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학노조(UCU) 전국집행위원이자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오랜 활동가,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책갈피)의 저자인 로라 마일스(사진)가 7월 19~22일 방한해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8’에서 연설했다. 이 글은 7월 22일에 로라 마일스가 한, 같은 제목의 강연을 녹취한 것이다. 로라 마일스는 성차별·성폭력을 더는 감내하지 않겠다며 나선 여성들의 세계적 미투 운동 등을 흠뻑 반기는 동시에, 그것이 진정한 변화로 이어지려면 자본주의 하 여성차별의 뿌리를 겨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부가 덧붙인 것이다.

ⓒ조승진

최근 몇 달 사이 성추행과 성폭력의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화두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성폭력에 맞선 투쟁, 여성들의 항의 시위가 매번 그 규모를 키워가면서 최근에 6만 명에 이르렀다고 들었습니다. 이 운동은 정부가 좀 더 진지하게 몰카 촬영 단속에 나서고 적절한 제도를 마련하라고 요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영국에도 몰카 촬영 문제가 심각한데요, ‘업스커팅’이라고 불립니다. 업스커팅이란 남성들이 휴대폰으로 여성들의 치마 밑을 촬영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런 남성들은 콘서트장이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등의 공간에서 여성의 치마 밑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한 다음에 자기 소셜 미디어에 공유합니다.

현재로서는 이런 행위를 제재할 법이 없습니다. 3주 전에 의회에서 업스커팅 단속 법률을 통과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보수당 의원이 반대하는 바람에 좌절됐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대중적 분노가 크게 일었습니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분노가 컸죠.

연인원 17만여 명이 참가한 불법촬영(몰카) 항의 운동 ⓒ이미진

이렇듯 지난 몇 달 사이, 어쩌면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사상 처음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때로는 남성들도 여성들이 겪는 성추행과 성폭력, 강간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도 크게 일어난 미투 캠페인에 대해 사회자가 말해 줬는데요. 이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분노는 상당 기간 부글부글 끓어 왔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자신의 성추행 전력을 자랑스레 떠벌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한 바로 그날 국제적인 시위 물결이 일었죠.

제가 사는 곳인 영국 리즈에서도 SWP 당원들이 주도해 시내 한복판에서 [트럼프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시위를 페이스북에 홍보했더니 사람들이 동참하고 싶다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을 매우 낙관하며 “잘하면 200~300명까지도 올 수 있겠는데” 하고 기대했죠. 당일이 되니까 여성 2000명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기운을 받아서 “한번 더 해 보자” 하고 2주 뒤에 또 다른 시위를 기획했습니다. 그러자 여성들과 남성도 일부 가세해 2000명이 또 모였습니다.

이런 걸 보면 여성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 중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성차별과 성폭력에 맞서서 직접 행동을 벌일 태세가 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지난 금요일 런던에서 25만 명이 트럼프에 맞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날 시위 사진들을 보면 많은 여성들이 그 시위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 추행은 계속해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올해 7월 13일, 25만 명이 트럼프의 영국 방문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다 ⓒ출처 <소셜리스트 워커>

며칠 전 보수당 소속인 정부 주요 인사가 자기 지역구 사람들한테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지난해에만 보수당 소속 부총리와 국방장관이 각각 [성추문에 연루돼] 물러나야 했고, 그 밖에 여러 보수당 정치인들이 성추행 또는 성폭력 혐의로 조사받고 있습니다. 이런 혐의 선상에 올라 있는 의원 수는 38명입니다. 보수당뿐 아니라 노동당 의원들도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노동당 당원 한 명이 어느 노동당 행사에서 노동당 의원한테 강간을 당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는데 그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폭로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단지 의회에 국한된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는 학생들 또는 젊은 교직원, 강사들이 다른 학생들 또는 대학 간부들의 성추행과 폭력에 노출돼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미투 운동은 그동안 켜켜이 쌓여 썩어 문드러져 가던 성차별과 성폭력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입니다.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는 이처럼 언론에 공론화되는 것 이상으로 훨씬 광범하고 모든 일터,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삶에 영향을 끼칩니다.

