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노동자연대 회원들인 최일붕·김하영·김영익이 7월 19일 맑시즘 포럼 첫날 저녁에 한 연설이다


‘진정한 진보를 위한 투쟁’이란 주제로 열린 맑시즘2018 개막 전체 토론 ⓒ이미진

현재의 정치 상황

세계경제는 지금 10년째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회복되는 조짐이 두 차례쯤 있었지만 대단찮고 뒷심이 부족해 회복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지난 2년 사이에 선진 산업국의 지배계급은 주요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가혹한 긴축 정책과 빈부격차 증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서구의 중도 세력은 대중의 신임을 잃었습니다. 한국 정치 얘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중도가 거의 몰락한 대신에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가 다수표를 얻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또,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중심국들에서 우익, 심지어 극우 세력이 크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익도 성장했지만 좌파도 전보다 지지가 늘어났습니다. 미국 대선을 위한 민주당 경선에서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버니 샌더스 후보가 꽤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비록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지는 못했어도 말입니다. 샌더스 지지는 민주당 바깥에서 훨씬 두드러졌습니다.

영국도 노동당 대표로 제러미 코빈이 선출되고 당 대의원대회에서도 좌파 측이 다수가 돼, 당이 전보다 왼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물론 선진 산업국에서 좌파는 우익에 비해 취약합니다. 매우 취약해서 수십 년 이래 가장 취약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요즘 미국 청년들은 좌파 사상에 관심이 많다는데도 당분간 민주당이 이 새로운 좌파 청년 세대 등장의 수혜자가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정치적 좌우 양극화가 격심해졌습니다. 그래서 기존 정치 체제가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동안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서로 번갈아 가면서 선진 산업국들의 지배계급에 안정적인 완충장치가 돼 주었는데, 그만 그들에게 당혹스런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지배자들의 전망도 뒤죽박죽이다

자유 시장경제 정책들은 선진 산업국들의 대중 속에서뿐 아니라 지배계급에게서도 신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자유 시장경제 정책들로써 자본주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잃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배자들은 자유 시장경제 정책들뿐 아니라 공적자금 투입과 구제금융, 양적완화 같은 경기부양책들도 믿지 못하게 됐습니다.

전에 그들은 시장경제 정책과 국가 개입 정책을 잘 버무려 사용하면 경제의 장기 침체는 겪지 않고 그저 일시적인 경기순환만을 겪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둘 다를 못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지배자들, 특히 트럼프와 그를 지지하는 일부 미국 지배자들은 무역 보호주의를 강화해, 서유럽과 중국을 겨냥해 관세를 대폭 올리고, 수입 할당량을 대폭 줄이고, 수입 금지 품목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무역전쟁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서유럽 정부들과 중국 정부도 무역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은 최근 격화돼 온 두 국가 간 제국주의적 경쟁의 맥락 속에서 봐야 합니다. 미국과 서유럽의 관계는 제국주의적 경쟁 관계가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좀 더 중요한 양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냉전 종식 이래로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누려 왔지만, 이면에서는 다른 열강에 비해 그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돼 왔습니다. 여전히 미국의 경제력이 1위이지만 그 뒤를 중국과 독일, 일본 등이 추격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중국을 미국은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첨단기술 분야 보호 정책은 이 분야에서 중국이 전진하는 것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특히 군사 장비와 관련된 기술이 그렇습니다. 첨단기술 분야의 보호 문제라면 트럼프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선진 산업국 정치의 요약

앞에서도 말했듯이, 선진 산업국들의 정치는 양극화불안정성이 특징이 돼 있습니다. 강경 우익은 기성 보수 정당 안팎에서 중요한 세력이 됐습니다.

