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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노동의 미래를 바꿀까?
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법석을 떠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8월 7일 인터넷 전문은행 현장 간담회를 찾아 “규제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청와대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법석이 도무지 식을 줄 모른다. 과장된 언론 보도들이 줄을 잇고, 관련 도서가 넘쳐난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설립됐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노사정위의 새 이름)도 산하에 “디지털 전환(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를 설치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이세돌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 이후 크게 유행했다. 알파고 승리의 과대 선전 속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디지털 기술이 경제는 물론 우리의 삶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라는 신화가 널리 퍼졌다.(알파고 승리를 둘러싼 과대 선전에 관해서는 2016년 4월 6일 본지 170호에 실린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 교수와의 인터뷰, “알파고와 인공지능, 이렇게 본다”를 보라.)

한국정보통신학회는 4차 산업혁명을 이렇게 정의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경제와 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에 의해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면서 급격한 경제·사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옹호자들은 “과학기술과 디지털화가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꿀 것”이고 “앞으로 펼쳐질 혁명의 속도와 깊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존 경제 질서는 종언을 고하고 산업과 노동 모두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 발전에 “혁명”이라는 낱말을 붙이는 것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2010년 독일이 발표한 “하이테크 전략 2020”의 하나인 “인더스트리 4.0”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의 기원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보듯이 “혁명”이라는 낱말이 붙어 있지 않다. 도대체 “디지털 혁명”(또는 “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이 있어서다.(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전도 결코 “혁명”이라고 할 만한 경제·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인더스트리 4.0이 발표되고 몇 년 뒤인 2016년 세계경제포럼은 4차 산업혁명 화두를 다시 꺼냈는데, 그것을 받아 살린 일등공신이 아마 한국일 것이다.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열풍이 유난한 곳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꼬집는다. 세계경제포럼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의 책 《제4차 산업혁명》(새로운현재)이 전 세계에서 100만 부가 팔렸는데 그중 30만 부 이상이 한국에서 팔렸다니, 그런 말이 나올 법하다.

이는 한국인들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띄우고 언론과 학계 등이 요란스럽게 장단을 맞춘 결과다.

알파고 대국 직후 당시 대통령 박근혜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선언하고 그것을 자신의 선전 구호인 “창조경제”와 연결시켰다. 그리고 디지털 전환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서비스발전기본법을 추진했고, 노동 “개혁”(적폐)을 정당화했다. 박근혜가 탄핵 재판을 앞두고 읽고 있던 책으로 언론에 공개한 것도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 열을 올리기는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었고, 그것을 자신의 선전 구호인 “혁신성장”과 연결시키고 있다. 박근혜의 청와대에 초대됐던 클라우스 슈밥은 주인이 바뀐 문재인의 청와대에도 초대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문재인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앞에 “사람 중심”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는 것 정도다. 그러나 수식어는 수식어일 뿐,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정보통신 관련 부처의 계획들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4차 산업혁명 법석을 떠는 이유는 한국 경제를 저성장의 늪에서 구할 대안이 있다고 믿게 만들려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은 “지능정보화의 물결”을 기회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 “활력 넘치는 경제”를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것이 가능하려면 규제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과도한 규제” 때문이라고 말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신기술 관련 산업 분야에 규제를 완화 또는 면제하는 “규제혁신 5법”을 추진해 왔다. 그중 3개가 지난 9월 하순 국회를 통과했다. 이와 함께, 은산분리 규제완화도 통과됐다. 이 일도 인터넷전문은행이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됐다.

요컨대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신화를 앞세워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프리존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손발이 척척 맞은 것은 문재인 정부의 “규제혁신”이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음을 잘 보여 줬다.

이제 그들은 또다시 합심해, 노동자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며 노동 “개혁”(적폐의 재연)도 추진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고용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사가 협력해야 한다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