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복지를 강화하는 포용국가 추진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 모순 때문에 전망이 밝지는 않다.

문재인은 9월 6일 포용국가 전략회의를 열어 직접 주재하며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고 함께 잘 살아야 한다 … 국민의 삶을 전 생애 주기에 걸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은 경제·사회 정책의 우선회에 따른 지지율 하강을 늦추고 반등해 보려는 계산일 것이다. 문재인은 고용 지표 등이 악화되고, 투자 부진이 예상되자 소득주도성장론 등에서 후퇴하고 있었다.

소득주도성장이 진실된 목표라면, 적자를 감수하고 서민층 소득 향상에 돈을 대폭 풀었어야 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에서도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지출을 억제하는 (한국 국가의 전통적 기조인) 균형재정을 유지한 것이다.

오히려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 곧바로 최저임금 인상이 지나치다는 기업주와 우파의 볼멘 소리를 수용했다. 그러면서 혁신 성장을 강조했는데, 이는 우파 정부들의 낙수 효과론과 규제 완화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포용국가론의 핵심은 자본주의 경쟁력 강화다 ⓒ출처 청와대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이나 포용국가론이 나온 배경은 그 주창자들 스스로 인정하듯이 점점 심해지는 불평등 문제였다. 실질임금이 수년간 노동생산성 향상보다 낮게 인상됐다.

이렇게 보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시키는 제도 개악을 해 놓고도 복지 강화 포용국가론을 들고 나온 것은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개혁 염원과 기업주들 사이에 낀 문재인 정부의 갈팡질팡을 보여 주는 일이다.

이율배반

애초 문재인이 대선에서 내세운 국가 비전은 ‘혁신적 포용국가’였다. 당시 대선 캠프에 포용국가위원회를 만들었고,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성경륭 한림대 교수가 이끌었다.(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병준도 나중에 정책실장 자리에 앉았다.) 

지난해 성경륭 교수는 포용국가 위원회에 참가한 교수들과 함께 포용국가론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 포용국가》(성경륭 외, 21세기북스, 2017)를 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포용국가를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 즉 시장 혁신과 복지국가의 결합이라고 요약한다. 즉, 문재인의 포용국가론은 애초부터 ‘혁신적 포용국가’였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 성장과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가 서로 대립되는 게 아니라 한 몸을 이루는 세 요소라고 할 때, 그 세 요소의 종합이 바로 ‘혁신적 포용국가‘였던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시장 경쟁력을 경제, 고용, 교육 등의 측면에서 제고하되(혁신), 사회 통합을 위한 복지를 강화하자(포용)는 것이다. 포용을 위해서 사회적 협치(대화)가 방법으로 강조된다.

이는 1997년 경제 공황 이후 한국 국가의 큰 방향과 다르지 않으며, 특히 노무현 정부의 사회투자국가와도 별 다를 게 없다. 

그 핵심은 복지가 더는 노동자들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의 필요(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향상)에 부합하도록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노인 연금은 줄이고 미래 노동력에 대한 투자인 아동수당(교육 투자)은 늘리는 식이다. 물론 사회의 급속한 노령화 국면에서 실제 정책 집행이 그토록 단순하지는 않다.

국가와 시장(기업), 사회(노동)이 국가로 표상되는 공동체에 서로 책임을 다해 상생을 하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셋 사이에 공정(정의)이 유지돼야 한다. 그래서 구체적인 정책 실행은 사회적 협치(대화)로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그 원리는 분명하다. 기업 혁신(경쟁력 증진)을 중심에 두고 국가와 사회(노동), 기업이 권리와 의무를 교환하는 것이다. 노동자들도 자신을 쥐어짜기 여념 없는 기업주들을 포용해야 하는 것이다. 시장의 규율에 복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복지는 생활의 필요가 아니라 노동력 판매의 대가다(근로연계복지). 포용국가론이 가정하는 패턴은 대략 다음과 같다.

기업은 투자(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늘리기)를 늘려야 한다. 노동자들은 고용 유연화를 받아들이고 임금을 적정 수준에서 억제해야 한다. 정부는 재벌 개혁, 규제 개혁(완화)으로 시장을 활성화하고 복지의 효율적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 복지 확대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여 주고 노동자들이 고용 유연성을 수용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부동산 가격 억제도 생활비를 줄여 임금 인상 압력을 줄이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이 강화돼 경제가 좋아지고 고용률이 늘면 세수도 늘어나 이 메커니즘은 선순환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전망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포용적 복지를 하려면 의료·바이오 산업(의료 민영화), 환경·에너지 산업(원전 수출) 같은 일들이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포용국가의 핵심은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용이다. 포용을 해야 성장한다고 하지만,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안 되면 포용 기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를 바라서 포용국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포용국가론은 이율배반일 것이다.

실제로도 문재인 정부의 말과 행동은 모순된다. 지난 몇 달 동안 투쟁하는 노동자들,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장애인 등은 포용 대상이 못 되거나 노골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남북 화해 국면에서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나오고 있다. 우파를 안심시키려고 말이다(우파 포용).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는 게 노사 모두에게 좋다지만, 필요한 조처를 회피해 부동산은 폭등하고 있다. 부자들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가 더 나빠지는 상황에서 기업주들은 더 노골적인 개악을 바란다. 비유하자면, ‘혁신’은 최대한 하고 싶어하지만, 모순투성이인데도 ‘포용’은 가능한 최소화하고 싶어 한다. 더 근본적으로 계급으로 예리하게 분단된 사회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모든 구성원을 진짜로 포용하거나 그런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다. 우리가 우파와 사법 농단 판사들, 노조 파괴 기업주들을 포용해야 하겠는가?

〈조선일보〉는 9월 7일 재원 대책도 없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는데, 그 다음날에는 아예 “포용국가 얘기하기 전에 눈앞에 닥친 일이나 제대로 하라는 것이 국민 심정”이라고 비아냥댔다. 최근 문재인의 우선회로 기가 산 우파들은 일단 복지 확대에 반대하고 볼 것이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거나 악화되지 않도록 하려면, 포용국가 담론에 기대를 걸 게 아니라, 정부와 기업주를 상대로 대중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연대를 건설할 계급정치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