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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개정증보판 낙태 수술 처벌 강화 의료법 시행규칙 공포:
여성의 등에 비수 꽂는 문재인 정부

ⓒ이미진

보건복지부가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해 의료진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8월 17일부터 시행한다고 당일 공포했다. 이에 따르면, “형법 270조를 위반하여 낙태”를 도운 의료인은 1개월 자격정지 처벌을 받게 된다.

기존 안은 의료인이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하면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도록 돼 있는데, 이번 개정안은 자격 정지 처분 기준을 세분화하면서 불법 낙태 수술을 한 의료진 자격정지 1개월을 명시했다. 과거에는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야 자격정지가 이뤄졌는데 행정처분규칙 개정으로 법원 판결 없이 복지부가 산부인과 의사들에 대해 자격정지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가 ‘원조’였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수술을 포함하고 의사 자격정지 조항을 12개월로 높이려다가 거센 비판이 일었다. 박근혜 정부의 낙태 처벌 강화 시도는 한국판 ‘검은 시위’ 등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의 여파로 낙태 수술 의료진 처벌 강화 시도는 무산됐다.

이번 개정안 시행으로 문재인 정부는 스리슬쩍 낙태 처벌 강화 방침을 되살렸다. 기만적이게도, 보건복지부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심리 과정에서 ‘의견 없음’ 입장을 내고는 이번 개정안 시행을 기습 발표했다. 〈경향신문〉 등 언론들에서도 23일에야 이 사실이 보도됐다.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와 낙태권 보장을 요구해 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23만여 명이 낙태죄 폐지와 임신중절유도약(미프진) 도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동참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회피하며 헌법재판소로 공을 떠넘겼다. 헌법재판소마저 올해 눈치를 보다가 낙태죄 위헌 심판 여부 선고를 차기 재판부로 떠넘겼다.

이번 개정안 시행은 문재인 정부가 낙태죄 폐지 문제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낙태죄 유지로 입장을 분명히 정했음을 드러낸다. 이것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규제 완화, 국민연금 개악 시도, 노동 개악 등 빠르게 우경화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낙태를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하며 의료진을 처벌하는 것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성평등 실현’인가? 분통이 터진다.

우경화

보건복지부는 이번 의료법 시행 규칙 개정안을 “국민 건강 위해 최소화” 조처라 했다. 그러나 낙태를 도운 의료진 처벌을 명시하거나 강화하면 오히려 여성들의 안전과 건강이 위협받는다.

이미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보건복지부의 고시가 철회될 때까지 “낙태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개정안 시행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이로 인한 위험과 부담은 고스란히 여성들에게 전가되어 낙태하려는 여성들을 더욱 옥죌 것이다.

낙태는 ‘비도덕적 행위’나 범죄가 아니다. 여성의 기본권이고 자기결정권이다.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지, 출산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이 감당해야 하므로 오롯이 여성만이 낙태를 선택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시행 규칙 개정안이 나오자 많은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 특히, 2016년부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집회를 꾸준히 벌여 온 비웨이브는 어제 밤 “여성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행정부와 그 수장인 대통령을 강력히 규탄”하며 내일(25일) 3시 종각역에서 열리는 집회 참가를 적극 호소하고 있다.

이 집회는 문재인 정부의 배신적인 이번 개정안에 항의하는 첫 시위가 될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여성 차별적일 뿐 아니라 계급 차별적이다. 낙태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들이 늘어나 가뜩이나 비싼 낙태 비용이 더 솟구칠 수 있다. 부자 여성들은 자신의 재력으로 언제든지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지만, 가난한 청소년과 청년 등 노동계급 여성들은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낙태로 내몰려 고통이 가중된다.

낙태 금지가 이처럼 계급 차별적이기에 여성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남성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여성뿐 아니라 많은 남성들도 낙태 합법화와 여성의 선택권을 충분히 지지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낙태권 운동은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이 함께 참가한 대중운동이었다. 노동계급이 대거 동참한 낙태권 운동은 낙태 합법화의 동력이었을 뿐 아니라 합법화 뒤 거듭 일어난 낙태 제한 시도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지키고 확대하는 데서 결정적이었다.

따라서 ‘생물학적 여성’뿐 아니라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집회 참가를 개방한다면 낙태권 운동이 낙태 합법화를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