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인 단속 과정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비극이 또 벌어졌다. 지난 8월 22일 김포의 한 건설현장 식당에 단속반원이 들이닥쳐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단속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미얀마 노동자가 창밖 8미터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방치돼 있다 뇌사 상태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치료를 받다가 9월 8일 끝내 숨졌다. 단속반이 내국인 노동자들에게까지 수갑을 채우려 하는 등 폭력적인 단속을 마구잡이로 자행했다고 목격자가 밝혔다.

지난 7월에는 경남 함안군의 상하수도 매설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우즈베키스탄 유학생을 단속반이 집단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합법’ 체류 상태였음에도 단지 사전 허가 없이 취업했다는 이유였다. 특히 잔혹한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샀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9월 20일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건설업과 유흥·마사지업 집중 단속, 입국심사 강화, 고용주와 브로커 처벌 강화 등이다. 건설업에서는 1회 적발 시 바로 출국조치하고 단속된 이주노동자 명단을 본국에 통보해 본국에서도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런 단속 강화는 이주노동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입국심사 강화는 이주노동자들이 더 위험하고 브로커 비용이 많이 드는 경로를 택하게 만들 것이다. 고용주와 브로커 처벌이 강화되면 그들은 위험 부담을 명분으로 이주노동자에게 더 열악한 조건을 강요할 수 있다. 단속 과정도 더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는 ‘일자리 도둑’이 아니다 ⓒ조승진

정부는 “건설업 등에서 국민 일자리 잠식”을 막기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대책을 내놨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고용 지표 악화가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의 한 원인이 되자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희생양 삼아 면피하려는 것이 진짜 속내다.

이들 “40~50대 가장”들을 일터에서 내쫓은 것은 다름 아닌 정부와 기업주들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80만 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되레 일자리를 공격하고 있다. 조선업, 한국GM, 금호타이어 등의 구조조정 과정이 이를 잘 보여 줬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공약도 공수표가 되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누더기로 만들더니, 지난 6월에는 유연근무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유연근무를 권장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연장근무 수당을 주지 않고도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인력 충원의 필요가 줄어든다.

정부는 특히 건설현장이 “40~50대 가장의 마지막 피난처”라며 건설현장 단속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건설 현장이 기업주들의 손아귀에서 고용 불안과 산재 위험이 판치는 전쟁터가 되는 것을 수수방관해 왔다. 그럼에도 애꿎은 이주노동자들을 ‘일자리 도둑’ 취급하면서, 건설업의 내국인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하는 정부 행태는 정말 역겹기 짝이 없다.

정부는 유흥·마사지업도 “풍속저해 업종”이라며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마사지업소는 최근 그 수가 크게 늘어 내·외국인들이 모두 종사하고 있는데 생계를 위해 출입국 규제를 어겼을 뿐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등록 이주여성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마사지업소들도 있다는데, 단속 강화는 오히려 미등록 이주여성들이 업주들에게 의존하게 만들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설업 고용 불안, 기업주와 정부 탓이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건설업 일자리도 경제 상황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최근 몇 년 간의 호황으로 건설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5퍼센트를 차지하며 경제성장률과 고용을 지탱하는 구실을 해 왔지만, 지난해부터 건설 경기가 둔화하면서 고용증가세도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 건설현장 일자리는 이주노동자 유입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건설노동자들은 건설 경기가 호황일 때에도 몇 주, 몇 달 단위로 새로운 일자리를 걱정해야 했다. 건설현장의 비정규직 비율은 73퍼센트나 되고 그조차 대부분이 임시·일용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설사 이주노동자 수천 명이 현장에서 쫓겨나도 고용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업주들은 건설노동자들을 임시·일용직으로 채용하며 일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시키고, 매일 1~2명씩 죽어나가는 열악하고 위험천만한 노동조건을 강요해 왔다. 정부는 이를 수수방관해 왔다. 정부가 발주자로 있는 공공부문 건설현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건설현장 일자리 문제의 책임은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정부와 사용자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열악한 건설업 고용구조와 노동조건 하에서 이주노동자들도 내국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고령화된 내국인 노동자들이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고강도 저임금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심지어 일부 현장에선 기업주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식당이나 휴게실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는 내국인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조건 개선에 결코 이롭지 않다. 단속 강화로 이주노동자들의 조건이 악화되면 내국인 노동자들의 조건을 끌어내리는 하향 압력도 커지게 된다.

또,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는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정부와 기업이 아닌 이주노동자를 향하도록 해 노동자들 사이에 반목과 분열을 조장한다. 이것은 현실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이 더 크게 단결하며 투쟁을 진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된다. 문재인 정부가 우향우하며 노동자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 지금,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는 특히 해악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건설노조가 정부와 기업에 ‘내국인 고용대책’으로 ‘이주노동자 규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안타깝게도 건설노조 내 좌파들도 대부분 이런 입장을 추수하고 있다. 정부가 자신감 있게 “건설현장 단속”을 강화하고 나선 데는 노동조합의 이런 입장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건설근로자법 개정, 포괄임금제 폐지 등과 같은 약속은 전혀 이행하지 않으면서, 유독 이주노동자 공격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것을 보면 정부가 건설노동자 처지 개선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설노조 전북건설지부의 이주노동자 배척 집회는 옳지 않다

9월 3일 군산의 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조 조합원 50여 명이 “외국인 노동자 채용”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당시 노동조합 간부는 조합원들에게 출근하던 이주노동자 10여 명을 가로막도록 했다.

그동안 건설노조의 몇몇 지역 조직들은 종종 건설현장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불법 고용을 문제 삼으며,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하거나 시위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 전북건설지부는 ‘불법고용’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고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이주노동자 배척이 더 심해진 것이다.

군산 지역 경제의 40~50퍼센트를 차지하던 한국GM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흔들리면서 수천 명의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려 이 지역 실업률이 지난해보다 두 배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인구가 줄면서 주택시장도 얼어붙어 지역 건설 경기도 침체되고 건설노동자들의 고용 불안도 더 심해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기업주와 정부가 책임져야 마땅하다. 이주노동자는 이 사태에 어떤 책임도 없다.

이주노동자 배척은 노동자 계급 내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집단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노동자들 간의 단결을 해쳐 결국 전체 노동자들의 이익을 훼손한다.

따라서 이날 집회로 전북건설지부가 사측으로부터 ‘일부 조합원 채용’ 약속을 받아낸 것을 성과라고 본다면 이는 매우 근시안적이다. 일시적으로 일부 조합원의 고용을 얻는다 해도 조만간 사용자들은 더 열악한 노동자를 내친 약점을 이용해 건설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며 반격을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를 배척하지 말고,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함께 투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러면 노동 조건의 하향 압박을 줄일 수 있고, 조직력도 강화돼 사용자에 맞설 힘도 키울 수 있다.

내국인 건설노동자들이 먼저 손을 내민다면 이주노동자들도 건설노동자 투쟁에 동참할 수 있다. 최근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의 성장에 첫 물꼬를 텄던 2012년 대구경북건설지부의 투쟁도 이주노동자와 비조합원들의 지지를 끌어낸 덕분에 기업주들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다단계하도급 근절, 건설현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의 과제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들의 연대는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