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미중 무역갈등과 보호무역주의, 미국과 유로존의 금리인상, 신흥국의 위기 전파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 왔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함께 시작된 세계경제 대침체가 10년이 됐다. 자본주의 경제는 회복되기는커녕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전 세계 지배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왜 위기에 빠지는지에 대한 마르크스의 설명이 여전히 호응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행사가 다양하게 열리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비록 경제 분야에 한정된 것이지만 ‘마르크스의 귀환’은 다음 사실들에서 드러난다. 2007~2008년 경제 위기 때 《자본론》의 독일어판 매출은 평소보다 3배나 증가했다. 일본에서는 《자본론》의 만화판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마르크스를 “안개 속에서 다른 탑들을 굽어보는 거대한 탑”에 비유했다. 신자유주의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조차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마르크스가 옳았다

반면,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2007~2008년의 경제 위기와 이후의 장기 불황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경향신문사가 주최한 ‘경향포럼’에 참석한 노벨경제학 수상자이자 케인스주의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낙수효과를 강조한 미국식 모델은 실패했다”면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파산’을 선언했다.

경향포럼 ‘BEYOND $30000- 더 나은 미래, 불평등을 넘어’ ⓒ출처 경향포럼

스티글리츠 교수는 더 나아가, “1~2년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약 40년간 해 온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실험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한 내용이다.)

경제 위기와 장기 불황으로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그먼 같은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들의 경제 위기 진단과 대책 등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보다 낫다고 하기는 어렵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총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불평등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왜 총수요가 충분하지 않은지는 말하지 않는다.

20세기 주류 경제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케인스는 ‘자본의 한계 효율성’이 하락하기 때문에 투자(와 총수요)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케인스가 이런 주장을 하기 이미 70년 전에 마르크스가 투자 부진과 경제 위기로 치닫는 과정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는 개념으로 더 조리 있게 설명한 바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경제성장 둔화를 막기 위해 다시 ‘시장의 룰’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대안으로 바로 북유럽 복지국가를 제시한다. 과세 정책을 통해 복지를 확대하면 높은 경제성장도 구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무렵 (1) 노동계급의 급진화 물결, (2) 장기 호황, (3) 그로 말미암은 자본가들의 안정적 노동력 공급 필요성이 결합돼 나타난 현상이었다. 1970년대 초, 장기호황이 끝나고 이윤율이 하락하자 자본가들은 하락한 이윤을 벌충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복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복지국가는 시들기 시작했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등장했다.

스티글리츠 교수가 제안한 과세의 대상자는 소득 불평등으로 취약해진 하위계층은 아니다. 하위계층의 소비가 줄면 총수요가 또 줄어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를 포함한 케인스주의자들은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다르다.

하지만 자본의 이윤율이 전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가 계급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수 있을까?

케인스

이 점에서 케인스(1883~1946)의 태도는 시사적이다. 케인스는 자본의 한계 효율성을 언급하며 “투자의 사회화”를 한때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현실의 경제 문제에서는 자본가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늘 노심초사했고, 그래서 정부 경제정책도 민간 기업가들의 이윤 추구 활동을 억제하지 않을 정도로 제한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케인스는 1930년대의 세계적 대불황으로 인한 급진화의 물결에서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여겼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급진화해서 혁명으로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한다고 강조한 마르크스와는 정반대였다.

케인스의 경제 정책은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케인스가 지지를 제공한 미국 대통령 프랭크린 로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1937년의 재침체 때 파산했다.

그 후, 케인스는 제1차세계대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연합국이 독일에 강제한 과도한 전쟁 배상금이 또 다른 분쟁을 초래할 것이라며 제2차세계대전을 반대했는데, 얄궂게도 이 세계적 대전쟁과 이후의 상시적 군비 증강이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구실을 했다.

케인스주의 정책이 제2차세계대전 후 장기 호황을 낳았다는 게 흔한 오해다. 그러나 그와 달리, 전후 장기 호황 때 서방 정부들은 오히려 긴축 정책을 폈다. 1970년대 초의 경제 침체를 맞아 서방 정부들은 케인스의 가르침대로 경기부양책을 썼다. 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사실, 알려진 바와 달리, 케인스주의는 경제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은 바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케인스주의는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력 착취와 자본들 사이의 경쟁을 기초로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향포럼’에 참석한 또 다른 연사인 앵거스 디턴 교수도 “정치·경제 엘리트가 서민을 경제적으로 갈취한 게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도 독점자본의 지대 추구나 갈취가 아닌,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법률로 정당화되는 자본가의 노동력 착취는 문제 삼지 않는다. 이런 간과는 자본주의를 개혁하면 불평등이 완화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착각을 낳는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주 위기에 빠지는 필연적 경향을 내포하고 있고, 그 때문에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 논리적 결론은 자본주의를 개혁하느라 애쓰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새로운 체제, 즉 사회주의 사회로 대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은 모두 마르크스가 남겨 놓은 자본주의 분석을 디딤돌 삼아야 한다. 이것이 소수 활동가들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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