미투 운동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와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미투 운동으로 사회가 극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진심으로 그리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미투 운동의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본주의 하 여성 차별과 억압의 뿌리를 건드리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영국에서는 미투 운동에 대한 모종의 백래시[역풍]가 일어났습니다.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미투 운동은 남성들에 대한 마녀사냥 아니냐’는 얘기가 많습니다. 모든 여성들이 미투 캠페인을 지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영국에서 한 유명 여성 앵커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 때는 다 그냥 참고 살았다. 왜 갑자기들 난리냐?” 어느 남성 칼럼니스트는 이렇게도 썼습니다. “결국 남성들이 매너를 제대로 갖추면 될 일이다.” 영국 보수 언론들은 이런 현상을 이용해 좌파를 공격하려 합니다. ‘미투 열풍은 “정치적 올바름”이 너무 막 나가서 광기에 이른 거다’, ‘이건 지난 십 년 사이에 일어난 새로운 현상이다’, ‘여성들이 너무 예민해져서 조그만 것에도 난리를 친다’ 하면서 말이죠. 또는 ‘이렇게 되면 남성들은 도대체 여성들에게 어떻게 관심을 표현하고 데이트 신청을 하란 말이냐’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이렇게도 말합니다. ‘모든 남성이 성추행 혐의라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들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수많은 여성들이 성추행과 폭력, 학대를 더는 참지 않고 들고 일어선 것을 매우 환영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성차별과 혐오에 맞서 행동으로 항의를 표출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을 우리는 온 마음으로 반깁니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슬럿워크 운동을 떠올려 보십시오. 당시 캐나다의 정부 인사가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는 여성들은 아마 슬럿일 것이다” 하고 말했는데 ‘슬럿’은 성매매 여성을 비하해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이에 맞서서 항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인도에서 학생이었던 23세 여성 조티 싱이 버스 안에서 집단 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한 사건 때문에 거대한 항의 행동이 일어났던 것도 기억하실 겁니다.

바로 몇 주 전 아일랜드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 행동을 통해서 낙태 금지 헌법을 폐지시켜 통쾌한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폴란드에서 이미 아주 미약한 낙태권을 더 개악하려는 정부에 맞서 낙태권 방어를 위한 ‘여성 파업’도 있습니다.

올해 국민투표에서 낙태 금지법 폐지를 이끌어 낸 아일랜드 낙태권 운동 ⓒ출처 Paula Geraghty

이런 대중 운동들이 밝히 드러낸 것은, 바로 여성들에게 비록 형식적 평등권이 있고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거나 유급 노동을 하게 됐을지라도, 그들이 가정이나 일터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은 그런 형식적인 평등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피해를 신고하려다 압력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여성들은 여러 직종에서 최고위층으로 올라가는 데 수많은 제약을 겪습니다. 아직도 가사노동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고 보육 노동이나 돌봄 노동도 대부분 여성이 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평균 소득이 여전히 남성보다 14퍼센트 낮습니다. 현재 속도대로라면 이 성별 임금 격차를 메우는 데 100년 넘게 걸릴 것입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긴축 정책에 따른 피해 중 75퍼센트가 여성에게 가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기댈 곳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긴축 정책 때문에 여성 쉼터 등에 대한 지원이 끊기고 있기 때문이죠. 모성 보호 프로그램이나 사회복지서비스도 대폭 삭감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이 겪는 차별과 억압, 여성 혐오 등이 단지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다거나 교육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고치면 해결될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또한 사회주의자들은 가부장제 이론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가부장제 이론은 여성 차별과 혐오의 원인은 남성들이 다 잠재적으로 성차별주의자이고 강간범들이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우리는 그런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 모종의 성별 카스트/계급 제도로 현실을 설명하면서 남성들을 지배 카스트/계급으로 보는 관점이나, 여성 차별로 모든 남성들이 이득을 얻는다는 관점도 수용하지 않습니다.

여성 차별의 원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 차별에 대한 이런 본질주의적인 설명을 거부합니다. 그 대신 여성 차별과 억압은 계급 사회, 특히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여성이 처한 물질적 현실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인 출산 능력이 그런 물질적이고 역사적인 조건들과 결합됐다고 봅니다.

여성 차별의 가장 즉각적인 결과를 보자면,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는 것이 당연히 사장들에게 이득이 됩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여성 차별 문제는 무엇보다 사회를 재생산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즉, 이 사회가 어떻게 다음 세대의 노동력을 길러내고 그래서 착취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해 여성의 성을 단속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바로 ‘여성은 본래부터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관념들로, 당연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생각을 거부합니다. 또한 핵가족 제도와 ‘가족 가치’ 이데올로기도 이와 맞닿아 있고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계속 재생산하는 구실을 합니다. 예컨대, 남성이 가장이어야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꼭 일독하기를 권합니다. 이 책에서 엥겔스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합니다. 어떻게 모계제 사회에서 부계제 사회로의 전환이 일어났는지 말이죠. 우리가 지금까지 확보한 모든 증거들을 보면, 여성 차별은 결코 인류 사회에서 보편적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즉, 여성 차별이 모든 사회, 모든 시대에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현생 인류로서 존재해 온 기간 대부분 동안 인간은 이른바 수렵 채집 사회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런 수렵 채집 사회에서도 성별 분업은 존재했지만 (가령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건 여성밖에 없죠) 그런 분업이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오늘날로 돌아와서 제가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주의자들은 여성들이 겪는 이런 성차별적인 폭력과 천대에 맞서서 페미니스트들이 느끼는 분노를 전적으로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싸울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물론 여성 차별과 그 기원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문제는 남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이지 않은 설명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그런 설명들은 대부분 이런저런 형태의 정체성 정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정체성 정치는 이 사회의 핵심적 분단선이 (계급이 아니라) 개개인들이 속하는 피억압 집단을 따라 그어져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교차성 이론이나 특권 이론처럼 계급의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폄하하고 남성을 모종의 성별 지배계급이라고 보는 이론들은 문제의 근원을 파고 들지 못합니다.

