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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폭력적인 것은 누구인가

고대 학생들이 이건희 박사학위 수여식을 파행에 빠뜨린 것을 두고 정부와 주류 언론은 “폭력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들은 학생들이 셔터를 흔들고, 이건희에게 소리친 것을 가지고 “폭력”이라고 말한다.

늦은 밤 고열에 시달리는 형을 위해 약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동생이 있다 하자. 절실한 마음에 그 동생은 약국 셔터를 흔들고, 계속 소리칠 것이다. 언론의 논리대로라면, 그 동생은 “폭력적”이다.

시위에 참가한 고대 학생들은 무술 유단자도 아니고 무장도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악랄하게 탄압하는 이건희에 반대하는 팻말과 펼침막을 들고 있었을 뿐이다.

반면, 고대 당국은 운동부 학생 수십 명을 동원해 시위 참가자들을 위협했다. 삼성은 무장한 경호원을 앞세워 시위 학생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청와대 경제정책 수석 김영주는 학생들의 반기업 정서를 개탄하며“기업가 정신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야 한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잘난 “기업가 정신”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야 말로 폭력으로 가득 찬 체제다.

석유와 패권을 위해 미국은 이라크에 경제제재를 가해 12년간 이라크인 2백만 명 이상을 죽였다. 하루에 4백 명이 넘는 사람을 죽여 온 셈이다. 미국은 그것도 모자라 지난 2년간 전쟁으로만 10만 명을 학살했다.

매년 전 세계에서 3백만 명이 에이즈로 죽어간다. 이것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이윤을 위해 싼값에 에이즈약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산업재해로 1년에 3천 명, 하루에 8명이 사망한다. 기업들이 조금만이라도 안전에 돈을 썼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죽음이다. 죽음의 공장을 만든 것은 바로 삼성을 비롯한 자본주의 기업들이다.

자본주의는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음과 절망으로 내몬다. 이 체제야말로 폭력의 극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노조탄압 분야에서 노벨상은 족히 받을 이건희는 한국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다. 그에게 “명예”를 선사하는 것은 사람들을 더 깊은 절망으로 빠뜨리라는 광기어린 응원이나 마찬가지다.

아픈 형을 위해 약을 구하러 밤을 헤매는 동생의 마음씨가 아름답듯 민중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이건희에 저항한 고대 학생들의 행동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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