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예멘 난민 신청자 23명에게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부여하기로 했다. 이는 난민이 아니라고 결정한 것이다. 다만 예멘의 끔찍한 상황이 잘 알려져 있어 강제 송환은 부담스럽기 때문에 불안정한 체류지위만을 부여한 것이다.

이 결정은 제국주의 전쟁의 희생자들을 내친 비인도적이고 무책임한 처사다. 남은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부는 인도적 체류 지위조차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우익들은 이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날뛰고 있다. 이들은 “예멘 가짜 난민의 추방”을 촉구하고 “인도적 체류가 명시된 난민법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와 거짓말로 점철된 난민 혐오야말로 추방돼야 한다.

정부는 난민협약과 난민법상 5대 박해사유(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에 해당하지 않아 난민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엔이 정한 난민협약과 한국 정부가 시행 중인 난민법은 ‘전쟁’을 난민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협소한 난민 규정은 난민협약과 난민법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규정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난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규정상 난민이 될 수 없다. 제국주의적 침략과 개입으로 난민 위기를 만든 책임이 있는데도, 전혀 책임질 생각이 없는 제국주의자들의 속내가 반영된 것이다.

법이 이렇다고 한국 정부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지옥이나 다름 없는 예멘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난민 지위를 부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익들이 정부가 난민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은 23명을 “가짜 난민”이라고 우기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그 명칭과 달리 전혀 “인도적”이지 않다. 취업할 권리 말고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계비 지원이나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을 받을 수 없고, 가족을 데리고 올 수도 없다. 체류 기한도 1년마다 심사를 통해 갱신해야 한다. 짧고 불안정한 체류 기한은 직업을 구하는 데서도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래서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법무관조차 “인도적 체류자에게 주어진 권리가 ... ‘난민 신청자’와 차이가 별로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KBS 뉴스와의 인터뷰)

게다가 정부는 이번에 인도적 체류 지위를 얻은 이들 중 임산부, 아동 등이 많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의 취약한 조건을 고려했다면서도, 이들에 대한 지원책은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았다. 완전히 무책임한 처사다. 강제 송환은 부담스럽지만, 실질적 처우에 대해서는 책임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우익들은 이런 취약한 조건의 사람들을 “강제 송환”하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우익들의 압력을 의식한 듯 인도적 체류 지위를 부여한 23명에 대해 “국내 법질서를 위반할 경우에는 체류자격이 취소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발표는 9월 16일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 난민에 연대하는 목소리를 드높여야 하는 이유를 다시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또한 난민 인정은 최소한의 권리일 뿐, 생계비 지원, 주거·일자리 마련, 의료 지원 등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