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기사는 그동안 〈노동자 연대〉 신문에 실린 사회적 대화 관련 여러 기사들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한국 경제는 생산이나 투자 감소, 고용 지표 악화 등으로 먹구름이 가득하다. 터키 등 신흥국 위기(금융시장 불안정)나 트럼프의 무역전쟁이 미칠 파장(수출 감소)에 대한 우려 속에서 사용자들의 위기 의식도 커지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데 사활적으로 달려들고 있고, 그러면서 빠르게 우경화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3차 남북정상회담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때를 이용해 일사천리로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켰다. 대기업들이 박근혜 정부에 입법을 청원했던 숙원이었고, 후보자 시절 문재인이 박근혜의 “적폐”라고 규정했던 바로 그 법이다. 의료 영리화 조처, 전력 산업의 부분 사영화, 가스·건축·도로·소방 등 안전과 직결된 규제 완화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봐도, 문재인 정부가 ‘돈 안 드는 개혁’을 추진한 탓에 노동자들의 조건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불거졌다.

조선업과 한국GM, 금호타이어 등의 구조조정 과정은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일자리 학살에 앞장섰음을 보여 준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아예 노골적으로 내던졌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면 경제도 살아난다며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말잔치는 현실과 다르게 늘 친기업 정책으로 기울어 왔다. 문재인은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저성장 위기를 겪는 한국 자본주의를 ‘혁신’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에 진정한 관심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경사노위를 통해 얻으려는 것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사회적 대화에 끌어들여 포섭하려 애쓰고 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노사정위의 후신) 위원장은 조직노동자들의 양보와 희생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조 있는 곳의 노동자는 임금이 한껏 올랐다. 그때부터는 굳이 투쟁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뷰 진행자가 “그러면 경사노위는 싸움을 말리는 곳입니까?” 하고 묻자 문 위원장은 “그렇죠” 하고 답했다(YTN 생생인터뷰 2018년 8월 28일).

또, 문성현 위원장은 최근 “성동조선해양 상생 협약”을 중재하면서 이를 구조조정의 모범인 것처럼 제시했다. 이것은 정리해고를 철회시킨 협약으로 알려졌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동자들은 무려 28개월간 무급휴직을 하고 M&A(인수·합병)와 경영정상화에 협력한다는 거의 백지 위임에 가까운 희생을 강요당했다. 문성현 위원장은 이런 방법이 ‘감원 위주 구조조정의 대안’이라고 치켜세운다.

이런 사례들은 경사노위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이것은 한국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노동자들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것이자, 노동자 투쟁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사 협조(계급 협조)를 강조한다. 문성현 씨 표현을 빌리면, “노동자이지만 사용자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는 “노사 공동운명체 정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해외의 사회적 대화·협약 사례나 1998년 한국의 경험은 타협의 결과가 노동자들에게 공동 번영을 가져다 주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 등 북유럽 나라들에서 1980년대 이래로 추진된 사회적 합의는 경제 침체 극복을 위해 노사협력을 강화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임금 억제, 복지비 삭감 등 노동계급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조처들로 채워졌다. 이런 양보는 고용을 지키는 방안으로 여겨졌지만, 현실은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가 대폭 늘어나는 효과를 냈다. 그 결과 독일·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 등 모든 북유럽 나라들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됐다.

게다가 이런 양보와 노조들의 투쟁 자제로 노조 조직률이 급감하고, 세력이 약화됐다.

이처럼 사회적 대화를 통한 파트너십 추구는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계급 협조주의를 부추겨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 정부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할 때 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에 불필요하게 타협하면서 노동자 투쟁을 자제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에 간 민주노총 위원장(왼쪽)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대화하면서도 우향우 정책은 지속

문재인 정부의 이런 시도가 안정적으로 추진되고 실현되기는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촛불운동의 효과가 나타나 노동조합 운동은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내내 항의 투쟁을 벌였고, 최저임금 줬다 뺐기에 항의하는 기층 노동자들의 투쟁도 벌어졌다.