좌파 세력의 처지는 뭐라고 한마디로 요약하기가 어려운데, 일부는 그리스의 현 여당인 시리자처럼 스스로 신임을 실추한 경우도 있고, 영국 노동당이나 스페인 포데모스처럼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신임을 잃은 중도 정당들은 우익의 정책 중 일부를 베껴 쓰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자나 난민이나 무슬림이나 안보 문제 등에서 수치스럽게도 그러고 있습니다. 중도 정당 중에는 영국 노동당만이 제러미 코빈의 지도력 아래 진로를 좌경화시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신흥국 한국의 상황

지금까지 선진 산업국들의 상황을 훑어봤는데, 신흥국 한국의 상황은 그와 사뭇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아시게 될 것입니다. 공통점과 차이점이 다 있습니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가장 역점을 두고 다른 후보와 토론한 문제가 사실은 경제 문제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적폐 청산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주류 정치인들은 기업인들과 자산가들의 이익 문제를 경제 문제, 민생 문제라고 부릅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나머지 대선 후보들과 10퍼센트가량이나 되는 청년 실업 문제도 토론했습니다. 청년들은 대부분 시스템이 자기들에게 불리하게끔 부당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혜택을 부패한 대기업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몇몇 재벌 총수들을 속죄양으로 제사상에 올려 놓았습니다. 분노한 청년들을 달래기 위해서죠. 그래 놓고는 이재용과 지금 악수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미 지난해 12월 5일 국회에서 법인세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 정부·여당은 애당초 연간 순이익 2000억 원 이상 기업에 25퍼센트의(기존 22퍼센트) 세율을 적용하는 개정안을 제출했었습니다. 그러나 기업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연간 순이익 3000억 원 이상 기업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후퇴했습니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청년·저소득층 세입자 관련 공약 32개 중 온전히 이행된 것은 1개밖에 되지 않습니다(경실련 보고).

매사가 이런 식입니다. 뭔가 강력한 조처를 취할 것처럼 제스처를 취했다가 슬그머니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입니다.

지난해는 임금과 정부 공공지출을 늘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임금 상승을 상쇄시키는 조처들을 취하고, 공공지출 증액을 생색내기 수준으로 만드는 조처를 취합니다. 가령 올해 예산에 대해 〈한겨레〉는 1면 제목은 정부가 복지에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것처럼 뽑았지만, 안쪽 면 제목은 정부가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에두르는 비판이었지만). 한국은 아동·가족 복지 공공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으로, 35개국 가운데 31위에 그친 수준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생색내기 짓을 하면 안 되죠.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대중의 불만과 볼멘소리를 들은 이슈는 주요한 것만 꼽아도 이렇습니다. 혜화역 몰카 반대 집회에서 나온 항의, 최저임금 개악, 노동시간 단축 유예, 노동 유연화, 공공기관 호봉제 폐지, 전교조 여전한 법외노조, 교원 성과급, 교원평가, 대입제도 개선 약속 파기,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생색내기 수준,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자 해고 또는 비정규직화, 사드 배치, 위안부 합의 유지, 호전적 제국주의자 트럼프 국빈 초청, 대북제재 지속 등.

특히 지방선거 후 문재인은 우경화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노동정책에 관한 한 그렇습니다. 국민 통합이 우경화의 명분입니다. 그동안 좌경적이었다는 생각을 반영합니다. 그런데 우경화는 이미 지방선거 전에 예고됐습니다. 영남 지방에서 자유한국당 출신자들을 대거 공천했을 때 알아봤습니다. 이렇게 보수 정치인들을 영입한 데엔 경제가 여전히 어려운 것이 한몫했습니다.

이렇게 경제 전망이 어둡다 보니 한국도 선진 산업국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의 양극화와 불안정이 특징입니다. 그렇기에 바로 1년반 전쯤에 대통령을 몰아내겠다며 절정기에 23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요.

