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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 포괄임금제 폐기하라

9월 12일 전국의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 소속 노동자들이 하루 파업을 벌인다. 8월 늦장마로 생활고를 겪고 있음에도,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노동자들이 외치는 것은 “건설 현장의 포괄임금제를 즉각 폐기하라”는 것이다.

포괄임금제란 야간이나 휴일에 몇 시간을 일했는지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모든 수당이 일당이나 월급에 포함돼 있다며 ‘퉁 치는’ 것이다. 근로계약 시 하루 일당에 연장·휴일·주휴·연차 수당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초과 수당이 이미 일당에 포함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초과 노동을 많이 시킬수록 이득이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의 원인이 돼 왔다.

포괄임금제는 건설현장 장시간 노동의 핵심 원인이다 ⓒ이미진

대다수 건설 노동자들도 포괄임금제 때문에 주 1회 유급휴일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한 달에 5일만 궂은 날씨로 일을 못 해도 임금이 100만 원 정도 줄어듭니다. 그런데 일요일은 무급으로 쉬라면 그 마음이 어디 편하겠어요? 최소한 일요일만이라도 유급으로 맘 편히 쉴 수 있어야 합니다.”

건설노조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건설 현장의 청년 노동자 80퍼센트가 일요일에는 주휴 수당을 받으며 쉬고 싶다고 답했다.

정부는 이런 노동자들의 염원을 번번이 외면해 왔다. 노동시간을 줄인다며 2006년 내놓은 시범사업 정책도 휴일 무급 휴무(주휴 수당 지급 없이 휴일 건설 현장 작업 중지)뿐이었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건설현장 안전대책의 일환으로 발표한 ‘일요일 휴무제’도 마찬가지다. 내년부터 모든 공공 발주 공사에 일요일 근무를 제한한다면서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유급 휴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포괄임금제가 사라지지 않으면 휴일 있는 삶은 요원하다”고 노동자들이 말하는 이유이다.

하루라도 맘 편히 쉬고 싶다

건설 현장 포괄임금제의 문제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2011년 고용노동부는 건설 노동자의 휴가권을 보장한다며 ‘건설일용근로자 포괄임금 업무처리 지침’을 시행했다. 이 지침은 하루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는 건설 노동자에게 포괄임금 적용을 제한하기는 했다. 그러나 수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는 일용직 노동자 대부분은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에게 주휴 수당, 휴일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도록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겠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포괄임금제가 더 확산되는 효과를 낳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포괄임금제를 규제하는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몇 차례나 밝혀 왔다. 대법원이 이미 2016년에 건설 일용 노동자에게 포괄임금제를 적용해선 안 된다고 판결한 점을 볼 때, 이는 즉각 시행됐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건설일용근로자 포괄임금 업무처리 지침’조차 폐기하지 않고 있다.

2007~2016년 동안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5700여 명이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건설 노동자다. 이런 환경 속에서 휴식은 곧 노동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포괄임금제 폐지와 주휴수당 보장은 저임금과 산업 재해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처이자 당연한 권리다.

토목건축 노동자들의 투쟁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였던 건설 현장에서 빼앗겨 온 권리를 되찾기 위한 것이다. 이는 또 장시간 노동에 고통 받는 다른 부문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문재인의 포괄임금제 폐기 약속

문재인 정부는 대선 때부터 포괄임금 규제를 약속했다. 정부가 2017년 7월 내놓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괄임금 규제가 포함됐다. 그 한 달 뒤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제 개선 지침을 10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6월, 8월로 관련 지침 발표 시기를 거듭 연기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게다가 올해 들어 주52시간 단속 유예,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에 대한 연장근로 허용,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 시사 등 사용자들을 위한 조처들이 추진돼 왔다. 정부가 포괄임금제 개선 지침 발표를 무기한 연기하려 한다는 우려가 크게 제기된다.

2016년 통계를 보면, 전체 사업장의 30.1퍼센트에서 포괄임금제가 시행되고 있다.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의 방문교육 지도사 등 정부가 운영하는 사업에서조차 포괄임금제가 적용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우경화와 신자유주의 노동 정책 추진 상황을 볼 때, 이전 약속만 믿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포괄임금제 폐기와 제대로 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