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난민 신청자인 자이드 씨가 자신의 사정이 한국 난민 제도의 문제점을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해, 자신의 얘기를 들려 주고 싶다며 본지에 연락해 왔다.


나는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팔레스타인 난민이고 어머니는 이집트인이다. 국적은 아버지 쪽을 따르기 때문에 이집트 국적을 받지 못했다. 22살 대학생일 때이던 2005년부터 반정부 활동 시작했고 당시 키파야운동*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해 대선에서 야당 후보 아이만 누르를 지지하는 활동을 했다. 2006년에도 시위에 참가했고,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에도 참가했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에는 최고군사위원회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법적으로 외국인이어서 정치단체에 가입하지는 않았고, 체포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활동했다.

나는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혁명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한] 무르시 대통령에 반대하던 구체제 세력에 맞서는 활동에 참가했다. 그중 하나가 2012년 12월 23일 법관들의 모임인 ‘법관 클럽’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이다. 독재 정권에 충실하기로 유명한 아흐마드 진드라는 인물이 법관 클럽의 리더였는데, 그가 정권이 바뀐 뒤에는 혁명의 편인 척 행세하고 다닌 것에 분노해서 벌인 시위였다. 준비를 충분히 하고 움직인 행동이 아니어서 인원이 많지 않았다. 항의 과정에서 체포됐다. 체포된 이후 폭행과 고문을 받았다. 그때 팔레스타인 국적이 문제가 됐다. 당시 하마스가 테러를 저지른다는 언론 보도가 많았다. 내 신분증인 팔레스타인 난민 여행증명서가 발견되자,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며 드디어 테러 단체 하마스가 이집트에 침투했다는 증거가 나왔다며 떠들어 댔다. 하지만 이 신분증은 이집트 당국이 발행해 준 것이었다!

“난민의 삶도 소중하다” 6월 30일 난민 환영 집회 ⓒ이미진

내 소식이 〈알자지라〉에 보도되고, 동료들이 내 신분을 증명할 증거를 많이 제출해 주고, 항의가 커지자, 8일 만에 가석방이 될 수 있었다. 내 사건은 정치적 사건이어서, 38명의 변호사들이 변호를 맡았다.

2년이 다 지난 2014년 11월 18일에서야 법원은 나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길어야 징역 1년 정도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터라,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5년이나 감옥에 있을 수는 없었다.

한편, 내가 가석방 상태로 있던 2014년 2월에 이집트 법이 바뀌어 내무부가 나에게 이집트 국적을 부여했다. 그래서 형 선고가 나온 뒤에, 부처 간 행정 처리가 몇 주씩 걸리는 이집트 행정의 현실을 이용해 나는 여권을 들고 2014년 11월 26일에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그곳에서 유엔난민기구를 찾아갔다. 심사하는 데 무려 3년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캐나다 국적을 취득해 그곳에 정착한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는 연락 왕래를 자주 하던 편은 아니었지만 캐나다로 오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캐나다 대사관이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바람에 갈 수 없었다.

이집트 법에 따르면, 국적 취득 직후에는 2년 이상 해외 거주를 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이집트 당국이 국적을 박탈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굉장히 불안한 처지였다. 이집트로 돌아가면 감옥을 가야 하고, 안 돌아가면 국적이 박탈될 수 있었다.

한편, 말레이시아에서 지내던 중에 한 러시아 여성을 만나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돈이 떨어져서 말레이시아에서도 더 지내기가 어려워졌다. 한국이나 일본으로 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은 비자가 필요했다. 한국은 공식적으로는 난민을 지원한다고 했고, 비자 없이도 갈 수 있는 유일한 나라였다. 내 사건은 공개적인 변호와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사건이었다. 난민 인정을 당연히 받을 수 있겠다고, 2~3개월 안에 해결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인에게 모스크바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난민 인정을 받으면 한국에서 재결합하자고 했다. 하지만 결국은 둘 다 처지가 불안정해졌고 나중에 이혼했다.

