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폭력’의 대표 사례이자, ‘미투 1호 재판’으로 주목받았던 안희정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서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조병구 판사)는 안희정에게 제기된 10건의 성폭력 혐의(위력에 의한 간음 4건, 강제추행 5건, 위력에 의한 추행 1건)가 모두 “무죄”라고 판결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제대로 인정받고 성폭력 피해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길 바랐던 수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이 판결에 실망감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이나 “성적 자기결정권”, 심지어 “2차피해” 등 ‘젠더 용어’를 사용했지만, 판결은 딴판이었다.

이미 수개월 간의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비방과 험담이 횡행했다. 안희정 측 변호인단은 안희정의 측근들과 부인을 동원해 사건 관련성이 별로 없는 일까지 들먹이며 피해자를 ‘안희정을 유혹해 위험에 빠뜨린 여자’, ‘불륜녀’로 몰아갔다.

이런 중상모략은 친기업인 언론들에 의해 선정적으로 퍼져나갔다. 안희정이 가진 권력이 이런 일들을 용이하게 했을 것이다. 재판부는 이 과정을 공개 재판으로 진행해 뻔히 비방과 험담을 방치했다. 특히, 애초에 피고인의 증거 인멸·조작 가능성이 높았지만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110여 쪽에 이르는 “안희정 무죄” 판결문은 안희정에게는 매우 너그러운 반면, 피해자에게는 까다롭고 엄격한 입증 책임을 지워 몹시 편파적이었다. 재판부가 ‘제2의 안희정 변호인’이나 다름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까닭이다.

협소한 ‘위력’ 해석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안희정이 자신의 수행비서인 피해자를 간음할 때 위력이 작용했느냐 하는 점이었다.

안희정은 사건 당시 충남도지사이자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인 권력자이자, 피해자를 언제든 해고하거나 피해자에게 각종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사용자였다. 게다가 피해자는 안희정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비서였다. 안희정은 ‘모두가 나에게 노(no)라고 할 때 너는 예스(yes)를 해야 한다’는 수칙을 수시로 주지시킬 정도로 둘의 관계는 위계적이었다.

그래서 재판부도 둘 사이의 위계 관계가 성립한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위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각각의 성관계가 이뤄졌던 바로 그때 그 장소에서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위력을 행사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일반으로 말해, 위계 관계에 있는 유력 정치인과 비서 사이에도 자유의사에 따른 합의적 성관계나 연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성관계에서 위력이 작용했는지를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위력을 단지 성관계 당시의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위협이나 물리력 행사 여부로만 국한해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럴 거라면 강간죄와 별도로 위력에 의한 간음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이는 여성 피고용인들이 처한 실제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판결이다.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것은 위력을 행사할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계와 직업 전망, 평판 등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사용자나 상급자가 가할 불이익이 두려워, 거절하고 싶은 성적 제안을 적극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계에서는 굳이 그 자리에서 직접적인 말과 행동으로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하지 않아도, 평소 위계관계를 의식해 성적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안희정 같은 막강한 정치 권력자가 상대라면, 앞으로 자기에게 어떤 보복이 뒤따를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영영 얻지 못하진 않을지 등 두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처럼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성인 여성은 모두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고, 위력에 의한 간음을 당할 리 없는 양 단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바로 그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성인 여성들이 여성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 특히 계급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간단하게 무시했다. 사용자나 상사에 의한 직장 내 성희롱이 빈번하게 벌어지는데도, 그중 폭로되거나 처벌받는 것은 매우 적은 게 현실이다. 

간과된 여성의 “노”

합의적 성관계였다는 안희정 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반면,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성 있음이 인정됐지만 신빙성이 없다며 채택되지 않았다. 진술과 진술 밖 정황이 불일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판부의 논리라면 좋아서 시작됐지만 그 관계가 악화되면서 발생한 부부 강간이나 데이트 폭력은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판결문에서도 인정된 사실은 피해자가 안희정의 성적 제안에 매번 소극적이나마 수차례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이다. 안희정이 “안아 주게”라고 요구할 때도 피해자는 즉각 응하지 않고 머뭇거렸고, 안희정이 강하게 껴안으며 성관계로 나아가려 할 때 고개를 숙인 채 가로저으며 ‘아니에요’라고 수차례 말했다.

