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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 반등이 끝나고 다시 불안정해지는 경제

지난해 회복세를 보인 세계경제는 올해 상승세가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9퍼센트에서 3.7퍼센트로 낮췄다. 3개월 전인 7월보다 0.2퍼센트포인트 낮춘 것이다. IMF가 세계경제 전망을 낮춘 것은 2016년 7월 이후 2년여 만이다.

세계경제 성장률이 다시 낮아지는 것은 최근 경기 반등을 가져왔던 힘들이 점차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2016년 하반기부터 늘어났던 전 세계 투자 증가세가 올 들어 꺾이기 시작했다. 최근 투자 증가세가 짧고 미진했다는 점은 최근의 투자 증가가 기업 수익성이 일반적으로 회복된 데 따른 것이 아니고, 그전 몇 년간(특히 2015~2016년) 투자 위축을 만회하는 정도의 일시적 증가였다는 점을 보여 준다. 즉, 최근의 경기 회복은 본격적인 상승 전환이 아니고 일시적인 반등이었던 것이다.

한편,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세계적인 저금리와 이에 따른 자산가격 상승은 소비와 투자를 확대시키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는 세계경제의 주요 불안정 요소인 부채 급등 문제로 돌아오고 있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고 유럽의 양적완화가 축소되는 등 세계적으로 통화 긴축이 강화되고 있어 이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높은 부채와 금리 인상 등으로 자산가격 상승도 꺾였다. 미국 주가 상승세는 유지되고 있으나, 유럽, 일본, 중국 등 대부분 나라의 주가가 약세로 돌아섰다. 세계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세도 멈춘 상황이다. 이는 주요국들의 민간소비와 건설경기 등에 타격을 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저금리가 만든 높은 부채 때문에 신흥국 외환 위기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 들어 아르헨티나와 터키에서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다른 여러 신흥국으로 위기가 퍼진 데 이어, 최근에는 파키스탄이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이집트와 남아공을 비롯한 신흥국들도 단기외채가 많아 매우 위험한 상태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등에 따라 신흥국 위기가 1997~1998년 동아시아처럼 연쇄적인 외환 위기로 터진다면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무역 전쟁과 중국 경제 불안정

한편, 미·중 무역 전쟁으로 내년 세계 교역이 더 위축될 수 있다. 그리고 미·중 간 교역이 직접적으로 감소하면서 세계 두 경제 강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를 악화시키고 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확산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최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급준비율을 1퍼센트포인트 내려, 시중에 1조 2000억 위안(약 197조 원)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미 올해 3차례나 지급준비율을 낮춘 바 있는데도 말이다. 또, 중국 정부는 올해 감세 목표액을 1조 1000억 위안에서 1조 3000억 위안(약 213조 원)으로 높이며 기업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방 정부들에게는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펴고 있는 전방위적인 경기 부양책은 더 큰 위험을 만드는 일일 수도 있다. 중국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막대한 부채가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급준비율 인하로 이미 약세인 위안화는 더욱 큰 압력을 받을 것이다. 위안화는 이미 올해 9퍼센트가량 떨어져 달러당 7위안에 가까워졌는데, 최근의 경기 부양책으로 위안화 약세가 지속돼 조만간 환율이 7위안을 넘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위안화 약세는 중국 수출 기업이 관세 타격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위안화 가치가 너무 많이 하락하면 자본 유출 우려가 커지고 달러 부채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게다가 위안화 약세(환율 상승)는 미국 트럼프 정부나 EU 등이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위안화 환율이 상승하자,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더 올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한국의 대중국 수출(전체 수출의 4분의 1) 중 5퍼센트 정도만 미국으로 재수출된다면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도 한국은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최근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한국 수출이 중국 경제 자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격화하고 있는 미중 무역 갈등이 중국 경제 자체에 타격을 줄 공산이 크기 때문에 한국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국 경제 – 투자 감소와 ‘고용 참사’

국제통화기금(IMF)이 10월 9일 우리 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퍼센트에서 2.6퍼센트로 각각 낮췄다. 이미 지난 7월에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퍼센트에서 2.9퍼센트로 낮췄다. 미중 무역 갈등 심화 등에 따른 영향이 한국에 미칠 것으로 본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투자도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이 10월 2일 발표한 ‘8월 산업 활동 동향’을 보면 기업 설비투자가 전월 대비 1.4퍼센트 감소했다. 기업 설비투자는 지난 3월 이후 연속 6개월째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최장 수준이다.