물론 선진 산업국들과 달리 지금 한국에선 중도 세력이 집권하고 있고(터무니없게도 언론은 이들을 ‘진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중도 세력이 보수 세력보다 강력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중도 세력은 자기 지지자들을 배신할 것입니다. 아니, 벌써 배신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이 4주째 하락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도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다만 올해 초 남북·북미 정상회담 국면이 새로 전개돼 지방선거에서 정부·여당 지지율이 정점을 찍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중도 세력이 지지자들을 배신해 선진 산업국들처럼 “극단적 중도” 세력이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노무현 집권 후반부를 상기하게 됩니다. 2003년 초 천대받는 대중의 기대와 희망을 한 몸에 안고 취임한 노무현은 배신에 배신을 거듭한 끝에 결국 집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는 대중에게 쓰라린 환멸을 안겨 줍니다. 이때 좌파의 정치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선진 산업국들에서처럼 우리 나라에서도 좌파의 세력은 약세입니다. 하지만 좌파가 중도파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확고히 유지하면서도, 중도파를 지지하던 개혁주의자들과 공동 투쟁을 펼친다면 우리는 곧 회생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정의당의 지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 지지가 줄면서 그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운명도 상기해야 합니다. 통합진보당은 당내 경선 부정 문제를 놓고 분열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당 핵심 간부들인 경기동부계의 전쟁 대비책을 내란음모로 몰아 국가가 강제 해산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쟁점은 당내 자민통계의 친북 사상을 유시민·심상정·노회찬 씨들이 싫어하고 우려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갈등 문제가 중요해진 2010년대 상황에서 북핵 문제는 진정한 쟁점이 아닙니다. 이 점을 통합진보당 지도자들은 몰랐습니다. 만약 그들이 북핵이 아니라 미·중 갈등이 진정한 쟁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한국의 좌파는 미·중 간에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반대하기로 했다면 괜스레 분열하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국가의 공격에도 훨씬 잘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고요.

지금 정의당은 북핵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대체로 통일돼 있습니다. 이제 북한 문제로 분열하지는 않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정의당이 민주당 지지 하락의 반사이익을 얻는 것은 결코 무한정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파 정치 세력도 민주당 지지 하락의 반사이익을 얻고자 분투할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당 안에는 정의당보다는 우파 정당들을 명백히 선호하는 자들이 명백히 더 많습니다.

결국 우파는 어쨌거나 세력을 꽤 되찾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배계급의 제1 선호 정당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항해 정의당은 자기보다 왼쪽에 있는 세력과 함께 저항해야 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정의당의 성장은 제러미 코빈의 선례를 따르느냐 포데모스 지도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의 선례를 따르느냐 하는 선택지에도 달려 있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어야겠습니다. 민주당의 배신과 그 지지자들의 환멸은 거의 예정돼 있습니다. 그 당의 기반이 자본가 계급이고 자본가들은 장기 침체 속에서 수익성 방어에 여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 변화는 그저 객관적 상황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 상황 못지않게 사람들 자신의 능동적인 투쟁 경험이 중요한 요인입니다. 우리는 민주당 지지 하락이 천대받는 대중에게 좋지 못한 결과로 떠안기지 않도록 대중 속에서, 특히 노동계급 속에서 공동 투쟁을 준비해야겠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황과 당면 과제