이 점만 봐도 서로 좋아서 한 자연스럽고 합의적인 애정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피해자의 “노(no)”가 묵살된 일방적 행위라고 봐야 한다.

게다가 안희정은 물리력을 행사했다. 몇 차례에 걸쳐 머뭇거리는 피해자를 강하게 껴안아 침대로 데려가고, 피해자의 어깨를 꽉 눌러 못 움직이게 한 적도 있다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판결문에서도 인정됐다. 반대로, 이런 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반박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재판부는 ‘어깨를 꽉 눌렀다지만 멍이 들었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는 각주를 달아 피해자의 진술을 중화시켰다. 멍들 정도로 맞아야만 폭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건가?

피해자의 거부 의사, 가해자의 물리력 행사가 있었음을 인정하고도 재판부는 당시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의 위력적 분위기나 물리력 행사는 없었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가해자의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가를 성폭력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여성의 동의 여부를 점점 더 중시하고 있는 최근의 판결 추세와 비교해 봐도 완전히 퇴행적이다. 

이중 잣대

재판부는 피해자에게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입증을 요구한 반면, 안희정에게는 이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재판부는 안희정의 진술 번복을 묻지 않았다. 안희정은 피해자의 폭로 직후 “합의에 의한 관계라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고 밝혔다가 그 뒤 말을 바꿨다. 재판부는 마땅히 이 결정적 진술 번복을 자세히 추궁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긴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이 점을 단 한 줄도 다루지 않았다.

또한 재판부도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올해 2월 안희정이 피해자를 불러 간음하기 전, “요즘 미투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데, 내가 너한테 상처가 된 걸 알았다. 미안하다. 괜찮니?” 하고 말했다. 상호 합의한 성관계를 해 온 사이에 할 말은 아니다. 오히려 켕기는 게 있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미투 폭로를 할까 봐 떠보고 단속하려는 장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점도 간과했다.

재판부는 주로 성관계 전후 간접적 정황 증거를 들어 ‘피해자답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성관계 자체가 합의에 의한 것임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다. 가령, 피해자가 성관계 직후에도 외견상 동요 없이 안희정이 좋아하는 음식 식당 등을 예약하고 대화를 잘 나눴다는 등의 사실만으로는 성폭력이 없었다고 증명할 수 없다.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불이익을 감수하려는 각오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애써 피해 사실을 티내지 않으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답지 않은’ 증거라기에는 관련성이 너무 없어 억지스러운 것도 있다. 가령, 피해자가 러시아에서 피해를 당하고 귀국한 뒤, 가해자의 머리를 손질했던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게 왜 의심스러운 행동인지 도통 납득할 수 없다. 가해자와 함께 간 것도 아니고, 미용사 자신이 가해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반대로, 피해자가 피해 직후 가까운 지인에게 여러 번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며 ‘힘들다’고 말한 것은 피해자에게 유리한 증거로 보인다.  

여성의 “노”는 “노”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이번 판결은 보통의 여성들의 처지에서 볼 때 반동적이다.

안희정에게 막강한 권력이 없었어도 판결의 저울이 이토록 한쪽으로 기울었을까? 재판장의 정치적 성향도 판결 내용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조병구는 박근혜 정부와의 ‘재판 거래’로 악명 높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공보관을 지냈고, 전교조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는 보수 우익 성향의 판사로 알려져 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의 부족함을 현행법의 미비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현행 법체계와 최근 판례 추세에 비춰 봐도 이번 판결의 편파성과 보수성이 두드러져, 변명으로 들린다.

물론 성폭력처벌법이 피해자의 권리를 확고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성 차별 반대 운동이 그동안 요구해 왔듯이, ‘No Means No Rule’(여성이 부동의 의사를 표명했는데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에는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법)이 확립돼야 한다. 현행법상 강간죄는 “폭행과 협박”이 있었음이 입증돼야 하고, 그것도 여성의 저항이 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으로 인정받는 최협의설이 통용되고 있다.

이런 성차별적인 규정은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여성의 “노”는 “노”다. 성폭력 판단의 기준은 저항의 수준이나 가해자의 의도, 사건과 무관한 여성의 ‘행실’이 아니라 여성의 성관계 동의 여부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