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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견해차가 크다는 점이 확인된 북·미 협상

6월 12일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국내 주요 진보 단체들은 회담 결과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회담 직후 공개된 북·미 공동성명이 과거보다 진일보한 합의라고 봤다.

특히, 합의 사항의 순서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미 관계정상화 → 평화 체제 구축 → 비핵화” 순으로 성명이 조율된 것을 두고, “미국이 ‘북·미 관계 신뢰부터 회복한 후, 비핵화를 완료한다’는 북한 측 입장을 수용했다는 신호로 해석”한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앞날도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선 비핵화, 후 관계 개선’이라는 미국의 패권적 주장이 관철되지 않아 북핵 문제 해결이 단계적·동시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다는 게 주된 근거였다.

그러나 7월 6~7일 평양에서 열린 북·미 고위급 회담은 그런 낙관적 전망이 섣불렀음을 보여 준다. 북·미 정상의 만남이 북·미 협상의 성공을 보장하는 궁극적인 해법은 아닌 듯하다.

7월 6~7일 평양에서 열린 북·미 고위급 회담

강도

그 고위급 회담이 끝나고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를 내어, 미국 측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내세웠다고 성토했다.

이 담화를 보면, 애초에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미사일엔진시험장 폐쇄 같은 비핵화 합의 외에도 북·미 교류, 종전선언 등 관계정상화 문제의 진전을 원했다.

그러나 미국 협상단은 종전선언 등은 옆으로 치워둔 채, 북한이 그토록 반발해 온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를 관철시키려고 한 듯하다.

북·미 고위급 회담은 합의문 한 장 내놓지 못한 채 끝났고,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가시적 성과를 거의 얻지 못한 채 돌아갔다.

이번 회담으로 미국과 북한 사이에 구체적 내용을 놓고 간극이 여전히 크다는 점이 확인됐다. 비핵화의 구체적 목표와 방식, 비핵화·관계정상화의 순서 등에서 말이다.

그러자 미국 주류와 한국 우익은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으로 북·미 협상을 공격하고 있다. 중단된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해야 한다는 얘기도 벌써 나온다.

게다가 북·미 고위급 회담에 앞서 〈워싱턴 포스트〉〈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북핵 비밀 의혹을 제기했다. 과거에 이런 의혹 제기가 북핵 협상을 중단시킨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이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의혹

북·미 협상의 중장기적 전망이 불투명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트럼프 정부 내에서 북핵 협상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잘 나오지 않는다. 트럼프, 볼턴, 폼페이오 등 최고위급 인사들은 자주 제각기 다른 얘기를 한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북한이 (미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비핵화 조처를 먼저 이행해야 한다는 점만은 명확하게 말한다. 고위급 회담을 앞둔 6월 23일, 트럼프는 대북 제재 행정명령의 효력을 1년 더 연장해 버렸다.

7월 8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폼페이오는 “평화로운 관계 구축, 대북 안전 보장 증대, 비핵화” 같은 6월 북·미 공동성명의 합의 사항들을 동시에 진전시킬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반발하는 북한을 달래어 협상 동력을 유지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확인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겠다고도 못 박았다.

물론 북·미 양측 모두 당장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의사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테이블 위에는 지난 30년 가까이 해결되지 못한 채 복잡하게 꼬여 버린 난제가 올라와 있다. 이 난제를 푸는 과정은 십중팔구 이번에도 길고도 불확실한 험로가 될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는 상황이 북·미 협상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9일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대중 무역에 대한 우리의 태도 때문에 [북핵] 협상에 부정적 압력을 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과 얽히면 북·미 협상의 불확실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모두 한발씩 양보하기를 바라는 것에는 난점이 있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은 제국주의 세계 체제 내에서 거의 대등한 지위를 가진 국가들 간의 협상이 아니다. 한 쪽은 최강의 군사력으로 오랫동안 북한을 위협해 온 제국주의 국가이고, 다른 한 쪽은 그 위협에 반발해 핵무기를 개발해 온 중간 규모의 공업국이다. 그것만으로도 북한은 한껏 불리한 처지다. 북한 핵무기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겠지만, 지지부진한 협상의 책임을 양측에 같은 무게로 묻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핵 문제와 그 협상을 볼 때는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의 관점이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과 혁명적 정치가 이론과 실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