문재인 정부의 핵심 난점은 대중의 개혁 염원 덕분에 집권했는데 그 염원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1년 전 맑시즘 포럼에서도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 말을 뒷받침하려고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 상황, 문재인 정부 정책 책임자들의 성향, 두 우파 정부 동안 악화돼 온 노동자들의 처지 등 여러 가지를 얘기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 자신의 말만 인용해도 됩니다. 며칠 전 그는 스스로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공약을 못 지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소득 개선’ 염원도 충족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정말이지 불과 1년 만에 문재인 정부는 그가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며 했던 대표 공약 — 최저임금 1만 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 노동시간 단축, 좋은 일자리 정책, 노조 할 권리 보장 등 — 을 대부분 저버렸습니다. 노동자들은 이를 조삼모사 식 ‘노동 무시’라고 느끼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빠른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특히 지방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빠르게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주창자인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질됐습니다. 문재인은 인도에 가서 내놓고 삼성 이재용을 만났습니다.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국회를 찾아가 규제완화 입법을 요구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 성장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라는 것을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신기술 분야 사업에서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해 주는 것입니다. 가령 빅데이터 분야 사업의 개인정보 보호 완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들먹이며 규제완화와 노동개혁을 정당화했는데,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수법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노동시장 구조 개혁의 필요성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구조 개혁’은 정말이지 조직 노동자들에게 진저리가 나는 말입니다. 박근혜가 대중적 반감에 부딪힌 중요한 계기도 바로 노동개혁이었습니다. 물론 이름은 바뀌었습니다. 박근혜는 ‘네덜란드 모델’과 ‘독일 모델’을 주장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덴마크 모델’을 주장합니다. 이제 이상적인 나라 찾는 식의 모델 돌려막기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다른 나라 ‘성공’ 신화가 한동안 통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때 성공한 듯한 개혁 모델을 자랑했던 북유럽 나라에서도 노동자들은 1990년대 이후 처지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덴마크 모델’의 핵심은 유연성을 강화하고 복지는 점점 악화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실업수당을 받으려면 구직 활동을 엄청나게 열심히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른바 노동을 장려하는 복지로, 나쁜 일자리라도 감지덕지하라고 떠미는 것입니다. 이런 노동 장려 복지는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최근 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는 마치 최저임금 개악의 보완책인 양 ‘근로 장려 세제’ 확대를 요구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 성격의 복지인 것입니다. 조삼모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우클릭이 빠를 뿐 아니라 매우 확고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재인이 점점 확고하게 기업 이윤 편에 서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 때문이자 그의 계급적 기반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시적 동요도 아니고 특정 인물들만의 문제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노동자 측 역시 이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노동자들은 그럴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6월 30일 노동자대회 때 7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그 핵심 부대는 지난 1년 동안 앞장서 투쟁해 왔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건설 노동자들과 금속 노동자들이 서울에서 수만 명 규모의 집회를 했습니다. 촛불 투쟁 이후 민주노총 조합원이 10퍼센트 증가했는데, 이런 새로운 부문도 투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난생 처음 파업을 해 본 어느 현대모비스 노동자는 “우리들의 힘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며 감격해 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 진영에는 약점도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문재인 정부를 너무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받아들인 개혁주의자들은 노동자 투쟁 속도를 늦추고, 노동자들로 하여금 불만족스러운 안을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물론 지난 몇 달 동안 문재인 정부에 대한 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비판 톤이 점점 높아져 온 게 사실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기층 노동자들이 불만이 커지고 투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약점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6월 30일 분노에 가득 찬 7만 명 집회를 열고는 이틀 뒤 민주노총 위원장이 청와대 면담을 간 것은 상당수 노조 지도자들이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가 잘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 중에는 독일이나 북유럽 노동개혁 모델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덴마크 모델을 추진하면서 정규직에 양보를 강요하기 시작하면 노동운동의 약점은 더 도드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미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대기업들은 임금 동결과 유연 근무 확대 등의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2~3단계도 불만을 계속 낳을 것입니다. 혁명가들은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는 이런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그런 투쟁들이 더욱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노동운동 내 약점을 극복하도록 돕고, 그러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이 투쟁 저 투쟁 쫓아다니기만 하거나, 자기 사업장에서 투쟁이 벌어지면 활기를 띠다가 좀 사그라지면 할 일이 없다고 느끼는 식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업장 안에서 소수이지만 단단한 혁명가들의 정치적 조직을 건설하는 데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 위기 속에서 정치 상황이 빠르게 변할 수 있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제 구실을 하려면 혁명가들이 잘 조직돼 있어야 합니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낙관을 불허한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장에서 트럼프가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경악스런 위협을 쏟아낼 때만 해도 한반도 긴장은 언제 끝날지 모르게 치솟았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우발적 충돌 등으로 사태가 심각한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 점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자신이 인정한 바였습니다.

