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본지가 10월 17일 발행한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 특별호에 실렸다.


이번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의 핵심 안건은 단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참가 문제다.

당연히 이 안건은 힘 있는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 내에서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다. 또한 노동조합 좌파 그룹들이 공동으로 발의한 경사노위 참가 반대 성명서에 민주노총 대의원 94명을 비롯한 현장 간부·조합원 730여 명이 서명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이 경사노위 참여의 적기”라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주장과 전혀 다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노골적인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회의적인 물음이 던져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노동자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반영된 것일 것이다.

문재인이 경사노위를 통해 하려는 것은 신자유주의 ‘개혁’ ― 노동자에게 경제 위기 고통 전가하기다

친자본가 본색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기업 투자를 늘리는 데 사활적으로 달려들며 빠르게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투자 감소, 고용 지표 악화 등으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가득하고 이로 인해 사용자들의 커진 위기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줬다 뺏는 최저임금 개악을 한 데 이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아예 노골적으로 내던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만 봐도 문재인 정부가 돈 안 드는 개혁을 추진한 탓에 노동자들의 조건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불거졌다.

조선업과 한국GM, 금호타이어 등의 구조조정 과정은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일자리 학살에 앞장섰음을 보여 준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3차 남북정상회담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때를 이용해 일사천리로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켰다. 대기업들이 박근혜 정부에 입법을 청원했던 숙원이었고, 후보자 시절 문재인이 박근혜의 “적폐”라고 규정했던 바로 그 법이다. 의료 영리화 조처, 전력 산업의 부분 사영화, 가스·건축·도로·소방 등 안전과 직결된 규제 완화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저성장 위기를 겪는 한국 자본주의를 ‘혁신’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에 진정한 관심이 있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경사노위는 사회개혁을 위한 기구가 아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사회개혁을 앞당기려면,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노동조합 지도자 다수와 노조 바깥의 정치적 개혁주의자들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빈곤과 양극화 등 신자유주의가 낳은 폐해를 완화하고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도 대폭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루 알다시피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맺은 사회협약은 사회개혁과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회개혁을 위한다며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와 구조조정 추진에 합의했다. 특히, 구조조정은 고용 불안정화를 뜻했고,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재벌 기업들은 '개혁'되기는커녕 그 뒤로도 규모가 더 커지고 영향력도 강화됐다. 그러는 동안 비정규직과 빈곤층이 늘어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됐다.

이번 경사노위는 과거 노사정위와 달리 ‘양극화 해소’를 기구의 법조문의 목적에 명시했다. 하지만 실제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활력을 잃어 가는 우리나라 경제에 ‘노사합의’라는 필수 영양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노동계에 거듭 타협(계급 협조)과 양보를 요구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양극화 해소’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격차 해소가 아니라는 점도 봐야 한다. 문성현은 “격차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므로 정부나 사용자에게만 책임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양보를 끌어내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한 것이나 무기계약직에 저임금을 고착하는 방안(표준임금모델)을 추진하는 것을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양극화 해소’, ‘격차 해소’는 전반적인 임금 억제 속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향평준화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한 다음 발언은 위험하다. “사용자 측에 [고용] ‘유연성은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한다면 사회적 대화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이런 의제 자체를 수용하면 그다음은 ‘계속 반대만 하면 대화 지속은 불가능’하다는 압박과 함께, 노동계도 양보안에 합의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조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양대노총은 청년과 비정규직을 대변하지 못한다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경사노위 성원에 포함한 것도 이런 압박을 위한 포석이다.) 

요컨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자들의 양보를 설득하고 투쟁 자제를 요구하는 것이 경사노위의 존재 이유다. 


사회적 대화와 투쟁 병행은 왜 어려운가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화와 투쟁 병행’을 말한다.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계획안도 내놓았다. “협상을 하다가 안 풀리면 투쟁이 강화되어 밑받침하고 이를 통해 교섭력이 올라가는 선순환”을 말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협상으로 주요 노동 현안들이 안 풀리는 국면이다. 

