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2007년부터 본격화된 세계경제 위기는 해결은커녕 정치적·지정학적 위기로 변모·발전했다 ⓒ출처 Rafael Mutsange(플리커)

리먼브러더스[미국의 대형 투자은행]가 파산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일조해 발생한 세계경제 위기가 끝났느냐 아니냐가 논란거리이다.

자유주의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는 그의 중요한 신간 《붕괴》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몇 해 전만 해도 국가들의 은행 구제와 중앙은행들의 양적 완화(금융권에 새 돈을 투입하기)가 결합된 덕분에 위기가 해결됐다는 것이 흔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투즈가 옳게 주장하듯이, “위기는 사실 끝나지 않았다. 2007~2012년의 금융·경제 위기는 2013년과 2017년 사이에 탈냉전 질서 전반의 정치적·지정학적 위기로 변모했다.” 《붕괴》는 이 중층적 위기의 기원과 과정을 다룬 거대한 역사서이다. 

투즈의 그 전 책인 《엄습》은 제1차세계대전과 그 여파를 다룬 책이었다. 주류 역사학자의 연구서답지 않게, 그 책은 레닌을 전략적 사상가로서 존중하며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와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로, 투즈는 《붕괴》에서도 피터 고완이나 리오 패니치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 결과에 공감을 내비친다. 고완과 패니치의 주장인즉,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투즈는 2007~2008년에 발생한 위기가 “달러를 기반으로 한 대서양 양안 금융 시스템”의 위기였다고, 월스트리트와 시티오브런던[영국 금융 중심지]이라는 두 “매듭”을 가진 시스템의 위기였다고 본다. 이로부터 투즈는 그 위기가 미국의 위기인 동시에 유럽의 위기이기도 했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대서양 양안의 은행들은 수익성 좋은 투자처(예를 들어 2000년대 중반의 미국 주택 시장)에 투입할 돈을 마련하려 애썼다. 월스트리트에서, 또는 시티오브런던이 조율하는 역외 시장*에서 달러를 싸게 빌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방식은 달러가 계속 순환되는 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금융 순환계”가 멈춰 버린다면? 바로 그 일이 2007~2008년에 일어났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호황에 중심을 둔 투기적 투자라는 취약한 상부 구조가 붕괴하면서 그랬다. 패닉이 퍼져 나가면서 신규 달러 대출이 말라 버렸고, 이 때문에 대서양 양안의 경제 ― 은행뿐 아니라 공업과 상업도 ― 가 붕괴 위협에 처했었다. 

구출

투즈의 분석의 최대 강점은 미국 국가가 경제를 구출하기 위해 얼마나 전방위적으로 나섰는지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은행들에 대한 구제 금융 제공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는 그 패닉의 몇몇 순간에 주요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달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일련의 통화 스와프*도 제공했다. 

그러므로 투즈의 분석은 위기를 단순히 미국 패권의 약화로 보는 전통적 설명들과 모순된다. “위기 이전에 대서양 양안의 역외 달러 시스템은 명확한 지도적 중심이 결여돼 있었다. 실제로 그 시스템은 국가의 규제와 통제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이전’돼 발전했었다. 2008년 이후에 그 시스템은 연준과 연준의 유동성 공급을 중심으로 공공연히 조직됐다.” 

사실상 투즈는 매우 국가 중심적인 위기 분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 가지 단점은 이 책이 미국과 유럽 “상층부” 정치의 최근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세세히 다룬다는 것이다. 특히 뒷부분은 유로존 위기를 정말 지겹도록 상세히 다루는 내용이 압도적이다.

더 큰 약점도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블로거 마이클 로버츠가 주장했듯이, 《붕괴》는 “‘왜’보다는 ‘어떻게’가 더 많다.” 다시 말해 투즈는 “대서양 양안 달러 시스템” 내부의 금융 흐름이 서방 자본주의에서 득세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생산은 그의 서술에서 주변적이다. 그와 달리 고완은 주요 공업 중심지들 사이의 경쟁적 투쟁을 강조하고 로버츠는 자신이 “장기 침체”라고 부른 것의 원인을 생산적 투자의 이윤율이 낮은 것으로 보며 그 과정을 추적한다. 

투즈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정치적 이의 제기들, 즉 브렉시트와 트럼프와 인종차별적 우파의 성장 등의 연원은 [2007~2008년] 위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분명하게 밝힌다. 그러나 그런 이의 제기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훨씬 불분명하다.

최근 어느 기사에서 투즈는 이렇게 썼다. “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터무니없는 열정에 맞서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 정부를 옹호할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바로 기술관료 정부가 우리를 이 시궁창에 빠지게 하지 않았나? 국가 개입은 은행들을 살렸지만, 내핍 정책 탓에 보통 사람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했고,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 같은 인물을 좋아하게 됐던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매우 명석하더라도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것 이상의 해법은 제공하지 못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