그러나 올해 상황은 분명 바뀌었습니다. 4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6월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북·미 두 정상이 만났습니다. 한때 서로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비난하던 두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손잡은 것입니다.

친여권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노동자 운동 지도자들도 4월 남·북, 6월 북·미 정상회담들의 합의가 기존의 합의들보다 진일보한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5월 러시아 태생의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는 문재인 정부와 〈한겨레〉·〈경향신문〉 등이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지나치게 과장한다고 지적했습니다.(란코프 자신도 남북 정상회담을 지지하지만 말입니다.) 북·미 대화에 기대를 거는 전문가들 중 일부는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기존의 북·미 합의보다 외려 후퇴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설사 이번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했다고 보더라도 지금의 대화가 당장의 긴장 완화를 넘어 지속적인 평화 구축에 이를 수 있는지는 따로 따져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표면적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근본 동학이 무엇인지 주목해야 합니다. 흔히 북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한반도 불안정의 주된 원인으로 보고, 그래서 이 갈등만 해소되면 평화가 보장되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 주변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핵심에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경쟁이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악화할 듯합니다. 게다가 이 경쟁은 최강대국 미국 자신도 근본적으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북한 ‘위협’을 과장해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동맹 강화, 군사력 배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기존 대북 정책은 한계에 봉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핵무기가 없는 북한을 악의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했지만, 20년 넘는 세월 끝에 북한이 핵무기를 진짜 보유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지난해 트럼프가 오바마의 대북 정책을 폐기한다고 선언한 배경의 하나였습니다.

이제 트럼프는 북한과의 대화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이렇게 태도를 바꾼 데는 국내 정치적 동기(트럼프의 곤란한 처지)도 많이 작용한 듯합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매우 반동적이고 호전적인 제국주의자입니다. 대외정책 면에서 유난히 변덕이 심하기도 합니다. 북미 정상회담 전날, 이란 외무장관이 트럼프를 가리켜 “거래를 깨는 게 습관인 대통령”이라며 북한에 경고한 까닭입니다.

이란 측의 경고는 이란 핵협정 파기의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북핵 문제는 이란 핵문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오래되고 복잡한 난제입니다. 협상, 합의, 이행 모두 이란의 경우보다 더 어려울 공산이 큽니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와 그 협상이 제국주의 경쟁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점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전망은 근본적으로 불투명합니다.

얼마 전 평양에서 열린 북·미 고위급 회담이 합의문 한 장 발표하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북한은 미국 협상단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고집했다고 성토했습니다. 이로써 정상회담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미 양측이 구체적 내용을 놓고 여전히 간극이 크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그 와중에 트럼프 정부는 북한 비핵화 전까지는 대북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못 박았습니다. 대화 중에도 북한은 미국이 만족할 때까지 제재를 참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북·미 양측 모두 당장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는 상황이 북·미 협상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 제국주의적 경쟁은 어느 한 쪽이 항복할 때까지 갈 성격의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미 대화가 고비를 맞을 때마다 트럼프가 북한 배후에 중국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냥 보아넘길 수 없는 대목입니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과 얽히면 북·미 협상의 불확실성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 일각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돌이킬 수 없는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며 정부 당국 간 회담을 지지하고 그것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데 주력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문제적입니다. 자본주의적 경쟁 속에서 항구적 평화 실현은 불가능합니다.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제국주의간 경쟁에서 남한과 북한은 모두 주된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 ‘촉진자’ 구실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한미동맹 약화는 없다고 못 박고 있고,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제재 유지에 동의하는 등 공정한 중재자도 아닙니다.

만약 미국·북한의 협상이 실패한다면, 또는 미국이 패권 유지를 위해 실력 행사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 상황이 온다면 한반도 상황이 다시 악화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 당국 간 협상에 환상을 갖지 않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북·미 협상과 그 제반 쟁점들을 볼 때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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