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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1년 반:
개혁 염원 배신과 진보·좌파 세력 견제

문재인 정부는 8~9월에 심각한 지지율 위기를 겪었다.

다급하게 앞당겨 추진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하락세는 멈췄지만, 역전된 건 아니다.

상반기의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끈 핵심 동력은 4월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반면, 나머지 쟁점들에서는 갈수록 큰 실망을 자아내는 일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특히, 노동과 사회·경제적 쟁점이 그렇다. 줬다 뺏은 최저임금 개악, 줄 듯하다가 뺏기만 한 노동시간 개악, 있는 일자리만 날아가게 한 제조업 구조조정, 비정규직 제로를 하겠다더니 정규직화 제로로 드러난 비정규직 대책 등은 노동자들을 분노케 했다. 해당 사업장들에서 조직화와 투쟁이 등장하는 배경일 것이다.

부유층 눈치 보느라고 부동산 문제에 어정쩡하게 대처하고, 국민연금 개악의 운을 띄운 것도 서민들 화를 돋웠다. 박근혜가 하려던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제주 관함식과 주민 탄압도 감점 요인이다.

이런 상황은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권을 안정시킬 카드가 문재인에게 별로 없음을 보여 준다. 판문점 선언 비준을 국회를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강행해 버린 것이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트럼프의 일방적 군축조약 폐기 선언으로 거듭 확인된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미·중 갈등 심화, 문재인이 유럽 순방 중에 각국 지도자들의 동조를 별로 못 얻은 일 등 사정이 썩 좋지 않다. 북·미 간 물밑 협상도 크게 진척이 없어 보인다. 백악관은 북·미 정상회담 예상 일시를 계속 뒤로 미루고 있다. 이 상태라면, 일각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가 중간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북·미 간 화해 무드가 이어질지 미지수다.

적폐 청산은 감속 중

남북 문제와 함께 지지율 고공행진의 요인이었던 적폐 청산이 지지부진한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정부가 갈수록 우파 눈치를 더 많이 보기 때문이다.

10월 초 이명박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는데, 그것 말고는 별 진척이 없다.

사법 농단 수사가 진척이 없으니, 국가가 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는 일도 진척될 리 없다. 기무사 수사, 5·18 발포 명령권자 수사, 심지어 세월호 참사 조사도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집권 1년 반을 넘기면서 민주당 인사들의 비리 연루 소식이 슬슬 나온다. 새로운 부패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적폐 구조와 그 수혜 세력에 유착돼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재벌 총수들을 (그가 아무리 부패 범죄자라도) 계속 감옥에 가둬 두지도 못하고, 전임 정권 비리·부패 청산 운운하면서도 국가기관의 중·하급 관료까지 다 숙청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물론 적폐 청산에 지배자들의 저항이 거센 건 사실이다. 삼성 측의 무노조 공작에서 노조원이 피해자가 아니라거나, 증거를 제출했더니 증언이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판사들의 뻔뻔함을 보면 기가 막힌다.

그러나 문재인 본인이 재판 중이던 이재용을 우대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화체육부 블랙리스트 관련 관료 중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은 자유한국당 권성동(검사 출신) 등이 연루된 강원랜드 취업비리 수사 외압 의혹을 무혐의 처분했다.

청와대 스스로 전교조 인정하기를 기피하고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등 양심수 석방 등도 노골적으로 기피한다. 삼권분립 운운하며 법원과 국회 탓만 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오히려 지지층 이반을 낳을 것이고 남북 화해 주도 말고는 문재인에게 지지층을 결집시킬 카드가 별로 없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유시민과 이재명, 친문의 왼쪽 단속하기

친문 핵심 인사들은 좌파와 노동운동이 발목을 잡은 게 노무현 정부 실패의 최대 요인이라고 본다. 문재인 자신과 유시민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과 우파 언론이 노무현을 탄핵까지 하며 못 살게 굴었는데도, 노동운동 탓을 더 많이 하는 건 친노 진영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파병, 노조법 개악, 한미FTA 체결, 제주 해군기지 건설 결정, 평택 미군기지 이전, 국민연금 개악, 비정규직법 개악 등 수많은 우파적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진보진영은 필요한 수위의 저항을 제기하지 못했고 그 틈에 우파가 노무현에 대한 대중의 환멸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었다.