한 집단으로서 남성 전체가 여성 차별로 이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 억압의 수혜자는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여성이 억압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성이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남성들이 성별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은 결코 특권이 아닙니다. 차별받지 않는 상태는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과 남성은 차별에 맞서 싸울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몇몇 권리 신장을 넘어 여성 해방에까지 도달할 유일한 길은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즉 혁명이 필요합니다. 여성 차별에 맞선 저항은 자본주의 안에서도 가능하지만 궁극적인 여성 해방은 자본주의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희의 입장입니다.

마르크스주의적 전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최근 몇 년만이 아니라 여성 차별에 맞서 싸운 유구한 전통이 있습니다. 《여성 해방과 마르크스주의》의 저자 주디스 오어는, 마르크스주의 운동이 여성 차별을 분석하고 여성 차별에 맞서 싸워 온 오랜 전통이 있음에도 종종 간과된다고 지적합니다. 100년 이상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도 당시 사회주의 운동의 주요 인물들은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고 여성 해방을 위한 투쟁을 벌였습니다.

19세기 말 독일 사회민주당의 주요 인물이었던 아우구스트 베벨은 여성 차별을 다룬 중요한 책을 썼습니다.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독일 의회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주장했습니다. 다른 많은 사회주의자들도 여성 차별에 대해 글을 쓰고 여성들의 권리 쟁취를 위해서 여성들을 조직했습니다. 독일 혁명가 클라라 체트킨,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당원이었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도 그런 경우죠.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결과로 볼셰비키가 실제 이뤄낸 변화를 보면 혁명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혼의 자유가 법제화됐고, 낙태가 합법화됐고, 동거가 허용됐고, 동성애가 비범죄화됐고, 가사와 양육의 사회화를 향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촉발한 1917년 러시아 혁명. 급진적 여성 해발 조처들이 10월 혁명 직후 도입됐다

세계 여성 노동자의 날을 제정해야 한다고 맨 처음 제안한 것도 바로 클라라 체트킨이 이끄는 여성 사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세대 페미니스트는 물론, 나이 든 페미니스트들도 세계 여성의 날의 역사적 뿌리가 이처럼 사회주의 운동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원래 여성 투표권 운동을 전진시키고자 제안된 것이지만, 투표권 외에도 모든 “여성 문제”, 즉 여성 차별 일반에 도전했습니다. 날짜를 3월 8일로 택한 것도, 바로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여성 직물 노동자들이 투표권과 임금 인상,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한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남성과 여성, 그 외 성을 가진 사람들의 진정한 평등을 원한다면, 또 여성의 권리 증진만이 아니라 여성 해방을 원한다면, 착취 없는 세상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또한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배와 착취를 공고히 하고 우리 노동을 착취하려고 퍼뜨리는 온갖 차별 사상에도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현재 자행되는 차별에 맞설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진정으로 바꿔낼 수 있는 단체, 즉 마르크스주의 원칙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적이고 혁명적인 사회주의 단체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발언

한 청중 발언자가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서서 작업장에서 저항을 조직한 사례를 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강연 주제와 반드시 직결되는 것이 아니지만 여성에 대한 성폭력·성차별과 트랜스젠더 차별 문제는 긴밀히 연관된 문제이기는 합니다.

