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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멘 난민 심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예멘 난민은 한국 정부도 일조한 예멘 전쟁의 희생자들이다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결과가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우익들은 제주 예멘 난민 전원 송환을 촉구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가까스로 도망쳐 온 예멘인들이 “이슬람 가짜 난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난민기구는 “현재 폭력, 질서의 부재, 대규모 실향, 기근 등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한 예멘으로 그 어떤 예멘인도 강제 송환되어서는 안 된다” 하고 밝혔다.

현재 예멘에서는 무차별적인 폭력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최근 유엔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에서 거의 매달 친서방 사우디-UAE 연합군에 의한 공습이 있고, 이 때문에 다수의 민간인이 사망한다고 한다. 이 공습은 시장, 예식장, 장례식장, 병원, 통학 버스를 겨냥하고 있다.

사우디-UAE 연합군은 2015년 이후 예멘의 항구를 봉쇄해, 예멘으로 향하는 물자 반입도 제한했다. “2018년 현재, 1780만 명이 식량 부족 상태이고, 840만 명이 기근 직전 상태다.”

“의료 시설은 가동되지 않았고, 깨끗한 물을 얻기 어려웠고, 예멘은 최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콜레라 발병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다.”

이런 현실은 우익들의 “가짜 난민” 주장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지를 보여 준다. 또한 예멘 난민 송환 요구가 범죄적 행위임을 보여 준다.

예멘에서 제국주의 국가들과 지역 강국들은 수많은 무고한 목숨을 대가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패권을 위해서다. 미국·영국 등 서방 국가들은 예멘의 전 대통령 알-하디와 사우디-UAE 연합군을 지원한다. 이에 맞서 이란은 후티 반군을 지원한다.

예멘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데 한국 정부도 얼마간 책임이 있다. 한국 정부는 예멘에 폭격을 퍼붓고 있는 UAE와 사우디에 군사 지원을 해 왔다.

한국 정부의 군사 지원

2011년 파병된 아크부대(특전사 병력)는 UAE군의 교육 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2016년에 한국 정부가 사우디에도 180억 원 규모의 특수 폭탄을 판매했음을 폭로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UAE와의 군사협정을 되돌릴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9월 4일 아크부대의 파견 연장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때 정부는 2011년 아크부대 주둔 후 UAE의 한국 무기 수입이 2600만 달러에서 11억 2900만 달러로 “약 40배 성장”했다고 자랑까지 했다.

예멘 난민들은 한국 정부도 일조한 전쟁의 피해자들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예멘 난민을 받아들일 책임이 있다.

지난달 정부는 일부 예멘 난민들에게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인도적 체류자 지위는 불안정한 체류 말고는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다.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을 받을 수 없고, 가족을 데리고 올 수도 없다.

정부는 예멘 난민들에게 법적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실질적 지원을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예멘에 폭격을 퍼붓고 있는 UAE와 사우디에 군사 지원을 해 왔다 ⓒ조승진

난민 혐오 세력의 우익적 본색

난민 혐오 세력들은 자신들이 ‘좌도 우도 아니고 국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익적 본색을 숨길 수는 없다.

난민 반대 집회를 주최한 ‘난민대책 국민행동’ 카페 운영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난민 반대와 맞닿아 있다”고 최근 공지글에서 밝혔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탄압받았다는 것이 난민 인정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난민, 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라는 기독교 우익의 핵심 코드를 공유한다. 북한에 대한 냉전 우익적 메시지 전파는 물론이다. 이들은 최근 〈한겨레〉가 폭로한 ‘에스더기도운동’의 가짜뉴스가 전파된 주요 유튜브 채널들을 ‘진정한 언론’이라고 여긴다.

최근 이들은 난민만이 아니라 “불법체류자 추방”을 내걸고 10월 14일 이주노동자 대회를 겨냥해 맞불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난민에서 나아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혐오 선동 대상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집회 연단에 김진태(자유한국당), 조경태(자유한국당), 이언주(바른미래당) 같은 우파 정치인들을 세웠다.

김진태는 반동 보수적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박근혜 탄핵 반대 태극기 부대의 ‘히어로’였다. 극우 사이트 ‘일베’에 접속한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돼 ‘일베 의원’이라는 별명도 있다.