민주노총이 최소한의 신뢰 회복 조처로 문재인 정부에 요구한 것들은 거듭 무시되고 있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 정책은 쏟아져 나왔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외면, 규제완화법 추진,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에서 이정미 의원 배제,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노동부 차관 이재갑을 신임 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 등이 그런 사례였다.

그런데 민주노총 중집은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 후, 하반기 ‘총파업·총력투쟁’ 날짜를 계속 늦춰 왔다. 급기야 남북정상회담 기간이자 규제프리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날(9월 20일) 민주노총 중집은 파업 시기를 11월 중하순으로 또 늦췄다. 11월 말 국회 본회의를 앞둔 “선제적 파업”이라는 군색한 변명을 달아서 말이다.

게다가 김명환 위원장은 노조 할 권리 요구 등 “전제조건 없[이]” 경사노위에 참가해야 한다며 투쟁을 늦추고 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조합원들이 지도부의 투쟁 의지를 현실감 있게 느끼기는 어렵다. 노동조합 지도부가 투쟁을 고무하기보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파트너십을 추구하면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계급 협조주의를 부추겨,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 


경사노위 안에 머물러 약점 잡혀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경제 불황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는 변변찮은 개혁도 얻기가 쉽지 않고, 기존 조건을 지키려 해도 큰 투쟁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하반기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도 대개 그렇다. ILO 핵심협약 비준도 선언에 그치지 못하게 하려면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게다가 지금 국회에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개악안과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개악안이 발의돼 있다. 정부는 임금 억제를 위한 공공기관 직무급제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시기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경사노위 참가를 결정해 사회적 대화에 열중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투쟁 조직에 힘을 쏟아야 한다. 

노동자 투쟁은 지도부가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 속 칼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있게 투쟁을 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와 그 본질을 폭로하고 그에 맞서 단호하게 싸우자고 독려해야 한다. 

지금 노동자들의 사기가 나쁜 것도 아니므로 투쟁 동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들의 파업과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10월 하순부터는 대규모 집회들도 여러 개 예고돼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성취하려면 이런 투쟁들을 사회적 대화와 협상을 위한 동원 수단으로 종속시키지 말고, 문재인의 우경화와 노동계급 공격에 맞서는 반격으로 전환시켜 가야 한다. 이것이 지금 민주노총 지도부에 요구되는 과제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 의제를 “사회적 공론화” 하려 해도 그것은 기만적인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단호한 투쟁 속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의 개혁 폐기에 맞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6월 30일 열린 ‘최저임금개악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총력투쟁 선포 2018 비정규직철폐 전국노동자대회’

경사노위 참가 결정 연기 방안은 진정한 대안이 못 된다

이번 대의원대회에는 ‘지금은 때가 아니므로 경사노위 참가 결정을 내년 초에 열리는 정기대의원대회로 연기하자’는 수정안이 제출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안은 정부에 ‘가시적인 노정 신뢰회복 조치’ 이행을 촉구하고 이행 상황을 판단하자는 단서를 달았다. 덮어놓고 경사노위 참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수정안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사노위의 본체에 참가하는 것은 몇 달 뒤로 미루되, 경사노위(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 소위원회들에는 계속 참가하면서 때를 기다리자는 것이 핵심 요지다. 그러나 그 산하 위원회들에 참가하는 것은 사실상 경사노위 참가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거의 같은 효과를 낸다.

예컨대,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의 사회적 합의(‘취약계층 소득보장 강화 합의’)는 복지를 악화시키거나 빈곤층을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유인하는 정책들을 포함하고 있다. 

노사정은 최근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 보장 특별위원회’도 구성키로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놔두거나 줄이고 보험료를 올리는 국민연금 개악을 추진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기구를 통해 진정한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노동자들도 더 내야 한다는 압력만 받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소득대체율 향상 같은 요구를 제시하면서도 보험료 인상 문제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하자며 침묵하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 보건의료노조는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이 사례는 정부의 ‘표준임금모델’과 거의 흡사해,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불리한 처지로 내모는 해악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경제 불황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더한층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쥐어짜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3~4개월 뒤에 경사노위 참가 여부 논란을 되풀이하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다.

민주노총의 좌파적 대의원들은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 안건을 부결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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