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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벡 가격을 인하하라

지난 7월 13일 백혈병 환자들이 ‘기적의 신약’으로 알려진 글리벡의 약가 인하와 보험 적용 확대를 요구하며 여의도 한국 노바티스 사 앞에서 팻말 시위를 벌였다. 새빛누리회(백혈병과 혈액질환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주축을 이룬 이 시위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일부 의과대 학생들도 참가했다.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힘겹게 벌인 두 시간 가량의 집회는 백혈병 환자들의 생존을 향한 절박한 외침이었다.

백혈병은 비정상적인 유전자 변이로 백혈구가 무한 증식하는 치명적인 혈액암이다. 현재 한국에는 1천 명이 넘는 환자가 있다. 만성기, 가속기를 지나 급성기로 진행되면 별 다른 치료도 못해 보고 수 개월 내에 죽게 된다. 원인도 불분명하고 병의 진행 단계나 정도를 전문의조차 예측할 수 없다. 유일한 치료법으로 알려진 골수 이식은 성공률이 낮고 비싸 대부분의 환자들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지난 5월 10일 미국 FDA의 글리벡 신약 승인은 골수 이식이 어려운 백혈병 환자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글리벡은 1999년 스위스 노바티스 사가 개발해, 2년 간의 임상 연구를 통해 백혈병 치료제로서의 효능을 인정받은 약이다.

그러나 글리벡의 약값은 한 캡슐에 2만 5천 원이 넘어 한 달 약값이 만성기 환자는 3백만 원, 급성기 환자는 4백50만 원에 이른다. 워낙 비싸니 웬만한 가정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보험 적용이 된다 하더라도 한 달에 1백50만∼2백25만 원의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

한국 노바티스 사는 약가 인하 요구에 대해 ‘골수 이식 비용에 준해 약값을 책정했고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야박하게 못박았다. 스위스 노바티스 본사는 만성 백혈병 환자 치료의 유일한 약제라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각 나라의 GNP를 고려해 나라별로 약값을 달리 책정했던 기존의 관행조차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월 3백만∼4백50만 원을 고수하고 있다. 140여 개국에 지사를 둔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는 연 10만 달러 미만의 소득자에게는 싼 값으로 약을 공급하겠다던 약속을 뒷전으로 돌렸다. 그야말로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이윤 벌이를 하고 있다.

그림의 떡

글리벡은 장기 복용해야 하는 약이기 때문에 이렇게 가격이 높으면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새빛누리회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면 백혈병 환자들의 한숨이 느껴진다. “글리벡이 건강보험에 적용되어도 월 150만 원이 소요됩니다. 그러니 글리벡이 건강보험에 적용되어도 돈이 없어 못 먹는 사람이 태반일 거고, 돈 없으면 죽으라는 말밖에 안 되지요. ... 월 150만 원 약값 내면 우리 식구들은 굶어야 하거든요.”

백혈병 환자들은 지난 6월 27일 보건복지부 장관의 고시안에 대해서도 불만스러워 했다.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소아암(백혈병, 중추신경계암, 암성임파선암 등), 근육병, 장기이식(간장, 심장, 췌장)의 질환에 대해서만 본인부담금 비율을 20퍼센트로 낮췄다.

새빛누리회의 백혈병 환자들은 그 동안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 청와대, 한국 노바티스, 언론 등에 글리벡의 판매와 보험 적용을 요구해 왔다. 그 결과 글리벡의 시판이 앞당겨질 수 있었다.

환자들은 직접 행동에 나서면서 약가가 어떻게 결정되고 누구의 손에 의해 행정 절차가 이루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하기 힘든 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걱정하던 그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투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경제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스스로 놀라워한다.

이들은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약값 결정권을 지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글리벡의 보험 적용과 본인부담금 20퍼센트 확대 적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 시위에는 성인 백혈병 환자들뿐만 아니라 어린이 백혈병, 혈우병, 루프스 환자 등 희귀 난치병 환자들도 참가할 계획이다.

변변한 치료제 없이 고통받는 백혈병 환자들의 생명을 위해 글리벡 약값 인하는 물론, 보험 적용과 본인부담금 20퍼센트 적용은 꼭 필요하다.

더 나아가 약이 있어도 돈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없도록 정부가 모든 질병 치료를 지원하고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