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제19회 서울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6만 명의 참가자들이 무지개 빛깔로 시청 광장을 수놓았다. 낮 기온이 33도까지 치솟는 폭염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오전 일찍부터 성소수자들의 ‘명절’을 즐기기 위해 참가했다. 행진 시작 한참 전부터 시청 광장에 수 천명이 모이기 시작했고, 행사 시작 무렵 부스 쪽에서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젊었다. 대학생 등 청년이 많았다. 중고등학생 참가자들이 교복을 입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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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퍼레이드 슬로건은 “퀴어라운드”로, 서울퀴퍼조직위원장은 이것이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당당히 살고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또, 올해부터 ‘퀴어문화축제’가 ‘서울퀴어문화축제’로 이름을 변경했는데, 이는 많은 지역에서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올해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한 부스도 역대 최대로 많은 105곳이었다. 일부 부스에서 공공기관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라는 청원 서명을 받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이라는 단체는 대학 중 최초로 설치하는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넓히는 서명을 받았다.

민주노총 등도 부스를 차리고 직장 내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책자 등을 배포했다.

성소수자를 방어하는 기독교 단체들도 부스를 차리고 ‘전환치료’에 반대하는 팸플릿을 배포했다. 기독교 우익들이 ‘탈동성애’를 외치며 폭력과 감금을 동반한 ‘전환치료’를 정당화하는 상황에서 기독교 단체들의 행동은 뜻깊었다.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 선동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부스들도 있었다. 소수자난민네트워크에서 영어로 난민(Refugee)이 무지개로 수 놓인 기념품을 팔았고, ‘제주 예멘 난민에게 혐오가 아니라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이주·인권·노동단체 일동 리플릿을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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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는 성소수자부모모임 회원 20여 명이 팻말을 들고 올라와 “나는 내 자식이 자랑스럽습니다!”를 외쳤다.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커밍아웃 이후 가족과 갈등을 빚는 많은 성소수자가 많은 상황에서, 부모들의 따뜻한 외침은 많은 성소수자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을 것이다.

또,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무대에 올라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호소했고, 중국과 일본의 성소수자 단체들에서 연대 발언과 밴드, 댄스 스포츠, 드랙퀸 공연 등 여러 다채로운 행사들이 이어졌다.

한편, 같은 시각에는 시청광장 맞은편 대한문 근처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기독교 우익 1만여 명이 성소수자 혐오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입니다”, “퀴어보다 더 좋은 건 탈동성애” 주장이 담긴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혐오를 선동했다. 우익 집회에선 낙태권을 비난하고, 무슬림 혐오 선동도 공공연히 나왔다.

최근 “대구 동성로/서울 시청광장 퀴어행사 개최를 반대합니다”라는 청와대 청원이 20만 명을 넘었지만, 청와대는 서울 퀴어문화축제의 “광장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이다.

우익들의 선동은 이제 퍼레이드 참가자들에게 큰 방해 요인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우익 집회에 아랑곳하지 않고 축제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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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였다. 일부 우익들이 여러 번 행진을 방해하고 연좌를 시도해 행진이 약간 지체되는 분노스러운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 방해는 성공하지 못했고 전반적으로 참가자들은 활력 있게 행진했다.

올해 행진의 선두 차량은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가 이끌었다. 이 대열에는 여러 대학 성소수자 모임 깃발뿐 아니라, 고려대, 중앙대, 서강대, 카이스트, 이화여대, 한신대 등 여러 대학의 총학생회·단과대들이 깃발을 띄우고 행진했다. 저변에서 넓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우호적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는 보도자료를 통해 “문재인 정부 등 정치계가 끊임없이 성소수자 인권을 나중이라고 한다. 청년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행진을 통해 보여주자”고 행진의 취지를 설명했다.

트랜스젠더 깃발들도 눈에 띄었다. 트랜스젠더 단체들이 함께 모여 행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의당의 여러 지역위원회와 성소수자위원회, 민중당과 녹색당 등 진보정당도 깃발을 띄우고 활력 있게 행진에 동참했다.

폭염 속에서 얼굴이 발갛게 익어갔지만,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내내 웃음과 흥분이 가득했다. 시청 광장으로 돌아왔을 때 참가자들은 서로 “고생했다”, “수고했다” 인사하며 뿌듯함과 해방감을 만끽했다.

오늘의 이런 활력과 해방감이 남은 364일 일상의 차별에 맞서는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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