이언주는 (정치적 선언일 뿐, 합의 이행 과정이 매우 험난할)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동의조차 강력 반대할 만큼 냉전 우익적인 인물이다. 지난해 이언주는 학교 비정규직 파업에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 돼야 하는 거냐”고 말해 반동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우익들의 환심을 사려 난민 혐오에 앞장서고 있는 우파 정치인들의 작태가 꼴사납다.

난민 혐오 세력은 “야당의 난민법 폐지 당론 채택도 산넘어 산”이라면서도 자유한국당을 ‘난민법 폐지’ 의제를 관철시킬 국회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 반대로 민주노총이나 노동자연대 같은 좌파 세력에는 “전문시위꾼들”이라며 강한 적대감을 보인다.

이들은 자신들은 ‘태극기 집회’와는 ‘1도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9월 16일 난민 반대 집회에서 사용된 방송차와 무대차량은 모두 태극기 집회에서 쓰던 차량임이 확인됐다.

이들은 ‘난민 유입으로 인한 여성 대상 성범죄 증가’ 운운하며 난민 배척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들의 우익적 본색을 보면, 애당초 이들은 ‘여성 인권’에는 관심 없는 자들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공포심을 조장해 우익 포퓰리즘 확산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최근 우익들은 문재인 정부의 우경화에 기가 살아 성소수자·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공격하며 세력을 결집하려 한다.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크게 위축됐던 세력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정부의 난민 차별 정책은 우익의 기를 살려 줄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인종차별적 우익에 굴복해 예멘 등을 무사증 입국 불허 국가로 지정하고, “가짜 난민”을 솎아 내기 위한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난민법도 개악하려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짜 난민”은 전혀 쟁점이 될 수 없다. 난민인정률이 4퍼센트인 현실을 보라. 그런데도 정부가 “가짜 난민” 문제를 내세워 심사를 강화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인정률이 더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매우 위험하다. 인종차별적 우익들의 주장을 정당화해 줌으로써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고, 사회 전반에 인종차별을 강화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험을 보면, 정부와 주류 정치인들이 조장한 인종차별과 무슬림 혐오 덕분에 극우 세력은 난민 위기를 이용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에서 나치 정당 국민전선(FN)은 지난해 대선 결선 투표까지 진출했는데, 이는 지난 십여 년 동안 프랑스 주류 정치권이 인종차별과 무슬림 혐오를 조장한 결과다. 주류 정치권이 2004년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난민·이주민 공격은 노동자 공격의 다른 얼굴

난민·이주민에 대한 공격은 최저임금 삭감이나 노동유연화, 의료 민영화, 연금 삭감 등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의 다른 얼굴이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난민·이주민에 대한 공격은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을 엉뚱한 데로 돌려 노동자 계급의 삶을 악화시켜 온 진정한 원인을 가리려는 것이다. 특히 개혁을 표방한 정부가 제대로 된 개혁은커녕 우향우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을 의식해 난민·이주민을 속죄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당장 국가기간시설의 안전 관리 실패(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연관된) 문제를 소박한 꿈을 안고 일해 왔을 한 스리랑카 노동자의 죄로 뒤집어 씌우는 걸 보라.

인종차별적 우익들은 ‘가짜 난민들이 제도를 악용해 한국 체류를 하고 세금을 축낸다’고 비난하지만,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한국은 난민 인정률이 고작 4퍼센트다. 최근 난민 신청이 늘고 있다지만, 여전히 한국 이주민의 1.8퍼센트에 불과하다. 올해 전 세계 난민 신청자의 고작 0.4퍼센트가 한국에 왔다.

또한 난민에 대한 정부 예산은 1년에 20억 원 수준이다. 이마저도 운영비가 포함된 수치라 실제 난민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그다지 많지 않다. 2017년 12월 31일 기준 생계비 지급 대상인 난민신청자 1만 3294명 중 단 3.2퍼센트만이 실제로 생계비를 지급받았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8억 1700만 원 수준이다. 이는 2019년 국방비 예산 49조 7000억 원의 0.0016퍼센트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부와 자원이 없는 게 아니다. 노동자에게든 난민에게든 대중의 필요에 자원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자본주의 체제의 우선순위가 문제다. 이 사회의 근본적 분단선은 계급이지, 국적이 아니다.

지배자들의 분열 지배 시도에 맞서 난민을 환영하고 난민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도 이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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