰다치오네의 흥망성쇠’를 보시오.) 이번 선거에서 극좌파는 ‘민중에게 권력을’이라는 연합 선본으로 출마했지만 1퍼센트 남짓 득표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평범한 이탈리아인들은 인종차별적 공격과 우익의 성장에 반대해 항의 운동을 벌여 왔다. 지난해 북부동맹(‘동맹’의 전신)의 후보로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자가 올해 난민을 상대로 총을 난사하고서 태연하게 파시스트 경례를 해 충격을 줬을 때, 2만 명이 그에 항의하고 난민을 옹호하며 시위를 벌인 바 있다. 2015~2016년 민주당 정부의 공공부문 삭감과 노동개악에 맞서 100만 명 이상 참가하는 파업도 몇 차례 벌어졌다.

유럽연합과 긴축에 반대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할 잠재력은 여전한 것이다. 관건은 이런 운동과 잠재력을 유럽연합에 대한 좌파적 대안과 결합시킬 혁명가들의 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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