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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반대해야 한다

정부가 10월 중 국민연금 개악안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도 9월 안에 요구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현행 국민연금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크게 삭감됐다. 자기 평균 소득의 60퍼센트를 지급하던 것에서 40퍼센트로 삭감했다. 무려 3분의 1 깎았다. (그중 절반은 2008년 한 해에, 나머지 절반은 2009년부터 20년에 걸쳐 삭감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래서 2018년 현재 연금은 자기 평균 소득의 45퍼센트를 지급받고 2019년에는 그 수치가 44.5퍼센트로, 2028년에는 40퍼센트로 줄어든다.)

물론 이 수치는 연금 보험료를 4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냈을 때 적용되는 것이므로 실제 연금액은 이보다 훨씬 적다. 2017년 현재 연금 수급자는 471만 명에 이르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한 달에 30만 원도 못 받고 평균 수급액도 40만 원이 안 된다. 지금대로라면 2050년이 돼도 가입기간과 연금액은 늘기는커녕 줄어들 공산이 크다.

민주노총은 현재 45퍼센트를 받도록 돼 있는 연금을 더는 삭감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 평균 소득의 50퍼센트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옳은 요구다. 다만 앞서 지적한 대로 이는 40년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실제 노동자들의 평균 보험료 납부 기간(21년 안팎)을 고려하면 연금액 기준이 훨씬 상향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친민주당 언론은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달래겠다며 ‘국가 지급 보장’을 명문화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진정한 쟁점은 어떻게 지급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즉 지금처럼 계속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인상할지, 아니면 기업주들의 부담을 더 늘릴지, 혹은 둘 다 늘려야 하는지가 쟁점이다.

문재인과 친정부 언론들은 이 날카로운 쟁점을 회피하려고 엉뚱하게 ‘지급보장’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유럽 정부들의 사례에서 보듯 설사 지금 ‘지급보장’을 명문화해도 심각한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 정부는 이를 순식간에 공문구로 만들어 버리려 할 것이다. 자본주의 정부가 노동자들의 삶보다 기업주들의 이윤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국가와 사용자 부담을 강화해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 민주노총도 이 점을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말고 노동자들의 보험료 인상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늘리자는 주장에 문을 열어 주는 것으로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스럽게도 민주노총 내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이 점이 분명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금을 더 받으려면 노동자들이 지금보다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정부와 ‘전문가’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는 논리는 진보‍·‍좌파 진영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 전제가 되는 기금고갈론은 노동자들의 부담(보험료)을 늘리는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적 무기가 돼 왔다.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미래에는 노인들을 먹여 살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견해는 지속가능한 국민연금을 위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귀착되거나 국민연금 방어 투쟁에 대한 회의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처럼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인들을 부양할 생산력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다. 2008년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은 그리스에서조차 연금 삭감은 정부의 우선 순위 문제였을 뿐이다. 즉 그리스 정부는 노동자‍·‍민중을 위해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지 않고 반대로 대중의 삶을 무정부적인 국제 시장의 압력에 내맡겼다. 한국에서도 역대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게다가 한국 노동자들은 OECD 나라 중에서도 실질임금은 적고 사회보험료(4대보험료) 부담은 높다. 반면 기업주들의 사회보험료 부담은 매우 낮다(그림1, 2). 기업 소득은 갈수록 늘지만 노동소득분배율은 계속 악화돼 왔다.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야 할 어떤 이유도 없고, 그렇게 보험료만 인상해서는 큰 개선을 이루기도 어렵다. 정부가 제시한 안에 따르면 당장 내년에 보험료를 20퍼센트나 인상해도 현상 유지만 가능할 뿐이고, 그조차 몇년 뒤에 또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그림 1. 2017년 OECD 시간당 실질임금 비교(구매력환산지수 적용), 출처 OECD database
그림 2. 2016~2017 OECD 사회보장기여금 부담 비중, 출처 OECD database

반면 그림 2에서 보듯 사용자들의 부담을 늘리고 지금 당장 충분한 연금을 지급하면 당장 노인 빈곤율을 대폭 낮출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가증스럽게도 최악(더 내고 덜 받고 더 늦게 받는 안)과 차악(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 중에 고르라는 식으로 뻔한 의도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을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면 정부의 의도에 끌려다닐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논의’는 결국 차악 선택을 강요당하는 수순이기 쉽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기업주들의 부담을 늘려 연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더불어 실질임금 삭감 효과를 낼 보험료 인상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