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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1927~1940: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사수하다》(토니 클리프, 책갈피, 25000원):
“세기의 암흑기”를 비춘 서광

《트로츠키 1927~1940: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사수하다》 토니 클리프 지음, 책갈피, 25000원

국내에 지금껏 번역된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전기로는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평전 3부작과 트로츠키의 자서전 《나의 생애》(품절) 정도를 꼽을 수 있었다. 그중 아이작 도이처의 평전은 여전히 권위 있는 전기로 평가받지만, 저자의 정치에는 더러 문제점이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토니 클리프의 트로츠키 전기가 국내에 소개된 건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트로츠키 1927~1940: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사수하다》는 토니 클리프가 쓴 트로츠키 전기 4부작의 마지막 권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클리프는 2000년에 작고한 영국 마르크스주의자로, 국제사회주의경향의 창립자였다.

이 책은 트로츠키가 1928년 카자흐스탄의 알마아타로 유배된 뒤부터 1940년 멕시코에서 암살당할 때까지, 즉 트로츠키 생애의 후반부를 주로 조명한다. 이때는 “세기의 암흑기”라 불릴 정도로 인류에게 재앙이 닥친 시기였다.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의 주도 아래 반혁명이 시작됐고, 세계경제는 대불황으로 치달았으며,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집권했고, 세계는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참극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트로츠키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지지자들에게도 끔찍한 복수가 자행됐다.) 트로츠키의 결정적 공헌(과 부분적 오류)은 바로 이런 정세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트로츠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아마 수많은 역사적 인물 가운데 트로츠키만큼 극심한 왜곡과 비방에 시달린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당시 동·서 양쪽 지배자들에게 트로츠키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었다. 반대로, 노동계급에게 트로츠키의 실천은 지금도 등대가 될 수 있다.

레온 트로츠키는 1879년에 태어났다. 청년 트로츠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됐고,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지 몇 해 만에 당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후진국 문제에 대해 설교하던 정설에 도전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공헌인 연속혁명론을 내놓은 때는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의장으로서 1905년 혁명을 경험한 즈음이었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이 벌어져 차르가 타도됐고, 그해 7월 트로츠키는 볼셰비키에 입당했다. 그는 10월 무장봉기를 조직하는 임무를 맡았고 이를 성공시켰다. 적군赤軍을 창설하고 지휘해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소련과 코민테른의 중요한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1923년부터 트로츠키는 러시아에서 스탈린주의 반동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7년에 당에서 제명됐고 1929년에는 아예 소련 바깥으로 추방당했다. 그 후에도 그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지켜 내고 그것을 혁명적 조직으로 구현하려고 영웅적으로 싸웠다.

1920년대 러시아 좌익반대파 지도자들. 트로츠키(앞줄 가운데)는 좌익반대파를 이끌며 러시아 혁명을 사수하려고 애썼다

트로츠키에게 배울 점은 무엇인가

“세기의 암흑기” 속에서도 중요한 대중적·혁명적 계급투쟁이 벌어졌고, 트로츠키는 망명 중에도 이를 발전시키고자 무진장 애썼다.

트로츠키는 나치 독일에 맞서 뛰어난 전략·전술을 내놨다. 클리프는 이렇게 말한다. “1930~1933년에 트로츠키가 쓴 저작들을 읽어 보면, 얼마나 구체적인지 마치 지은이가 독일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터키의 프린키포섬이 아니라 독일 현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트로츠키는 나치의 부상에 대처하기 위해 “공동전선”을 열정적으로 제안한다. 공산당과 사민당이 힘을 합쳐 공동 행동을 벌여야만 나치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당시 코민테른의 기괴한 “사회파시즘”론(사회민주주의가 파시즘의 변형일 뿐이라는 뜻) 탓에 독일 공산당은 사민당과의 협력을 거부했고 결국 히틀러는 총리가 됐다.

트로츠키의 비극이라면 위대한 목적과 빈약한 수단 사이의 격차였다. 히틀러가 승리하기 직전에 독일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수는 많이 잡아야 “600명”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로츠키의 중대한 기여는 현재 각지에서 부상하고 있는 우익과 파시스트에 맞선 노동계급과 좌파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서 필요한 길잡이가 된다.

트로츠키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혁명적 사건들에 관해서도 탁월한 저작을 내놨다. 이때는 독일과 다르게 코민테른의 “민중전선” 정책이 문제였다. 사회파시즘론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노동계급 정당들이 부르주아 정당과도 동맹을 맺어 혁명적 운동을 가라앉혀 버린 것이다. 소련의 외교적 필요에 모든 것을 종속시킨 이 정책은 스탈린주의 전통의 핵심으로 지금까지 자리 잡혀 있다.

트로츠키가 물려준 또 다른 유산은 ‘스탈린주의와 자본주의에 모두 반대’할 수 있는 틀을 세웠다는 점이다. “스탈린 체제의 광기 어린 공포정치가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 트로츠키는 《배반당한 혁명》이라는 걸작을 썼다. 스탈린 체제를 분석한 이 책은 철저하게 마르크스주의적이고 철저하게 유물론적이다. … 그는 스탈린 체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용인하게 만든 반스탈린주의 히스테리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이것들 말고도 트로츠키의 유산은 이 책을 정독하며 더 풍족하게 가슴에 새길 수 있다. 트로츠키가 당시의 분석과 판단에서 무오류였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트로츠키의 오류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지적하고 저자 나름의 대안도 제시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트로츠키가 스탈린주의 소련을 ‘국가자본주의’가 아니라 ‘관료적으로 변질된 노동자 국가’로 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오류가 그가 이룩한 업적을 결코 능가할 수 없다. 또, 우리는 그런 오류를 놓고서도 배울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저자가 책 끄트머리에 간략히 정리한 트로츠키의 공헌을 인용하며 마치려 한다.

“우리는 트로츠키에게 엄청난 빚을 졌다. 그가 스탈린 체제의 관료 집단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면, 그의 국제주의가 없었다면, 사회주의를 노동계급의 자주적 활동으로 이해하는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전통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