여권으로서는 지금의 반우파 정서를 계속 민주당 지지로 묶어 놓으려면 좌파가 이익을 얻는 걸 막아야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을 두고는 여권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여당 대표 이해찬은 진보·좌파 세력을 달래가며 단속하는 게 낫다고 보는 듯하다. 민주노총을 찾아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를 설득한 것도 그였다. 물론 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친문 친위세력은 진보·좌파 세력을 아예 입 다물게 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노무현 시절에 부동산 원가 공개, 국민연금 개악, 한미FTA 체결 등으로 여권 대선 주자들이 반발해 노무현이 고립된 일을 반면교사 삼아 미리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권의 내분을 막으려다 되레 앞당기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친문 친위세력이 최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유시민을 추대해 사실상 정치 일선에 복귀시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노무현재단은 사실상 정치조직이다. 한명숙·문재인·이해찬 등 친노 그룹의 좌장격 인물들이 이사장직을 맡아 왔다. 햇병아리 초선 의원에서 일약 경남도지사로 올라선 김경수가 노무현재단 실무자 출신이고, 이재정 경기교육감, 정현백 전 여성부장관 등이 재단 이사 출신이다.

유시민은 진보 연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달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복지부 장관할 때 국민연금 개악을 지휘했고,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방에 적극 찬성했다.

유시민은 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 합당을 추진할 때(2011년 말) 이를 반대하는 참여당 당원들을 이렇게 설득했다: 합당은 진보진영이 문재인/민주당 정부 아래서 정권에 대한 좌파적 반대로 나아가지 못하게 안에서 개입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민노당 이정희 대표의 헌법 존중 의지를 이런저런 형식의 만남에서 확인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자는 정책을 내놓고 국회의 법 개정과 민주당의 당론 채택을 요구했다. 성남시에서 호평받았던 청년배당을 경기도 차원에서 확대 실시하기로 했다.

이재명 지사의 개혁 약속이 대중의 개혁 염원을 고무하고 기대를 부추기는 것은 우선회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에게는 탐탁찮은 일일 것이다.

경찰은 겨우 휴대폰 2대를 압수할 목적으로 이 지사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드루킹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거짓말이 들통났던 김경수는 민주당 전체의 보호막을 얻었는데 반해, 이 지사가 수차례 해명된 사건으로 수사받을 때는 민주당의 누구도 편들며 나서지 않는다. 청와대의 의중이 작용했을 것이다. 문재인은 방북 수행단에 접경지 단체장인 이 지사를 포함시키지 않았다.(이 지사가 최근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너무 심하게 공격했다고 한 건 친문에 대한 경고이기도 타협 신호이기도 하다. 결국 실패하고 우파만 고무하게 될 얼치기 개혁 정부와 타협하기보다는, 공언한 개혁을 한사코 실행해 대중을 고무하는 것이 이 지사 자신에게나 노동자·서민에게나 좋은 일일 것이다.)


보수대통합 추진하는 우파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구두선에 불과함이 슬슬 드러나면서 지지율 위기를 겪자, 우파가 기운을 되찾고 있다. 우파는 박근혜 퇴진 이후 책임 공방과 돈 문제 등으로 사분오열했었다. 그러나 최근 보수대통합 운운하며 내후년 총선에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작용할 것이므로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

민주당은 부패 폭로로 대응한다. 적폐 청산 프레임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유치원 비리 폭로도 이 맥락 속에서 벌인 일로 볼 수 있다. 임명 과정에서 상처받은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돕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 개인은 상당한 용기를 발휘했지만 말이다.

유치원 운영자들은 교육공무원의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원생들을 안 받겠다고도 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오보를 불사하며 서울교통공사 등의 정규직 전환 비리 등을 문제 삼는다. 전형적인 피장파장 전법이지만, 이 공격은 민주당 정부, 민주당 지자체, 공기업, 노조 등을 모두 겨냥한다.

문재인의 지지율이 떨어져도 우파가 곧바로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직까지 강력한 반우파 정서 때문이다. 특히 노동운동의 동향이 만만찮다. 승리한 박근혜 퇴진 운동에 조직 노동운동이 (초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덕분이다.

노동계 안팎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문재인과 일전을 벌이기를 꺼리므로, 투쟁들이 보편화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중도파 정부는 구두선으로 표방한 개혁에 실패하면 좌우 양쪽의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노무현 후반부와 달리 지금은 우파가 분열해 약화돼 있다. 노동자 투쟁에 유리한 요인이다.

그러나 임금과 노동조건 개악이 목적임을 분명히 한 문재인과 사회적 대화를 추구하는 건 잃을 게 더 많다. 자칫 노무현 후반부처럼 좌파적 대안을 건설할 기회를 놓치고 우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유리한 조건들을 이용해서 문재인의 신자유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