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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비정규직 휴게실·작업공간의 끔찍한 실태:
“우리를 사람으로 보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최근 이화여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휴게실 실태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휴게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도저히 ‘쉴 곳’이 못 되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이 매연 가득한 지하 주차장 구석에 박혀 있다는 사실이 본지 보도를 통해 폭로됐고, 노동자들은 이 보도를 활용해 학교 당국을 압박해 쾌적한 휴게실을 얻어 냈다.이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던 이화여대의 다른 노동자들 사이에서 휴게실·작업 공간 개선 열망이 커졌다.

매연을 종일 마시는 주차 노동자들

ECC 청소 노동자들의 옛 휴게실 바로 옆에 위치한 주차관리소에서 일하는 주차 노동자들의 불만이 특히 높다. 이 노동자들은 지하 주차장에서 일하느라 아침 7시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매연을 들이마셔야 한다. 휴게실은 아예 없다.

“공기가 안 좋으니까 여기 사람들은 감기 걸리면 두 달씩 앓아요.” 한 여성 주차 노동자의 말이다. 실제로 주차관리소 벽과 문 곳곳에 시꺼먼 매연이 뭉쳐 있다. 공기청정기가 3대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주차관리소 문틈에 뭉쳐 있는 매연 찌꺼기들. 공기청정기가 소용이 없는 지경이다 ⓒ제공 서경지부 이대분회

학기 중에는 주차권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주차관리소의 문을 항상 열어 놓다시피 해야 한다. 바쁜 날에는 매연 가득한 주차관리소에서 점심도 먹어야 한다.

학교 측은 이런 현실을 개선해 달라는 요청에 ‘주차관리소가 지하에 있는 것이 접근성이 좋다’며 노동자들을 배려하기라도 하는 듯 둘러댔다. 그러나 2010년까지는 주차관리소가 지상에 있었고, 노동자들은 아무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 위치로 관리소를 옮긴 뒤로, 정산하러 온 차들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려 하는 차들을 막아 주차장도 더 혼잡해졌다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북부지원이 6월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지하 주차장의 미세먼지 농도는 지상의 미세먼지가 최악일 때보다 3~4배 높다. 지하 주차장에는 미세먼지뿐 아니라 배기가스를 비롯한 온갖 발암 물질이 그득하다.

비싼 주차료로 쏠쏠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학교 당국은 주차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난방 기구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

에어컨 대신 ‘금성’ 선풍기

학관(인문대)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 실태도 기가 막힌다. 완공된 지 50년이 넘은 학관은 학교 당국의 종합진단 결과 E등급(“재난 발생 위험이 높은 시설”)을 받은 건물로, 단열이 잘 안 된다.

학관 꼭대기 6층에 있는 휴게실 ⓒ양효영

학관 꼭대기 6층에 있는 휴게실은 창고 같은 공간에 평상 하나가 다인 곳으로 노동자 2명이 이용 중이다. 지붕 바로 아래 위치한 데다가 창문에는 커튼도 없어 문을 여는 순간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 에어컨이 없다!

청소 노동자들은 낡아빠진 ‘금성’(LG의 20여 년 전 이름) 선풍기로 몇 년을 버티고 있다. 이곳 청소 노동자들은 올해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옆 건물에 가서 쉬어야 했다.

미술 전공 학생들의 건물인 조형예술대학의 청소 노동자 휴게실은 특히나 습하고 후끈한 곳에 있다. 햇볕이 뜨거운데도 휴게실 앞엔 이끼가 축축하게 끼어 있다.

문 바로 앞에 있는 하수도 ⓒ양효영
청소 노동자 4명이 3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를 다시 남자 방 여자 방으로 쪼개서 쓰고 있다. 남자 방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넓이다. 끔찍하게도, 이 휴게실에도 에어컨이 없다.

이 건물에서 12년간 일한 한 노동자는 입사할 때부터 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쉬었다’고 했다. 오래된 데다가 습기와 열기에 취약한 가건물이다 보니, 벽이 허물어지고 악취가 나고 바퀴벌레가 산다.

“하수도가 앞에 있어서 문도 못 열어요. 하수도에 모기와 파리가 엄청나요.”

휴게실은 미술 작업에 필요한 석고와 목재와 쇠를 가는 곳 바로 옆에 있다.

“석고 갈고, 나무 갈고, 쇠 갈고 그러면 어느 때는 여기 하늘이 뿌옇게 돼요. 그게 제일 죽겠어요. 아무리 방진 마스크를 써도 당해낼 수가 없더라고요. 먼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고령의 노동자들이 7~8년 동안 석고 가루와 쇳가루를 하루 종일 마시다 보니 다들 기관지가 성치 않다.

“어떤 분은 아파서 나가고, 폐병 걸릴 것 같다고 다른 데로 가신 분도 있어요.”

휴게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달라는 노동자들의 요청은 번번이 묵살당했다.

“바닥재가 다 찢어졌는데도 안 바꿔 줘서 학생이 버린 거[장판] 주워다가 깔았어.”

너무 낡아서 부서진 벽을 얼기설기 보수한 모습 ⓒ양효영

게다가 매점 등 다른 공간 에어컨의 실외기가 휴게실 주변에 설치돼 있어 한층 열기를 더하고 있다.

“[실외기가] 매점에 있으면 시끄럽고 미관상 안 좋다고 우리 쪽으로 뺀 거예요. 우리는 사람도 아니니까 여기다 뒀나 봐. 사람으로 생각했으면 이렇게 했을까.”

리어카로 실외기 앞을 막은 모습 ⓒ양효영

노동자들이 실외기 열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자 학교 측은 리어카로 실외기 앞을 막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말이지 사람으로 안 보는 듯하다.

소모품 취급

이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다른 건물 휴게실들도 에어컨이 없는 곳이 많고, 난방이나 환기가 안 되는 건 물론이고, 비좁아서 여럿이서는 쉬기 힘든 지경이다. 노동자들의 요구에도 이런 현실은 수년간 달라지지 않았고, 학교 당국은 책임을 계속 회피해 왔다. 그러는 동안 이화여대 당국은 적립금을 수천억 원이나 쌓았다. 고령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주차 노동자들의 건강을 뒷전으로 한 채 말이다.

최근 학교 당국은 이화여대 동문의 대법관 취임을 두고 ‘여성 교육의 산실’, ‘여성 파워’ 운운하며 학교 정문에 현수막까지 걸었다. 그러나 정작 그 이화여대의 여성 노동자들은 고통스러운 노동 환경에 내몰려 있다. 과연 학교 당국이 ‘여성 인권’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열악한 휴게실 문제는 이화여대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적립금 축적에 혈안이 된 다른 학교들도 노동자 휴게실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는다. 결국 학교가 돈벌이를 위해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소모품 취급하는 우선순위가 문제다.

민주노총 서울지부 이화여대분회는 앞으로 휴게실과 작업 공간의 열악한 실태를 널리 알리고 싸워 나갈 계획이다.

이화여대 당국은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휴게실을 즉각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