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르헨티나에서 외화 자금이 유출되면서 통화 가치가 폭락하자, IMF는 구제금융 500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물론 이 돈에는 구조조정과 재정적자 축소 등 시장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라는 조건이 붙었다.

신흥국의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IMF가 신속하게 나섰지만 우려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통화가 연초 대비 17퍼센트 폭락했다. 브라질 경제는 2015년 3.5퍼센트, 2016년 3.46퍼센트 감소했다가 올해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는데, 다시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터키는 환율 방어를 위해 기준 금리를 17.75퍼센트로 급격히 인상했다.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남아공 등지에서도 통화 가치가 떨어졌다.

이렇게 신흥국 경제의 위기가 커지는 이유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며 통화 긴축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6월 13일 기준금리를 1.75~2.0퍼센트로 0.25퍼센트 인상했다. 올해 기준금리를 두 번 더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커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도 매달 국채 300억 유로를 매입해 오던 통화 완화 정책을 점차 축소(테이퍼링)하며 ‘양적완화’를 종료할 계획이다.

브라질에서 주유소 앞에 길게 줄을 선 자동차들 통화 가치 폭락으로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한층 커질 것이다 ⓒ출처 Agencia Brasilia

미국은 자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낙관을 바탕으로 통화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연준 의장 파월은 “오늘의 결정은 미국 경제가 아주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 성장세는 강하고 노동 시장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가는 목표치에 이르렀다”며 향후 전망도 밝을 것이라고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연준의 낙관과 달리 미국 경제의 회복세는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 물론 2018년 1분기 기업들의 주식 1주당 순이익은 26퍼센트 상승했다. 그러나 이것은 주로 트럼프 정부가 시행한 대규모 감세 정책 덕분이다. 트럼프는 법인세를 35퍼센트에서 21퍼센트로 감축하며 기업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줬다.

그러나 세금 감면 효과를 제외하고 보면, 전체 기업 이익은 2017년 4분기 0.1퍼센트 감소한 데 이어 2018년 1분기에 0.6퍼센트 줄었다. 2008년 대불황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G7 국가들 경제의 평균 수익률도 위기 이전보다 더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미국의 실업률이 역대 최저로 떨어져서 완전고용 상태라고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경제활동참가율도 최저 수준이다.

그래서 미국의 금리 인상 때문에 우려가 커지는 것은 단지 신흥국 경제만이 아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최근 발표를 보면, 미국 비금융기업이 진 빚 중 37퍼센트가 투자 적격 등급(BBB)에 못 미친다. 금리 인상은 이런 기업들의 파산 위기를 키울 것이다.

일본도 실업률이 역대 최저라는 보도가 많지만 실상은 그리 좋지 않다. 2018년 1~8월 평균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7년 대비 1085만 명(12.5퍼센트) 감소해 7614만 명으로 축소된 상태이다. 취업자 수는 경기 상황 등에 따라 6500만 명 내외에서 등락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 통계상 실업률이 낮아진 것이지, 진정한 성장이 벌어지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실질임금 인상률도 GDP 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양적완화가 낳은 모순

유럽도 지난해의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얼마 전 이탈리아가 유럽연합을 탈퇴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시장을 강타한 바 있듯이 곳곳에 정치적 불안정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각국 정부들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대규모 양적완화를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여전히 낮은 이윤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각국 경제는 경기부양책에 기댄 값싼 신용을 바탕으로 거품을 키워 왔다.

2008년 위기 이후 부채는 더욱 늘었다. IMF 발표를 보면, 2016년 세계의 부채는 164조 달러로, 세계 GDP의 225퍼센트를 차지해 사상 최고를 갱신했다.

그래서 지배자들 내에서는 양적완화나 경기부양책만이 아니라 중장기적 경제 성장을 위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존재해 왔다. IMF나 세계은행 등도 “잠재 성장률 제고 등을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물론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불황 시기에 구조조정돼 망하는 자본가들의 설비·시설 등을 살아남은 자본가들이 헐값에 인수하는 것을 통해 자본가들이 이윤율을 회복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착취율 강화와 함께 자본주의가 공황에서 벗어나는 고전적 방법이다.

그러나 자본의 규모가 커지는 집적과 집중이 벌어지면서 이런 대규모 자본 파괴를 통한 경제 회복은 크게 제한돼 왔다. 거대한 기업이 망할 경우 경제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의 시기에 국가가 나서서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기업들을 구제했다. 그 결과가 비효율적인 자본들이 좀비처럼 살아서 자본주의가 만성적이고 쉽게 치유되지 않는 장기 불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조조정을 통한 이윤율 회복 효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일부 대자본가들은 경쟁자들이나 더 작은 자본가들의 파산에서 득을 볼 수 있었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때 30대 재벌 그룹 중 절반이 쓰러지자 다른 재벌이나 외국 자본이 헐값에 인수하며 득을 봤듯이 말이다. 1980~1990년대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율을 높이는 것과 함께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 이윤율을 부분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불충분했다. 짧은 회복과 긴 불황 속에서 장기적 이윤율 저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현재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지금 미국 지배계급은 미국 경제가 성장세에 있을 때 막대하게 팽창해 있는 거품(값싼 신용을 바탕으로 생겼다)을 일정 부분 정리하고 부실한 부분을 구조조정하는 것이 향후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도 보는 듯하다.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자본가들에게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다른 나라가 떠안길 바란다. 마찬가지 이유로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신흥국들의 위기가 커질 수 있지만 이를 통해 경제가 구조조정되는 과정에서 미국 기업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여길 법하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경제가 취약한 상태에서 통화 긴축 정책이 시작될 때 지배자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위기가 심화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1929년에 대공황도 실물 경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1929년 8월 9일 뉴욕 연준이 기준금리를 6퍼센트까지 인상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세계경제는 심각한 파국을 맞았다. 2008년 경제 위기도 2004년 6월부터 2년간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 이후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폭발했다.

물론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선진국의 지배자들도 금리 인상이 급격한 충격을 부르지 않으면서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에게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려는 시도가 한층 더 강해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기준금리가 40퍼센트에 이른다. 마크리 정부는 경제를 개혁해야 한다며 공무원을 대량 해고하고, 규제 완화와 민영화 등 시장주의적인 공격을 벌여 왔는데,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이런 공격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브라질에서도 우파 정부가 국영전력회사 민영화와 연금 개악, 근로소득세율 인상,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장세 감면 등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포함한 친시장적 성장 정책인 “혁신성장”을 강화하려 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공격이 강화되는 시기에 이에 맞선 노동계급의 저항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1997~1998년 동아시아를 휩쓴 끔찍한 경제 공황 시기에 인도네시아에서는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나 수하르토의 30년 독재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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