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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량은 똑같은데 근로시간만 줄어서 더 힘든 집배원

장시간 노동, 과로사로 악명 높은 직업 우체국 집배원.

우정사업본부는 2015년 ‘지난 10년 최악의 살인기업’에서 유명 건설 회사들을 제치고 ‘당당히’ 4위에 선정된 바 있다. 그런 우정사업본부에 잠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우편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이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52시간 근무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장시간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집배원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되는구나!

어쨌든 결과만 보면 확실히 장시간 노동에서는 해방됐다. 오후 여덟 시에 끝낼 일을 안 쉬고 안 먹고 더 빨리 뛰고 더 빨리 달리고 더 빨리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더 빨리 우편물을 분류해서 오후 여섯 시에 끝내고 있다. 오로지 집배원의 체력만으로 하루 아홉 시간 근무를 일궈낸 것이다. 그렇게 장시간 노동에서는 해방이 됐다. 그런데 저녁이 있는 삶은 아직 못 살고 있다.

집배원의 체력으로 만들어가는 주52시간이기에 업무강도가 세다. 상식적인 차원의 업무강도가 아니다. 발가락에 쥐가 나서 오토바이 변속기 페달조차 제대로 못 밟는 때가 많다. 그만큼 일이 고되기에 퇴근해서 집에 가면 그대로 쓰러진다. 저녁이 없다. 이런 주52시간 근무는 장시간 노동보다 더 위험하다.

2018년 7월 1일부터 우체국 집배원은 주52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보통 하루 아홉 시간 근무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5시간 근무를 한다. 그리고 토요일에 일곱 시간 근무한다. 그렇게 해서 주52시간 근무가 된다.

집배원은 상시집배원(무기계약직)과 정식집배원(우정직 공무원)이 있다. 상시집배원은 반드시 주52시간을 지켜야 한다. 시간 초과하면 사업자(우체국 국장)가 벌금 2000만 원을 내야 한다. 정식집배원은 신분이 공무원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주52시간 근무를 어겨도 처벌을 안 받는다. 최대 6개월 유예기간이 있다.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제천우체국은 상시집배원이 여덟 명 있다. 상시집배원은 개인 의견에 따라 토요 근무를 하는 집배원이 있고, 안 하는 집배원이 있다. 토요 근무(택배만 배달)는 격주로 한다. 만일 토요 근무를 둘째 넷째 주에 한다면, 토요 근무 하는 주에는 평일에 시간 관리를 잘해야 한다. 최소 토요일에 근무할 네다섯 시간은 확보를 해놔야 한다. 그러니 평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외 근무를 안 하고 오후 여섯 시 퇴근하면 45시간, 만일 평일에 두 시간 시간외 근무를 하면 그 주의 토요일에는 다섯 시간만 근무해야 한다(47+5=52).

우체국은 일반적으로 셋째 주가 가장 바쁘다. 우편물이 가장 많다. 각종 공과금 고지서가 이때 배달된다. 그래서 7월 1일부터 셋째 주 외에는 강제로 시간외 근무를 없앴다. 상시집배원이든 정식집배원이든 무조건 셋째 주 말고는 오후 여섯 시에 퇴근해야 한다.

그러려면 배달 마치고 우체국에 적어도 네 시 전에는 들어와야 한다. 다음 날 배달할 우편물들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네 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배달할 우편물들이 남았다면, 배달 포기하고서라도 들어와야 한다. 물론 남은 우편물은 다음날 반드시 배달해야 하고.

그러니 우편물들이 쌓이면 그게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만큼 배달할 물량이 많아지는 거다. 내일 배달할 우편물과 오늘 미처 배달 못한 우편물들 합치면 양이 상당하다.

당연히 집배원들은 우편물을 네 시 전까지 최대한 많이 배달하려고 예전보다 더 빨리 움직인다. 점심 식사 거르는 경우 많고, 먹더라도 10분 안에 해치운다. 그만큼 업무강도가 훨씬 세졌다. 배달 물량이 전보다 줄어든 것도 아니고, 인원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근무 시간만 주52시간으로 줄었다. 이건 상식적인 차원의 업무강도가 아니다. 하루 배달 마치면 2키로 이상 살이 빠진다.

그러면서 유연근무 얘기도 나온 적이 있다. 원하는 집배원들의 경우 안 바쁜 주(첫째 넷째 주)에는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이건 정말 우체국 집배실 생리는 모른 채 수치 상으로만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거다.

집배원은 순환근무고, 배치되는 구역이나 담당 업무에 따라 다른 집배원보다 배달 업무가 빨리 끝나기도 하고 늦게 끝나기도 한다. 빨리 끝날 경우 우체국에 일찍 들어와서 다른 집배원 업무를 돕는다. 예를 들어 아직 우체국에 안 들어온 집배원의 내일 배달할 우편물을 대신 구분해 놓는다든지 한다.

그렇게 집배원들은 서로 돕는다. 그렇게 돕기 때문에 전체 집배원이 (여전히 저녁이 없는 삶이지만) 평일 오후 여섯 시 퇴근이 가능한 거다. 하지만 만일 일찍 들어온 집배원이 유연 근무 때문에 오후 다섯 시 퇴근하면, 다른 집배원들은 근무 시간을 지키지 못한다. 오후 여섯 시 넘어서 퇴근하는 경우가 생긴다.

선배 집배원들 얘기 들어보면, 배달할 물량이 늘어나든 근무시간이 줄어들든 집배원들은 어떻게든 그 상황에 맞춰서 일을 해낸다. 허리에 복대 차고, 허벅지와 종아리에 압박 붕대 감아가면서까지 일을 해낸다. 발가락에 쥐나는 건 일상이다. 그러다 나중에 몸 망가지고 크게 사고 당하면 일 그만 둔다.

근로시간 연 1800시간 얘기도 나온다. 근로시간 줄이겠다면 업무량을 줄여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근로시간만 줄어든 지금의 주52시간 근무는 오히려 장시간 근로보다 더 위험하다.

인력 대폭 충원하고 토요 근무 완전히 없애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