이런 투쟁들이 문재인 정부의 본질을 폭로하는 구실을 했고, 문재인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은 점점 커졌다. 이는 6월 30일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큰 노동자들의 항의 시위로 확연히 드러났다. 이후 문재인의 지지율이 급격히 추락한 데는 노동자들의 항의와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 올해 들어서는 파업도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투쟁들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고는 말하기는 어렵다. 6월 30일 대규모 항의는 민주노총이 노동자 투쟁들을 보편화할 좋은 계기였지만, 시위 직후 전격적인 문재인과의 면담을 추진해 투쟁의 김을 빼 버렸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화 일변도가 아니라 “투쟁과 교섭의 병행”을 강조한다. 하반기 ‘총파업·총력투쟁’ 계획도 내놓았다.

그러나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한 후, 지도부는 하반기 ‘총파업·총력투쟁’ 날짜를 계속 늦춰 왔다. 정부의 내년 국정 운영기조 수립이 본격화되는 시기를 겨냥한 10월 19일 1차 파업과 11월 17일 파업안은 11월 7일 파업으로 수정됐다. 급기야 남북정상회담 기간이자 규제프리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날(9월 20일) 민주노총 중집은 파업 시기를 11월 중하순으로 또 늦췄다. 11월 말 국회 본회의를 앞둔 “선제적 파업”이라는 군색한 변명을 달아서 말이다.

특히, 민주노총 중집이 노사정 대화로 복귀하고 각종 대화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민주노총이 최소한의 신뢰 회복 조처로서 문재인 정부에 요구했던 것들은 거듭 무시되고 우향우 정책이 쏟아졌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와 같은 현안 외면, 규제완화법 추진,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에서 이정미 의원 배제,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노동부 차관 이재갑을 신임 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 등이 그런 사례였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와 그 본질을 폭로하고 그에 맞서 단호하게 싸우자고 독려해야 하는데, 이처럼 지도부가 투쟁 시기를 늦추며 대화 추진에 주력하는 것을 지켜 보는 노동자들은 투쟁 의지를 현실감 있게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사기치지 마라!” 문재인의 배신에 실망해 노동자 8만 명이 모였던 6월 30일 노동자대회 ⓒ조승진

경사노위 참가 말고 파업을 앞당겨야 한다

지금처럼 경제 불황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는 변변찮은 개혁도 얻기가 쉽지 않고 조건을 지키려 해도 큰 투쟁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하반기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도 대개 그렇다. ILO 핵심협약 비준도 선언에 그치지 못하게 하려면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게다가 지금 국회에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악안과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근기법 개악안이 발의돼 있다.

정부는 임금 억제를 위한 공공기관 직무급제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시기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경사노위 참가를 결정해 사회적 대화에 열중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파업 시기를 앞당기고 투쟁 준비에 힘을 쏟아야 한다. 노동자대회 직전이나 직후로 파업에 돌입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사기가 나쁜 것도 아니므로 투쟁 동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올해 들어 파업이 늘고 이 중 일부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0월 하순부터는 대규모 집회들도 예고돼 있다. 10월 하순 공공운수노조의 대규모 집회, 11월 9일 공무원노조 대규모 연가 투쟁, 11월 10일 건설연맹 파업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집결 등이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성취하려면 이런 투쟁들을 사회적 대화와 협상을 위한 동원 수단으로 종속시키지 말고, 문재인의 우경화와 노동계급 공격에 맞서는 반격으로 전환시켜 가야 한다. 이것이 지금 민주노총 지도부에 요구되는 과제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 의제를 “사회적 공론화” 하려 해도 그것은 사회적 대화보다 단호한 투쟁 속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좌파 활동가들은 10월 17~18일 열리는 정책 대의원대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 정책의 문제점, 사회적 대화의 효과와 그 합의 내용의 문제점 등을 폭로하며 경사노위 참가 안건의 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기층에서 투쟁을 고무하며 노동자 계급정치를 바탕으로 연대가 확대되도록 애써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의 사회적 대화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문재인 정부 들어 진행된 사회적 대화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본질을 보여 준다.  

첫째, 경사노위 산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의 사회적 합의(‘취약계층 소득보장 강화 합의’)는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복지 정책 방향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이 합의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그간 추진해 온 계획을 재확인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충분한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더구나 복지를 더 악화시키거나 빈곤층을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유인하는 정책들도 담겼다.

