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은 부하린(사진, 1888~1938)이 쓴 《세계경제와 제국주의》의 서문에서 이 책이 다루는 주제(제국주의)가 중요하고 시의적절하다고 강조했다. 부하린이 《세계경제와 제국주의》를 쓴 시기는 바로 제1차세계대전이 벌어져 인류가 참화를 당하던 때였다.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내려면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니콜라이 부하린 지음, 최미선 옮김, 책갈피, 260쪽, 13,000원

오늘날에도 이 책은 여전히 시의적절하다.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벌이는 무역전쟁을 비롯한 제국주의 간 경쟁이 점증하고 있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벌어지는 강대국 간 이해관계 다툼의 승패는 결국에는 군사력의 우위에 많이 좌우된다. 오늘날 강대국 간 갈등이 조성하고 있는 불안정은 1914년이나 1939년처럼 미래에 매우 위험한 결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다.

제국주의는 교과서 속 역사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부하린의 《세계경제와 제국주의》를 지금도 곁에 두고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내재적 법칙

레닌과 마찬가지로, 부하린은 자본주의가 돌발적 변화, 파국적 격변, 갈등으로 가득 찬 체제라고 봤다. 그러므로 그 체제 하에서 영구 평화는 없다.

부하린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서로 모순된 두 경향, 즉 자본의 국제화와 국가화(국가자본주의화)가 결합된 데서 비롯한다고 설명했다.

자본의 국가화 경향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 과정의 논리적·역사적 귀결”이다. 자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끊임없이 이윤의 일부를 재투자해야 한다(집적). 그리고 강한 자본이 약한 자본을 흡수한다(집중). 이 때문에 갈수록 경제력이 소수의 대기업들에 집중된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대기업들은 점차 유착하게 돼, 국가자본주의가 출현한다.

그러나 자본의 국가화는 부하린이 “세계적 규모의 생산관계 체계와 그에 따른 교환관계 체계”라고 정의한 세계경제 하에서 일어나는 경향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 하에서 생산은 갈수록 국제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도 자본의 집적과 집중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이윤 욕구는 국내 시장에서 충족되지 않는다. 자본들은 국경을 넘어 점점 더 세계적 수준에서 활동하고, 다른 국가의 자본들과 경쟁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두 경향이 빚어낸 결과는 평화와는 완전히 동떨어졌다. 자본들이 국경을 넘어 활동한다는 것은 세계경제에서 “판매 시장, 원료 시장, 투자처를 둘러싼 경쟁이 격렬”해졌음을 의미한다. “국제적 상품 교환의 증가가 언제나 서로 교환하는 집단들의 ‘연대’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필사적 경쟁과 생사를 다투는 투쟁을 낳을 수 있다.”(77쪽)

자본의 국제화가 낳는 경쟁 격화는 국가화 경향을 더욱더 촉진할 수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은 ... 다른 한편으로 ...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의 ‘국가화’ 경향을 강화하고 협소한 ‘국민적’ 집단을 형성한다. 이 집단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장하고, 언제든 서로를 공격할 준비가 돼 있다.”(141쪽)

이제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단지 자본들 간의 경제적 경쟁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국가들의 군사적·영토적 경쟁의 형태로 발전한다. 따라서 세계는 국가와 대기업들이 통합된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들이 서로 경쟁하는 무대가 된다. 이 경쟁의 승패는 각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가 동원할 수 있는 “힘과 결속력, 군사적·금융적 수단”에 달렸다.

니콜라이 부하린은 볼셰비키 지도자로 그의 저작들은 제국주의 이해에 여전히 유용하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은 때로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전쟁이 끝나고 강대국들이 새로운 합의에 도달해도, 갈등은 오래지 않아 다시 커진다. “전쟁은 자연 발생적으로 발전하는 세계시장의 맹목적 법칙의 압력 아래 생겨난 사회의 내재적 법칙”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의미

앞서 언급했듯이, 부하린의 제국주의론은 현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분석하는 데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부하린은 “전쟁과 제국주의적 전쟁 준비의 필요성” 때문에 부르주아들이 “낡은 부르주아적 개인주의”를 버리고 “생산을 국가가 조직할” 필요성에 동의할 수 있음을 포착했다.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들 간의 군사적 경쟁 압력이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의 “독점”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다른 생산양식으로의 전환이 아니다. 동일한 생산양식 내에서의 변화일 뿐이다.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는 국가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의 최고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 독점의 직접적 표현이 국가권력이든 ‘사적’ 조직이든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어느 경우든 상품경제(무엇보다 세계시장)가 존재하고 있고, 더 중요하게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계급 관계가 존재한다.”(216~217쪽)

부하린의 통찰은 1930년대 세계 자본주의에서 국가자본주의 추세가 발전하는 과정에 딱 들어맞았다. 전례 없는 대불황 때문에 각국은 국가 개입 정도를 앞다퉈 늘리고, 폐쇄적 무역 장벽을 쌓았다. 당시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이 국가 주도 경제의 대표적 사례였다. 물론, 다른 서구 경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제 위기에서 탈출하고 군사력을 증대하려고 강대국들은 개별 자본가들의 필요를 국가의 군사적 목적에 종속시켰다. 그 결과는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비극이었다.

옛 소련은 1930년대 국가자본주의 추세의 극단적 사례였을 뿐이다. 당대 서방 경제와 달리, 옛 소련은 국내에 사기업과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양적 차이를 과장해 서방 자본주의와 옛 소련이 질적으로 다른 체제였다고 보는 것은 부정확한 관찰이다.  

국가자본주의는 지금의 서방 세계에도 해당하는 현상이다. 서방 각국 경제의 적어도 3분의 1이 국가 부문이다. 많은 좌파들의 오해와 달리, 국가 부문도 엄연히 체제 바깥의 존재가 아니라 체제의 구성 요소다.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이고 군사적 경쟁도 자본주의 경쟁의 한 형태라는 부하린의 지적은 여전히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부하린의 책은 세계화 속에 경제가 성장한 동아시아가 왜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의 핵심 무대가 됐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각국 경제의 상호 의존이 커진 결과, 외려 경제적 경쟁이 치열해졌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무역전쟁, 군비 증강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굴복할 때까지 동아시아에서 강대국들의 국익 충돌은 악화할 수 있다. 

분명 《세계경제와 제국주의》가 나올 당시의 자본주의와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이에는 차이도 있다. 그러나 부하린을 비롯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포착한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즉, 자본주의의 경쟁적 축적 논리가 제국주의의 근본 동력이다. 그러므로 궁극적 정치 대안도 노동계급의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운동 건설을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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