“난민은 범죄자가 아니다” 7월 8일 광화문에서 열린 난민들의 기자회견 ⓒ임준형

한국에는 2016년 4월 4일에 도착했다. 공항으로 입국을 했고, 4월 8일에 난민 신청을 하러 출입국관리소에 찾아갔다. 직원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고 난민 신청하러 왔다고 말하니, 안 된다고 단박에 거절당했다. 당황했지만 내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직원은 듣기 귀찮아하며 저쪽에 가서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심지어 자신들 쪽을 보지 말고 시선을 문에 고정시키라고도 했다. 이집트 경찰도 우리를 이렇게 대우하지 않았는데, 여기는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한국에 있던 친구가 여기서는 난민 신청이 어려우니 난민 지원 단체에 요청해서 도움을 받으라 했다. ‘피난처’라는 단체에 연락을 했다. 이들은 매우 친절했고, 덕분에 필요한 서류 구비와 인터뷰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려 10개월이 지난 2017년 2월 중순에야 첫 인터뷰를 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틀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심사관은 굉장히 꼬치꼬치 캐물었다. 심지어 왜 부인이 있는 러시아로 가지 않았는지, 부인을 어떻게 만나게 됐고 왜 이혼했는지 등 굉장히 사적인 질문도 던졌다. 나는 기억력이 매우 좋아서, 전 부인과의 첫 데이트부터 모든 걸 다 얘기해 줬다.

하지만 결국 세 달 뒤인 2017년 5월에 난민 인정을 거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 내가 제출한 서류 일부에서 날짜 오류가 발견됐다. 이집트에 있는 변호사에 연락해 서류 재발급을 요청했지만, 한국 당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다른 거부 사유는, 내가 가석방 상태로 집에 있었기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받던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석방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그대로 있었으면 감옥에 갈 상황이었다. 가석방 상태에서 여권을 발급받았다는 것도 난민 인정 거부 사유였다. 그 과정은 인터뷰 때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는데 말이다.

또, 한국 당국이 괜찮다고 해서 심사 동안 잠깐 대만을 다녀온 것도 문제라고 했다. 캐나다에 있는 아버지에게 가지 않았다는 것도 불인정 사유였다. 내 결혼 기간이 짧았던 것도 불인정 사유였다. 마치 내가 그 결혼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고 했다는 듯이 서술됐다.

이런 결정을 받아 보니, 이틀 동안의 인터뷰가 무의미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난민 인정 거부라는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던 것 같았다. 내 사생활을 문제 삼은 것은 굉장히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난민 인정이 거부되고 한 달 뒤인 2017년 6월, 어느 유명한 변호사 분이 도와주셔서 소송을 걸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여권 만료 기간이 3년 남았는데, 이 여권은 내가 취득한 처음이자 마지막 여권이 될 것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시위에 나서는 난민을 비난할 수 없다. 모든 일을 지체시키고 있는 한국 정부가 잘못이다. 난민법을 만들어 놓고도 [20여 년 동안] 인정한 난민이 800명 밖에 안 된다.

물론 한국 정부에겐 한국의 경제적·안보적 사정 때문에 난민을 거부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솔직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법을 만들어 놓고 왜 안 지키나? 우리는 한국이 난민법도 있고 유엔 난민협약에도 가입돼 있어서 난민을 받아 주는 나라라고 알고 왔다. 그런데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우리의 삶을 망치고 낭비시키고 있다. 한국인들은 1분 1초도 아까워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몇 년씩 이렇게 낭비돼도 되는 것인가?

나는 지금 하수구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수의사로 일했다. 우리 집안도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형편이었다. 나는 정치에 입문하라는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부끄럽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희망이 없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하수구만 치워야 하는가? 한국의 난민 신청 시스템이 원래부터 5년 10년씩 오래 걸리는 것이라고 얘기해 줬다면 차라리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 주지도 않은 채로 계속 시간만 끌고 있다.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들 태반이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게 거절당하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이겨서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한국 정부는 난민 위기라고 말한다. 난민 800명 있는 게 위기인가? 난민이 300만 명 있는 터키, 100만 명 있는 방글라데시 등이야말로 진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 삶을 낭비하지 말아 달라. 법을 정직하게 따르고 우리를 갖고 놀지 말아 달라.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 정부는 체계적으로 난민을 배척하는 것 같다.

일각에는 난민들이 한국인의 일자리와 음식을 빼앗고 호의호식한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한국인들은 자기 나라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아이들과 미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이해한다. 그런데 그런 악성 여론을 조장하는 언론이 너무 많고 한국 정부는 혼란을 부추기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난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보도도 너무 많다.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 2명이 서로 다퉜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싸운다. 한국인 2명이 어딘가에서 싸웠다고 해서 언론에 보도되는가? 언론은 마치 난민이 잘못을 저지르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여기엔 정부의 책임이 있다. 정치적 놀음 냄새가 난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유엔 난민협약뿐 아니라 자국의 난민법도 안 지킨다. 정말로 난민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인지 가장 먼저 묻고 싶다. 관련 법을 따를 생각이 솔직히 있는 것인가? 차라리 난민협약에서 탈퇴해서 우리를 불필요하게 힘들게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싫다면 처음부터 거부해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난민 거부한다고 유엔 안보리가 한국을 제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미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도망쳐 온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인생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