예를 들어 근로장려세제(EITC)는 신자유주의 복지 ‘개혁’의 일부로 생겨났다.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기초생활보장비를 그대로 둔 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면 저임금 저질 일자리에서 일하도록 강요하는 제도다. 

이 외에도 실업급여 상·하한액 조정 등 문재인의 복지 정책은 노동연계복지를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노무현의 사회투자국가론과 마찬가지로 유연안정성 모델에 기초한 것이다. 즉, 고용의 유연성(쉬운 해고)을 추구하되 이로 인해 저소득층이 되거나 아예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재취업 지원과 복지(‘안정’)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를 비판하지 않고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 참가하는 것은 문제다.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할 경사노위 산하 특별위원회 논의도 위험성이 있다. 정부는 연금 인상 계획은 없이 보험료만 인상하는 안을 올리려 하고 여기에 민간 연금보험 강화 방안까지 내놓으려 한다. 이런 방향은 노동자들에게 복지 부담을 떠넘기는 신자유주의적 복지 개악의 핵심이다.

그런데 특별위원회 논의가 시작되면 정부와 친정부 전문가들은 보험료 인상을 적극 설득하고 나설 것이 뻔하다. 따라서 진정한 국민연금 개혁, 즉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낮추고 연금은 인상하는 조처를 관철시키려면 사회적 대화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정부를 강제할 강력한 대중 투쟁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연금 지급액을 인상하고 사각지대를 없애는 등 실질적인 개혁을 하라고 요구하면서도 보험료 인상에 반대 뜻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공공운수노조는 보험료 2퍼센트포인트 인상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최근 일자리위원회는 기업들의 규제 완화를 지원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2022년까지 140여 개 민간 프로젝트를 지원해 ‘신산업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규제프리존법 등 최근 통과된 법률에 따라 규제완화를 추진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산업 일자리 창출 민간 프로젝트 지원방안’이 일자리 창출이라고 포장했지만, 양질의 안정된 일자리인지는 불확실하다. 반면 이를 위해 안전과 공공성을 후퇴시킬 가능성은 매우 크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한 ‘혁신’ 성장 추진에는 이토록 신속한 반면,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 계획을 추진하는 데에는 매우 미온적이다. 대표적으로 34만 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공립 시설 확충과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계획은 대폭 후퇴하기까지 했다.  

셋째,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지역과 업종의 일자리 창출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의 대표적 사례인 ‘광주형 일자리’는 ‘공정’(또는 ‘적정’) 임금 적용을 내세우면서 추진됐다. 그러나 초임 연봉이 2100만 원으로 논의되고 있음이 최근 폭로됐다.

업종 수준의 사회적 대화인 ‘공공병원 노사정 TF’(정부, 서울시, 공공병원 사용자, 보건의료노조)가 내놓은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도 큰 문제다.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에 연동해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등 정부의 ‘표준임금모델’과 매우 흡사하다.

문재인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평양에 데려간 사이에 국회에서는 규제프리존법이 통과됐다 ⓒ출처 보건의료노조

사회적 대화는 사회 개혁과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것인가?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참가가 “사회복지 제도 개혁과 방향 수립 및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책임 있게 나서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 지도자 다수와 노조 바깥의 정치적 개혁주의자들은 이를 통해 빈곤과 양극화 등 신자유주의가 낳은 폐해를 완화하고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도 대폭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맺은 사회협약은 사회개혁과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두루 알다시피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회개혁을 위한다며 재벌개혁 조처로서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와 구조조정 추진에 합의했다. 특히, 구조조정은 고용 불안정화를 뜻했고,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재벌 기업들은 그 뒤로도 규모가 더 커지고 영향력도 강화됐다. 그러는 동안 비정규직과 빈곤층이 늘어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됐다.

민주노총이 개혁을 성취하려면 부자 증세와 정부의 복지 재정 대폭 확충을 요구하고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조합원들의 강력한 투쟁을 통해 이윤을 파괴할 능력과 힘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힘은 노동자 투쟁만이 발휘할 수 있고, 제대로 발휘될 때 광범한 지지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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