물론 올해 투자 감소의 상당 부분은 지난해 급증한 반도체 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투자가 60퍼센트 이상 늘어나면서 전체 설비투자가 16퍼센트나 증가했으나, 올해 초 반도체 투자가 일단락되며 2분기 전체 설비투자가 감소세로 전환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마땅히 투자할 부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투자 감소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해고·노동강도 강화로 고용 증가세가 크게 위축됐다 ⓒ이미진

이 같은 투자 감소 영향으로 고용 증가세도 크게 떨어졌다. 취업자 증가는 지난해 32만 명 수준에서 올해 1~8월 10만 명 수준으로 급격히 위축됐다. 7월과 8월에는 취업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00명과 3000명만 증가하는 ‘고용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9월에는 취업자 수가 감소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임금 상승 부담을 피하려고 기업들과 사용자들이 해고와 노동강도 강화 등으로 대응한 것도 ‘고용 참사’에 한몫한 듯하다. 7, 8월 고용통계를 보면, 올해 구조조정이 벌어진 제조업뿐 아니라, 저임금 청소 노동자 등이 속한 ‘사업시설관리, 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에서 취업자가 10만 명 넘게 감소했다.(산업별 비중으로 보면 후자가 훨씬 크다. 이 외에 도소매·음식숙박업 등에서 많이 감소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해야 할 뿐 아니라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더 늘려야 하는 이유다.

한편, 미국의 금리 인상 등에 따라 한국도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한·미 간 금리가 2017년 역전된 데다, 최근에는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올해만도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해 기준금리가 2.0~2.25퍼센트인 데 반해, 한국은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1.5퍼센트로 올린 이후 10개월째 동결 중이다. 이 때문에 한국도 11월에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기준금리 인상은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기업 투자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그리고 1500조 원이 넘은 가계부채에 큰 타격을 주고, 특히 최근 몇 년간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건설 경기에 타격을 줄 공산이 크다.

이처럼 투자 감소에 따라 성장률이 둔화하고, 고용 상황도 악화하자, 문재인 정부는 기업 투자에 도움을 주려고 친기업적 행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9월 20일에는 사람들의 이목이 3차 남북 정상회담에 집중된 때를 이용해 규제프리존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자신들 스스로 이 법을 박근혜 정부의 적폐이고, ‘대기업 청부 입법’이라고 비난해 놓고는 말이다. 10월 들어서도 정부는 “혁신성장을 가속화”하겠다며 규제 완화를 밀어붙일 태세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5월 ‘줬다 뺏는’ 최저임금 제도 개악을 한 것도 모자라,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정책도 다시 꺼내들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등에 대한 “정책 수정·보완 필요성”이 있다며, 최저임금 차등 적용과 탄력근로제 확대를 추진하려 한다. 정부는 임금 억제를 위한 공공기관 직무급제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고용 상황이 나쁘다고 거듭 우려하면서도 사회서비스공단 같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약속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좋은 일자리 만드는 건 결국 기업”(문재인 자신의 말)이라며 기업 지원에만 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통상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은 최근 “미국발 보호무역주의는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조류”라며, 미국과 중국이 서로 막대한 관세를 물리는 와중에 한국 제품의 경쟁력을 올리려면 규제 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앞으로도 친기업 행보를 강화해 갈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끌여들여 협상하려는 경사노위 등도 노동계급을 위한 논의의 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의 친기업 정책 추진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고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는 구실을 할 것이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는 변변찮은 개혁도 얻기가 쉽지 않고, 조건을 지키려 해도 큰 투쟁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들의 위기 전가 정책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조건을 개선하고 사회 개혁을 이루는 유일한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