여성의 성생활을 통제하려는 시도와 성별 규범을 위반하는 행동을 단속하려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몇 천 년 전에 쓰여진 구약 성서를 읽어 보면, 혼외 성관계를 금지하는 규범이 등장하던 무렵, ‘남녀가 상대 성의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남성이 머리를 길게 길러서는 안 된다’는 등의 규범도 등장합니다. 당시에 이런 행위가 흔했기 때문에 성경에서 그런 행위를 콕 집어 금지하려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 등장하고 있던 계급사회는 이런 행동들을 매우 가혹하게 처벌했고 심지어 사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작업장에서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선 투쟁을 어떻게 건설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트랜스젠더 투쟁에 사람들이 연대한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부족하게나마 답해 보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 예로, 어느 대학에서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트랜스 여성이 여성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트랜스 여성의 출입을 금지한] 특정 화장실에 대한 보이콧 행동을 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런 식의 직접행동 전술은, 그것이 가능한 경우에는 언제나 최선의 방법이라 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는데,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이 ‘트랜스젠더 권리 행동의 날’ 같은 운동들을 후원하고 지지를 선언하게끔 만드는 일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청중 발언자가 문재인 정부가 몰카 항의 시위에 대해 [실질적 개선책은 내놓지 않은 채] 립서비스만 제공했다고 폭로해 주셨습니다. 또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는 여성들이 법정에서,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어떤 수모를 겪는지도 얘기해 주셨습니다. 한국 상황은 모르지만, 영국에서는 강간 사건이 법정에서 유죄로 인정되는 비율이 6퍼센트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흔히 여성의 사생활이 법정에서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곤 하죠.

남성이 여성 차별에서 득을 보는가?

남성이 여성 차별에서 득을 보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청중 토론에서 대답을 해 주신 분들이 있지만 저도 덧붙이겠습니다. 임금을 예로 들어, 여성이 임금을 적게 받는다고 해서 가족 성원 남성의 임금이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족 전체의 수입은 줄어듭니다. 또한 개별 남성이 더 높은 소득을 받거나 여성에게 폭력을 휘둘러 모종의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모든 남성이 [여성 차별이나 성폭력으로] 이득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사실은 자본주의 체제가 남녀 간의 분열을 조장하면서 이득을 얻는 것입니다.

영국의 북아일랜드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오랫동안 북아일랜드에서는 개신교 노동자들이 가톨릭 노동자들과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상당히 더 높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노동계급 전체를 놓고 보면, 북아일랜드 노동자 전체는 이로부터 결코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영국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과 비교해 보면,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노동자들의 임금이 더 낮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북아일랜드의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분열시켜서 노동자들이 더 나은 임금과 조건을 위해 단결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상황을 전체적으로 봐야지 특정한 측면, 협소한 지점만을 봐선 안 됩니다.

또 어떤 발언자가 ‘대중 투쟁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이다’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즉, 대중 투쟁에 비하면 일상적 교육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지 못한다는 뜻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려고 일상적으로 논쟁을 벌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그 동지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권제 혹은 모계제 그리고 가부장제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발언해 주신 것에도 감사합니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당대의 인류학자였던 헨리 모건의 자료를 토대로 썼는데요. 훗날 많은 사람들이 ‘헨리 모건의 연구는 너무 낡았고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러므로 엥겔스의 책도 좀 잘못된 거다’ 하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발언자가 지적했듯이, 더 근래의 인류학적 증거들은 모건의 주장과 그로부터 당시 엥겔스가 이끌어 낸 결론들이 오히려 상당 부분 옳았음을 뒷받침해 줍니다. 이런 최신 증거들은 생산력의 발전, 즉 도구나 기술의 발전은 생산을 관장하는 체계를 변화시킨다는 [엥겔스의] 주장도 뒷받침합니다. 예컨대 쟁기가 발명되자 생산력과 생산수단이 변했고 그 결과 밭에서 일하는 데서 여성들이 더 불리해졌습니다. 가축을 사용하게 된 것도 우리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과 생산 가능한 것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편, 가부장제 이론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그 이론이 특정한 정치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등장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가부장제 이론이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여성 운동 진영 내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시기를 기억합니다.

당시는 앞서 1960~1970년대에 폭발적으로 분출했던 반란의 기운이 퇴조하던 시기였습니다. 흑인 해방운동, 동성애자 해방운동 그리고 여성 운동도 패퇴하던 시기였고 바로 이 때 가부장제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시대적 분위기 탓에 차별과 억압을 계급에 기초해 설명하는 것보다 정체성을 기초로 설명하는 것이 더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로 여성 차별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뒷걸음질치던 당시 흐름의 일부로서 가부장제 이론이 부상했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끝맺자면, 거듭 강조하건대 우리의 전통은 계급사회에서 여성 차별이 부상한 것을 이론적으로 아주 탁월하게 설명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은 시간의 검증을 견뎌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우리의 실천을 안내할 소중한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국제사회주의 전통이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지난 몇십 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구실과 그 동안의 성취에 대해 긍지를 느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성폭력, 여성 혐오,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자본주의 안에서는 최종적이고 결정적으로 없앨 수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회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현실에서 차별에 맞서는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계신 동지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중심에 서고 싶다면, 우리가 매일 목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흉악함에 맞서는 투쟁에 일부가 되고 싶다면 노동자연대에 가입하는 것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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