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법원은 전 대법원장 양승태 자택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벌써 4번째 기각이다. 지난 5월,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양승태가 박근혜 청와대와 주요 판결들을 거래한 의혹과 자료들을 공개했지만 사법 농단에 대한 수사는 이처럼 지지부진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내뱉은 “반성, 진상 규명, 엄중 문책” 등이 공문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배계급과 기성 체제를 건드리지 않고 개혁을 선사하겠다는 문재인식 적폐 청산의 한계가 날로 뚜렷해지고 있다.

박근혜 청와대와 사법부는 반(反)노동계급 판결을 거래했는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도 그중 하나였다. 양승태 대법원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중형 판결을 박근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한 협조 사례로 들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감옥에 갇힌 사상·표현의 자유 정부는 ‘양심수 사면’ 촛불 민심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출처 민중당

이미 2016년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국면에서, 전 민정수석 김영한의 업무수첩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등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는 통합진보당 해산 카드를 사용해,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안보 문제를 강조하고, 노동계의 좌파 정치를 위축시키려 한 것이다.

정당 해산의 핵심 고리는 이른바 ‘내란 음모’ 사건이었다. 검찰은 2013년 9월 이석기 의원을 포함해 진보당 활동가 7명을 내란음모·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석기 전 의원 등이 그해 5월 합정동에서 ‘RO’라는 모임 회합을 하며 내란을 모의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프락치 공작을 폈고, 강연 내용 ‘녹취록’의 800여 곳을 위조했다. 대대적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곧이어 11월 박근혜 정부는 정당해산심판청구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듬해 12월 헌재는 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첫 변론이 시작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변론을 종결하고서 24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헌재소장 박한철은 국감에 나와 “연내 결론을 내겠다”고 지배자들에게 약속하기도 했다. 재판 기록만 17만 5000쪽이 넘는데도 말이다. “형식적 재판 시늉”, “기획된 결정”(진보당 측 변호인 이재화 변호사)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시 헌재는 진보당 해산의 주요한 근거로 “북한식 사회주의 추종”을 들었다. 이를 두고 내놓은 증거라고는 이석기 의원 등이 모인 ‘RO’ 회의 석상의 발언,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 정도다.

그러나 사실 이 사건은 자민통계 활동가들이 모여서 정치 토론을 벌인 것을 봉기 준비 모임인 것처럼 왜곡하고 과장한 것이었다. 설령 당시 모임에서 ‘과격한’ 표현과 주장이 있다 한들 구체성도, 실현 가능성도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 모임과 주장은 진보당의 공식 입장이나 결정도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도 헌재는 이 토론 모임이 진보당 활동으로 귀속된다는 억지를 부렸다. 더군다나 당시는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오히려 헌재는 자신들의 판결로 ‘내란 음모’ 사건 판결에 압박을 주려는 듯했다.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은 선거적 이익을 위해 유시민의 참여계와의 통합하는 과정에서 기존 민주노동당의 좌파 개혁주의 강령을 대체하면서 나온 것으로, 민주노동당 내 좌파의 비판을 받았던 강령이다.

당비를 내는 당원이 3만 명에 이르고, 국회의원 6명을 가진 진보 정당이 재판관 몇 명에 의해 해산되고야 만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 폭거였다. 

헌재의 해산 결정은 한 달 뒤 나온 이른바 “내란 음모” 사건 구속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정치 사상 탄압이었음이 드러났다. 헌재 결정의 핵심 근거였던 ‘RO’ 모임이 실체가 없다고 대법원이 판결했기 때문이다. 

단지 토론했다는 이유로 9년 형

2015년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해 내란 음모 무죄,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를 판결했다.  

당시 검찰은 내란을 실제로 계획하고 준비했다는 증거를 재판에서 내놓지 못했다. 2013년 5월 12일 회합 ‘녹취록’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총 800여 곳을 위조한 것이 드러났다.

당시 구속의 핵심 사유는 “내란 음모”였는데 이를 무죄로 판결한 것은 이 사건이 정치적 마녀사냥일 뿐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란 음모의 증거를 인정할 수 없다면 내란 선동도 마땅히 무죄가 되고 구속자들도 풀려났어야 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내란 실행 행위의 주요내용이 제시되지 않아도, 행위로 나아갈 개연성이 없어도 선동죄를 물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구체적 조직과 행위가 없더라도 발언에 대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처벌의 기준이 ‘내심’이라는 것이고, 이는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다.

이석기 의원 등은 평화적 수단(토론)으로 정치 활동을 했을 뿐인데 대법원은 이것이 살인보다 중한 죄라 판단한 셈이다.(당시 살인죄 선고형 평균은 6.4년이었다.)

이런 근거라면 계엄 실행을 모의하고 구체적 계획까지 세운 기무사야말로 내란죄로 처벌해야 할 것이다. 진보당과 이석기 의원 마녀사냥에 앞장섰던 자유한국당은 기무사가 “준비”한 것이 뭐가 문제냐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언제는 토론만 해도 문제라더니 말이다. 

심지어 양승태 사법부가 당시 판사 비리를 덮기 위해 이석기 의원 선고일을 조정했다는 것이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따라서 박근혜의 온갖 악행에 분노하고 이를 바로 잡기를 바란 정권 퇴진 운동 속에서 양심수 석방 요구가 제기된 것은 지지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번번이 사면 대상에서 “내란 음모” 사건 구속자들을 제외시켰다.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들과 가족들, 구명위원회와 국제 앰네스티 같은 인권단체들은 꾸준히 이석기 의원 석방을 요구해 왔지만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은 무시로 일관했다.

정부가 남북 화해를 강조하고, 정상회담이 3번이나 성사됐지만 문재인 정부는 국가보안법과 그에 준하는 형법상 내란음모 조항을 이용한 탄압을 시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이석기 의원을 제외한 구속자는 모두 만기출소했다. 이석기 의원은 6년 째 감옥에 갇혀 있다. 내란죄 등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됐던 전두환은 고작 2년 만에 사면됐는데 말이다. “이석기 전 의원을 감옥에 두고서 사법적폐를 청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민중당) 

검찰은 몇 달 전, 대북 사업가 김호 씨를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적폐 청산은커녕 희대의 악법인 보안법을 이용해 진보·좌파를 공격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문재인의 적폐 청산, 개혁은 위선적이다. 

그런데 정당 해산 심판에서 진보당 측을 변호하고, 이후 헌재 판결을 비판하는 책을 집필했던 김선수 변호사는 대법관 청문회를 통과하려고 헌재의 진보당 해산 결정을 존중한다고 답했다. 

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구속은 박근혜 정권의 악행이다. 그러나 그 적폐가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은 명백히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다. 문재인 정부는 필요할 때만 인권, 민주주의 앞세우지 말고 이석기 의원을 하루빨리 석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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